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얼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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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을 행복하다. 삶 전반에 자신만이 아는 기쁨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는 고통으로 점철된 삶으로 비칠지라도 상관없다. 나만의 기쁨을 누리고 그것을 채우는 일에 만족하고 집중할 수 있으니까. 누구도 그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다가 지칠 게 뻔하다. 우리는 그가 아니고 그도 자신의 삶에 대해 설명하거나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임스 설터의 장편소설 『고독한 얼굴』의 주인공 ‘랜드’도 다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나갈 뿐이다. 그에게 삶은 그런 것이다. 랜드에게 산을 오르는 일, 고산 등반은 그 자체가 삶이었다. 어떻게 등반을 시작했고 무엇 때문에 산에 매료되었는지 소설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오르는 일에 기쁨을 두는 것일까. 아니다. 랜드의 욕망은 산 정상을 오르는 정복에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프랑스의 알프스 ‘샤모니’의 드뤼까지 죽음의 여정을 시도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 친구 캐벗과 드뤼 서벽을 오르는 과정에서 등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는 너무 두려웠고 조바심이 났다. 부상을 당한 캐벗이 죽을까 봐, 그런 친구를 홀로 남겨두고 랜드가 혼자 암벽을 끝낼까 무서웠다. 동시에 도대체 산악 등반에 성공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길래 그것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물론 소설을 다 읽고서 나는 끝내 알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싶지 않았다. 랜드만의 기쁨은 그에게 속하는 것이니까.


물론 설터가 구사한 등반의 과정은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가 그려낸 문장을 통해 나는 눈앞에 설경의 알프스를 오르는 두 남자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등반 소설이라는 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느끼는 전율을 만끽하는 스포츠 정신을 알려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어쩌면 삶이라는 건 알 수 없는 길을 찾아 등반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동화될 수도 있다. 수없이 마주하는 돌방상황, 그때마다 달라지는 선택지와 그에 따른 책임들. 소설 속 ‘산’처럼 우리도 저마다의 ‘산’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산악인은 산을 알아야 한다. 속도와 판단은 필수적이다. 계속 오르든 하산하든 고전적인 결정은 언제나 같다. 계속 오르는 것이 더 쉬운 때가, 사실상 정상에 이르는 것이 유일한 출구인 때가 온다. 그 순간에도 여전히 힘이 있어야 한다. (93쪽)


등반 과정 중에는 산이 무엇도 허락하지 않는 가장 어렵고 힘든 피치가 있다. 그 지점에서 산은 조그만 움직임도, 아주 작은 희망도 허락하지 않는다. 머리카락 한 올보다도 가는 선 하나만 있을 뿐인 그곳을 어떻게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109쪽)


랜드가 드뤼에서 고립된 조난자를 구조한 후에는 그 기쁨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언론이 주목은 물론이고 산악계에서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랜드는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지 세상이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만의 길을 원했다. 스스로 고독을 자처한 젊은 청년은 삶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도무지 잘 모르겠다. 그러기엔 뭔가 부족하다. 랜드에게 산이 왜 유일한지 와닿지 않는다. 거기 산이 있어 오른다는 진부한 설명보다는 절실한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는다. 랜드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지난 삶이 어떠했는지 소설을 통해서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대학에 실패하고 군대에서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쓸쓸한 낙오자 정도로 짐작할 뿐이다.


정착하는 대신 떠돌이처럼 유랑의 삶을 즐기는 방랑자란 표현을 쓸 수도 있다. 그것은 무책임의 다른 말이다. 그가 만나고 관계를 맺은 후 떠나버린 여자들은 마치 하나의 소모품처럼 여겨진다. 왜 떠나야 하는지 그가 산으로 향하는 맹목적인 이유에 대해 단 한 번도 상대에게 진심을 다해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랜드와 마찬가지로 소설 속 랜드가 만나는 등반가들도 비슷하다. 때문에 산은 거대한 남성성을 상징하고 하나의 안전한 도피처로 여겨진다. 물론 도피처에는 위안, 위로, 안식, 휴식의 뜻이 있다.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산을 찾는 이유처럼 소설 속 랜드도 그 안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웠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등반을 통해 나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과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랜드를 변화시킨 것은 고독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깨달음도 그를 변화시켰다. 중요한 것은 존재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는 여전히 위험한 등반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는데, 다른 식으로도 그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경의였다. 그는 기꺼이 등반에 경의를 표했다. 은밀한 기쁨이 그를 채웠다. 누구도 질투하지 않았다. 거만하지도 수줍어하지도 않았다. (174쪽)


『고독한 얼굴』 은 제임스 설터가 실존 인물인 한 산악인에 대해 조사하고 자료를 찾아 읽은 후 완성한 소설이다. 때문에 등반의 고통과 기쁨을 아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고전이나 교과서처럼 생각할지도 모른다. 생생하게 전달되는 등반 과정과 산을 오르는 동안 랜드의 심적 변화에 공감하며 함께 산을 타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을 대하는 숙엄한 분위기나 경건한 태도는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인간이 지닌 절대적 고독을 랜드를 통해 보여주려는 설터의 의도는 충분히 알겠지만 아름다운 울림으로 기억하기엔 그 파동이 너무 짧고 약하다. 


