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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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집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23쪽)


책상 하나와 침대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공간에서 그거면 족하다고 여겼다. 방이자 거실이었던 지난 집을 떠올리면 지금 이 공간에 대해서는 불평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곧 마음은 바뀌었다. 내 공간에 책장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책장을 들이고 나니 흡족했다. 진짜 내 방, 내 공간이 생겼다고 느꼈다. 책상과 책장, 정리는 엉망이지만 방 안에 들어오면 편안해진다. 집을 떠올리면 춥고 어둡던 이미지 대신 따뜻하고 환한 빛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집의 이야기,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공간,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 말한다. 공간의 주인이라고 하면 맞을까. 어린 시절 형제가 많았던 내가 가장 부러웠던 건 내 방이 있는 친구와 언니의 방이었다. 그때는 방의 주인이 되면 그 공간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공간이든 관리와 책임이 따른다. 그건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대구시 중구 북성로의 옛집을 소개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3대가 함께 살아온 시절을 시작으로 집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집의 사회적 의미와 공간적 의미에 대해서 말이다. 집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삶의 형태, 이동하는 삶의 궤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부족함이 없이 보냈던 유년 시절,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인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원했던 서울, 혼자만의 공간을 위해 꾸미고 수리하던 시간을 지나 동반자를 만나 함께 공간을 채우는 이야기까지.


집이라는 소재를 통해 지나온 공간을 채운 삶을 말한다. 나와는 다른 과정을 견디고 겪어온 삶이지만 이상하게 모두 그 집을 통과한 기분이 든다. 그건 아마도 다른 공간에서 내가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시각 퇴근할 때마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지나던 기억, 하루가 다르게 높게 오르는 아파트 공사를 보면서 허탈했던 기억,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을 원했던 기억들이 겹쳐졌다.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없다는 생각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었던 시간들. 나뿐이 아닐 것이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하는 물음이 나에게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이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130쪽)


공간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질문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가족 구성원에게 집은 어떤 의미일까. 각자의 방이 아닌 거실, 부엌, 화장실, 베란다에 대해서도 자신의 공간이라고 여길까. 저자의 경험처럼 나머지 공간은 집안일을 하는 엄마의 공간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까. 엄마에게는 정작 아무 공간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공간의 이동은 곧 삶의 이동이다. 그래서 원하는 공간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높고 반대의 경우에는 그곳을 빨리 벗어나려 애쓴다. 공간을 누구와 보냈느냐에 따라서도 마찬가지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소중한 이와의 기억으로 채워진 공간이라면 특별한 장소가 된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간을 점유하고 삶을 이어갈 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재영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속 공간에 대한 사유는 감동을 안겨준다.


장소를 선택하는 것은 삶의 배경을 선택하는 일이다. 삶의 배경은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략) 나는 한 존재를, 한 시절을 잃고 이 집에 왔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슬픔과 상실을 안고 시작되었지만 그조차 이 공간에서 만들어갈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이제는 여기가 내 삶의 새로운 배경이 될 것이다. (181쪽)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한 절망, 좌절, 슬픔, 이별, 애도를 집이라는 공간이 지켜보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생명체로 존재하는 걸 말이다. 때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감추고 싶은 표정을 바라보는 존재로 있었기에.  그러니 이 책을 읽은 이라면 자신의 공간(그곳이 어떤 형태이든, 어떤 크기이든)을 돌아보게 된다. 그건 삶을 복기하는 일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자신에게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일이다.  나와 이어진 공간과 소중한 이들에게도.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다.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거나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절일 것이다. 과거가 되었기에 이야기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은 시절. 나는 집에 대해 쓰려 했으나 시절에 대해 썼다. 내가 뭔가를 알게 되는 때는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현재의 집이 가진 의미를 깨닫는 것도 이곳을 영원히 상실한 다음일 것이다. 아직 이 집은 한 시절이 되지 않았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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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0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이책 살까 말까 망설였는데
장바구니 속으로 ~@@
주말 따스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0^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주 활기차고 따뜻하게 시작하세요^^*

서니데이 2021-01-0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1-01-11 09: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포근한 월요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