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과 글쓴이를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을 기억한다.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소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종종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 소설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직접 경험한 일을 시점을 달리해서 쓰기도 하고 주변의 일을 변주해서 소설을 쓰기도 하니까. 허구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감정이 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절대 그렇게 쓰지 않으려고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하루키의 단편집 『일인칭 단수』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근에 에세이 『고양이를 버리다』를 읽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기억이라는 게 항상 정확한 건 아니니까.


내게 하루키는 뭐랄까. 한때 대단한 존재였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구분하는 능력, 그러니까 어떤 소설은 이게 진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에서는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낯선 여자와의 관계, 음악, 재즈, 술, 이러한 이야기는 살짝 식상하다. 일흔의 나이에 끊임없이 소설을 발표하는 그가 대단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같은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돌베개에」도 여지없이 비슷하게 전개된다. 이십 대 중반의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그녀가 쓴 단카집을 받아보고 그것을 담아두는 마음에 대해.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語이 우리 곁에 남는다. 그것들은 밤이 이슥할 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몸에 꼭 들어맞게 판 작은 구덩이에 숨어들어, 기척을 죽이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시간의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동이 트고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살아남은 말들은 땅 위로 남몰래 얼굴을 내민다.(「돌베개에」, 24쪽)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번의 만남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만남을 거부할 수 없다. 아니, 한 번이라서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은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녔던 한 여자아이에 대한 기억을 다룬 「크림」으로 이어진다. 피아노를 잘 쳤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에게 연주회 초대장을 받은 ‘나’는 그곳을 찾아간다. 많은 이들을 초대했을 거라 여겼지만 도착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여자아이의 장난에 놀아난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쉬려고 들른 공원에서 노인을 만났고 그가 들려주는 말들이 특별하게 남는다. 마치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아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크림」, 48~49쪽)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안다.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는. 그래도 받아들이고 살아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이다. 『고양이를 버리다』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영화를 본 것과 야구 경기를 본 것에 대해 읽었기에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은 친근하게 다가온다. 야구장에서 보낸 시간, 요구르트 스왈로스를 응원했던 날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 대해서. 기발하고 기이한 상상의 서사보다는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는 하루키가 대단하다. 아마도 이런 게 작가의 힘일 것이다. 많은 것들을 함축한 ‘어떻게 잘 지내는가’라는 질문.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하는 데서 나온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131쪽)


8개의 단편 속 일정 부분은 하루키의 경험과 기억이 아닐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며 엇갈렸던 인연을 떠올리며 그들과의 시간을 복기하듯 소설을 썼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표제작 「일인칭 단수」는 대단한 성공은 아니더도 괜찮은 삶을 유지하는 나의 일상을 들려준다. 한 번씩 좋은 슈트를 입고 술집에 들어가 술을 주문하고 소설을 읽는 즐거움. 그리고 느닷없이 직면하는 상황에 당황하는 ‘나’.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상황와 만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잠시 마음이 주춤한다. 잃어버린 기억과 아무런 의미 없이 지나간 일들이 모두 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는 - 아마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 중요한 분기점이 몇 곳 있었다. 오른쪽이나 왼쪽,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거나 왼쪽을 선택했다(한쪽을 택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 적도 있지만,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경우가 오히려 많았는지도 모른다. 또한 항상 스스로 선택해 온 것도 아니다. 저쪽에서 나를 선택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 있다. 여기 이렇게, 일인칭 단수의 나로서 실재한다. 만약 한 번이라도 다른 방향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여기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거울에 비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일인칭 단수」, 223~224쪽)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만족하거나 후회한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의 결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떠올리기조차 싫은 과거를 딛고 살아가는 게 인생은 아닐까. 하루키는 그걸 아는 작가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집이 만족스럽다는 건 아니다. 나의 시점에서는 하루키의 소설에 대한 보편적 기대감을 생각하면 아쉽고 실망스럽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0-12-2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미세먼지 최악이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자목련님 거실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
│*** Merry ☆ Christmas!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I I         ☆
│ *** Merry ..:+ +:.. Christmas! ** ★
┼``:``:``:``:``:``:``:``:``:``:``:``:``:``:``:``:``:``┼
건강하고 행복한 메리 크리스마스 ^.~


자목련 2020-12-27 17:16   좋아요 1 | URL
이런 다정하고 귀한 인사,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