그럼에도 랜드의 고독과 산을 올랐을 때 그가 맛본 기쁨은 인정한다. 우리가 저마다 삶을 사랑하는 것처럼 랜드는 산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사랑했다. 삶이라는 게 항상 산의 정상인 꼭대기에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도 느꼈을 것이다. 삶과 고독은 어디에나 있다. 산의 초입에도 산의 중반에도 산의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그 산을 바라보는 지점에도. 누구나 자신만이 아는 고독과 기쁨이 있으니까. 랜드는 그것을 혼자만 간직하려 했고 설터는 함께 나누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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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아직 -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부자 재탄생’ 프로젝트
세오 마이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스토리텔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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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한다. 쉽게 떼어 놓을 수 없는 운명적 관계라는 뜻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처럼 어려운 게 없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뜻대로 커주지 않고 자식은 부모가 너무 자신을 모른다고 여긴다. 처음부터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서로를 향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서로를 힘들게 하고 다른 방향으로 흐를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25년 만에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오 마이코의 소설 『걸작은 아직』 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25년 만에 처음 만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니. 아이를 잃어버렸거나 입양 보내고 긴 시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만난 감동의 스토리가 아닐까 기대할지도 모른다. 전혀 아니다.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집에서 소설만 쓰는 아버지 가가노와 아들 도모는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가가노와 미쓰키는 한 번의 만남으로 도모가 생겼지만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 미쓰키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가가노는 양육비를 보내는 조건으로 한 달에 한 장의 사진을 받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가가노는 사진으로만 도모를 만났다. 그런 도모가 자신을 찾아왔다.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첫 만남으로도 당황스러운데 도모는 가가노의 집에서 지내겠다고 한다.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는 동한 한 달 정도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원고는 메일로 보내고 편집자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는 가가노에게 도모의 방문은 그의 일상을 흔드는 일이 되었다. 가가노와 달리 도모는 거리낌 없이 생활을 이어간다. 출퇴근을 하면서 만든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가지고 와 가가노와 함께 먹는다. 늘 먹던 커피도 도모의 방식은 달랐고 가가노는 어느새 그 맛을 좋아한다. 편의점에서 사 온 음식을 가가노가 사러 나가기에 이른다.


도모는 가가노를 집안이 아닌 밖으로 이끈다. 아주 사소한 커피 주문부터 이웃을 만나고 동네 소식을 듣고 가을 축제에도 참여한다. 도모가 없었더라면 가가노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가가노는 조금씩 자신을 아저씨라 부르는 아들 도모가 궁금해진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아이, 미쓰키는 한 장의 사진만 보내고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사진 속 이야기를 도모에게 들으면서 가가노는 자신의 부모를 생각한다. 소설가가 되겠다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부모, 그 뒤로 연락을 하지 않은 가가노다. 지난 25년 동안 어떻게 아들을 한 번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버지나 어머니를 찾지 않았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가가노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한 사정이 있으니 가가노와 도모는 양호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된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도모는 가가노에게 집으로 돌아간다고 전한다. 가가노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도모를 붙잡는다. 하지만 정작 도모의 성장과정이나 어머니인 미쓰키에 대한 건 하나도 묻지 못한다. 모두 알고 싶지만 말로 설명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는 오랫동안 소설 속 대화만 들어왔다. 등장인물들은 쉽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고민을 털어놓고, 빛나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풀이 죽어 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슴속에 간직한 진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 마음속 어딘가에 소망. 산다는 건, 나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그런 질문을 굳이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대화는 더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그런 대화가 겹쳐지면서 그 안에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더라도 도모가 잘 자랐음을 쉽게 알 수 있듯이. (199~200쪽)


한 달의 시간으로 지난 25년의 시간을 채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을 통해 가가노와 도모 사이에는 뭔가 생긴 건 맞다. 도모의 방문으로 가가노는 28년 만에 자신의 부모를 찾아 나선다. 가가노는 아버지이자 아들이니까. 가족이라는 건 무엇일까. 단순히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관계는 아닐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응원하고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이라면 괜찮은 가족일까. 


