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얼지 않게끔 새소설 8
강민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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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사소한 변화를 알아봐 주는 이가 있다면 행운아다. 타인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더욱 그렇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그저 사회적 활동을 위한 관계로 인식하는 이가 많으니까. 입사 동기의 경우는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위로를 하는 사이로 발전하기도 한다. 직장에서 동료 이상의 감정을 키우고 좋은 친구로 발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실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강민영의 장편소설 『부디, 얼지 않게끔』속 인경에게 희진은 정말 고맙고 필요한 존재다.

인경과 희진의 직장은 여행사다. 인경은 고객을 인솔하여 계획을 짜고 가이드를 하고 희진은 경리 업무를 담당한다. 처음엔 서로 잘 몰랐다. 베트남 출장을 함께 가면서 인경과 희진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희진이 인경의 몸의 변화를 알아보고 언급하면서 둘은 급격히 친해졌다. 인경의 변화는 더위를 타지 않는 것이었다. 인경도 몰랐다. 자신이 무덥고 습한 여름에 땀 한 방울을 흘리지 않고 휴대용 선풍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희진의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몸이 달라졌다.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 카디건을 챙기고 선크림도 사용하지 않았다. 베트남 출장에서 인경과 희진은 변온동물처럼 변온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희진이 그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다고 했다. 기사, 논문, 자료를 공유해 주었다.

내 몸이 나도 모르는 사이 변온동물처럼 변하고 있다면 어떨까? 인경은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이해해 주는 희진이 있기에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인경은 희진을 알지 못했더라면 자신도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희진에 대해 편견이 가졌을 거라 생각한다. 타인의 배려와 이해 대신 소문을 믿고 그대로 판단하는 실수. 인경과 희진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실체를 마주한다. 더위에 강한 인경은 점점 두려워진다. 겨울이 오면 어떻게 될까.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자신에게도 그런 시기가 오는 건 아닐까. 인경은 운동을 시작하고 희진과 모든 걸 공유한다.

막바지 더위로 모두가 피하는 제주도 출장을 인경이 선택한 이유도 날씨 때문이었다. 인경에게는 최적의 날씨였다. 제주도로 희진이 휴가를 오면서 둘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날이 시작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걱정까지도. 인경에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는 건 최악이었다. 몸은 빠르게 반응했고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제품을 사들였다. 희진이 여름을 견디기 위해 많은 선풍기를 사용했던 것처럼. 하지만 처음 맞는 몸의 변화는 인경의 외부로 나타났다. 직장 동료와 상사는 얼굴색이 좋지 않다며 걱정했고 다양한 건강식품을 추천했다. 외출을 하지 않고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일은 견딜 수 있었지만 출퇴근은 점점 힘들어졌다.


“누구나 변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인경 씨처럼.”

나를 배웅하며 희진이 건넨 말을 떠올렸다. 정말 누구나 이렇게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는 거라면, 그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걸 버텨내고 있는 걸까. (중략)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온다면, 그 순간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차분하게 찾아보자던 희진의 말. 원인을 찾아 헤매기보다 앞으로를 대비하자는 희진의 다독거림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희진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들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믿기로 했다. (80~81쪽)

인경은 휴직을 하고 동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인경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몸의 변화와 일상의 균열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어디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도움을 청할 수 있었을까. 가족과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도움을 받으려면 자신의 상태를 공개해야 하는데 그 파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희진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깨어날 수 있을까. 불안을 간직한 채 잠에 빠져드는 인경. 모든 걸 희진에게만 의지할 수 없는 인경과 그런 인경을 격력하고 응원하는 희진이 나누는 말에 울컥해진다. 단 한 사람의 응원만으로도 힘을 낼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나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통으로 힘겹게 살아온 이들의 시간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겨울은 추운 게 좋겠어요. 겨울에만 살아 있는 동물들도 있을 텐데. 나는…… 겨울에 이렇게 자도 되니까요.”

“봄이 빨리 오면 좋겠네요.”

희진의 말을 들으며 눈을 깜박였다. 다시 눈을 뜨면 정말로 봄이 와 있을까. 겨울을 버틸 수 있는 이유가 저기에 잇다. 조금만 내가 더 늦게 가 변해버렸다는 걸 알았다면, 함께 베트남에 가지 않았더라면 영영 어긋나버렸을 것이 분명한, 겨울을 이겨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저기에 있다. (199쪽)

누구나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조건 배척하고 선을 긋고 경계한다. 소설 속 인경처럼 변온 인간이 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익, 시선,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들면서 함께 할 수 없다고. 그러니 단순하게 이 소설은 변온이라는 소재만을 대입해 읽을 수 없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함께 시간을 나누고 계절을 보내는 다종다양한 삶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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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31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도 몸 온도가 바뀔 수 있을지... 이건 상상이지만... 어떤 만화에서 본 게 생각나기도 하네요 벌레(요괴에 가까운)한테 기운 같은 걸 빼앗기고 겨울 동안에는 잠들었다가 봄에 깨어나는... 그것하고 이건 조금 다르지만, 그게 생각나는군요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한사람만 있어도 괜찮아요 그 한사람을 만나기가 아주 어렵지요

자목련 님 올해 마지막 날이네요 벌써 그렇게 되다니... 올해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첫날 잘 맞이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새해에도 좋아하는 거 하시기 바랍니다


희선

자목련 2020-12-31 10:06   좋아요 2 | URL
소설을 읽으면서 언제나 인간도 그렇게 변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환경에 적응하려고요.
한 해의 끝이네요. 다정한 이웃으로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건강한 연말 보내시고 즐거운 새해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