25년 만에 처음 만나는 부자라는 설정은 뭔가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기대와는 다르게 소설은 따뜻하고 유쾌한 일상으로 흘러간다. 잔잔하고 평온한 소설은 부모가 된다는 게 무엇이며 어떻게 가족이 탄생하고 만들어지는지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25년 만에 시작된 아버지의 역할, 고독으로 가득했던 어른 가가노가 세상과 소통하는 성장소설이다. 이제 막 부모가 되는 이들에게, 부모로 살면서 여전히 자식이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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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9-19 1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럭키걸의 세오 마이코네요. 구매각입니다~

자목련 2022-09-20 11:51   좋아요 1 | URL
기억의집 님은 이미 작가의 팬이시군요. 그렇다면 즐겁게 만나실 수 있을 듯해요^^*

mini74 2022-09-19 1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란 영화제목이 문득 떠오르네요 ~ 25년 만에 시작되는 아버지 역할이라니. 흥미가 생깁니다 *^^*

희망으로 2022-09-19 13:37   좋아요 1 | URL
아....저도 그 영화가 떠올랐어요.
부모와 자식은 참으로 특별한 관계인것 같죠.
어쩌면 여기 알라딘에서도 특별한 친구로 발전된 케이스가 많을것 같습니다^^

자목련 2022-09-20 11:5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아버지라는 주제를 생각하면 그 영화도 비슷합니다. 큰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소설이었어요^^
 
톨락의 아내
토레 렌베르그 지음, 손화수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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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을 가린 덥수룩한 수염, 오뚝한 코, 가늘게 뜬 눈, 표지 속 남자는 분명 ‘톨락’일 것이다.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괴로운 표정을 짓는 이 남자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노르웨이 문학의 거장 토레 렌베르그의 소설 『톨락의 아내』는 제목만 보면 아내의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정작 소설을 들여다보면 톨락의 아내 ‘잉에보르그’가 아닌 그녀의 남편 톨락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화자 톨락이 자신의 지난 삶과 실종된 아내 잉에보르그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상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톨락을 온전히 사랑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던 아내는 어디로 사리진 것일까. 소설은 오직 톨락의 시선을 통해 전개된다. 사라진 아내, 아들과 딸, 주변 상인과 이웃은 단역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톨락에 의한 톨락을 위한 톨락의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대 중앙에 덩그러니 앉자 고해성사를 하는 한 남자를 상상하게 된다. 아내가 사라진 후 그의 곁에는 입양한 아이 ‘오도’가 있을 뿐이다. 장애가 있는 아이 오도를 입양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생모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해 아내에게 동의를 구하고 데려온 정도다. 아내는 오도를 정성으로 대했고 치료를 위해 애를 썼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톨락은 그렇게 믿었으니까. 


톨락은 스스로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임을 인정한다. 도시 외곽의 목재소만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내만 있으면 다 괜찮았다. 톨락이라는 거대하고 단단한 성에 들어와 살 수 있는 이는 잉에보르그, 단 한 사람뿐이다. 시대가 바뀌고 도시로 이사를 가자는 아내도 그를 꺾을 수 없었다. 아들과 딸에게도 톨락은 친절하거나 좋은 아빠가 아니었다.


톨락은 자식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소통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자신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 자식들과 자신 사이에 불편함은 잉에보르그가 해결해 주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다 과거일 뿐이다. 아내는 실종되었고 아이들은 성장해서 각자의 삶을 꾸려 톨락의 곁을 떠났다. 오도만이 톨락과 지낼 뿐이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데는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와 화해하기 마련이다.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과거에 행했던 모든 일과 과거에 보았던 모든 것과 과거에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차례차례 눈앞에 스친다. 하나도 빠짐없이, 좋든 싫든, 바로 그때, 우리는 스스로와 화해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다. (55쪽)


톨락은 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처럼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자식들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톨락이 꺼내려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제목이 말해주는 아내 잉에보르그에 관한 것이리라. 톨락과 잉에보르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독자 역시 가장 궁금해하는 일이다. 물론 이미 톨락의 고백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외통수와 고집불통의 남자, 그를 닮은 아이 오도에 관한 진실까지도 말이다.


톨락은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고 자신할지도 모른다. 친절하고 다정한 잉에보르그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자신할 것이다. 그랬기에 오도를 대하는 잉에보르그의 이중적 태도에 그의 행동도 후회가 아닌 사랑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정해놓은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남자. 완고하고 억센 가부장적인 아버지, 잉에보르그를 향한 모든 게 사랑이라고 믿는 남자의 치유될 수 없는 고통. 스스로가 부여한 고통을 그는 끝낼 수 있을까. 


『톨락의 아내』가 특별한 점은 실종된 아내를 내세워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와 스릴러 방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자전적 소설이자 독백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톨락과 그의 아내가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건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 톨락이란 남자의 어두운 내면을 표현하는 토레 렌베르그의 문체가 이 소설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을 서툴게 내뱉으면서도 단호하고 차분하게 자신을 객관화시킨 문장은 아름답다. 압축된 세 문장으로 소설의 전부를 보여준다. 이것으로 『톨락의 아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내 이름은 톨락. 나는 과거에 속한 사람이다. 나는 이 세상 어느 곳과도 걸맞지 않는다.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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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9-07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교보에 갔다가 이 책을
보고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얌전하게 내려 놓았습니다.

대신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
을 샀네요.

결국 톨락도 읽게 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자목련 2022-09-07 16:05   좋아요 2 | URL
이 책, 묘하게 매력적입니다.
보뱅의 <가벼운 마음>을 사셨을까요?
 
종말주의자 고희망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97
김지숙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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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주의자 고희망』 이란 반어적 표현의 제목을 보고 누군가는 종말에 머물고 누군가는 희망에 머물 것이다. 종말에 시선이 닿았더라도 종말을 원하기보다는 희망을 바라는 게 진짜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주인공 희망이 어쩌다 종말주의자가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희망은 인터넷 플랫폼에 소설을 쓰는 중학생 작가다. 10대들이 좋아할 달달한 로맨스나 판타지 같은 건 쓰지 않는다. 희망의 소설 속 주인공은 항상 죽는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도 모두가 사라진 종말의 세계에 남겨진 아이들 H, J, D가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종말주의자 고희망』는 액자소설이다. 중학생 고희망의 일상과 희망이 그려낸 종말에 대한 이야기.


희망이는 모범생이다. 부모님 말도 잘 듣는 아이다. 친구는 단짝 지우와 동네 친구 도하가 있다. 부모님은 할머니를 도와 국밥집에서 일한다. 아래층에 사는 삼촌은 대기업에 다닌다. 문제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중학생의 모습이다. 그러나 가족에게는 상처가 있다. 5년 전 희망의 동생 소망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희망은 동생을 돌보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동생의 죽음 이후로 할머니가 희망이네 가족을 불러들였다. 소망이의 죽음에 슬퍼서 엄마나 아빠는 희망이를 살피지 못했다. 엄마는 여전히 약을 먹고 아빠는 표정이 사라졌다. 그런 희망이를 유일하게 챙긴 사람이 요한 삼촌이다. 삼촌은 희망이를 위한 책을 골라주고 희망이는 서재에서 삼촌의 책을 읽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희망이네 집에서 소망은 금기시된다. 소망이가 떠난 날에 엄마는 소망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지만 소망이를 추억하거나 기억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희망이는 엄마와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 희망이가 1등을 해도 아무도 모른다. 시험이 끝난 후 맛있는 걸 먹고 후련함을 즐기는 것도 삼촌과 함께다. 우연히 삼촌이 게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퀴어 축제에 참가해 삼촌을 응원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희망이네 집은 흔들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할머니는 가게에 나오지 않았고 삼촌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희망이네 가족에게는 소망이의 사고와 삼촌이 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희망이는 어른들이 이상할 뿐이다. 삼촌의 일에 대해서도 부모님은 희망이에게 알려주거나 생각을 묻지 않는다. 퀴어 축제에 간 사실과 뒤늦게 기말고사 1등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혼낼 뿐이다. 그런 엄마와 말다툼 끝에 희망이는 집을 나오지만 갈 곳이 없었다. 희망이가 찾아간 곳은 5년 전 살았던 동네, 소망이가 사고로 죽은 장소였다. 그곳에서 희망이는 소망이한테 사과를 하고 제대로 된 이별을 한다. 소망이의 사고에 대해 희망이의 솔직한 마음을 들은 엄마는 희망이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엄마도 일을 그만두고 소망이 곁에 있었더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 자책한다고. 


『종말주의자 고희망』 는 제목처럼 무겁거나 우울한 소설은 아니다. 청소년 소설답게 풋풋함과 발랄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아이돌에 열광하는 지수(J), 희망이(H)와 도하(D)의 로맨스, 어긋나는 우정으로 고민하는 십 대의 모습이 싱그럽다. 거기다 희망의 소설을 읽는 재미도 남다르다. 종말의 순간에 살아남은 아이들의 공통점이 눈물이라는 점도 흥미롭고 남겨진 아이들이 서로를 지키며 종말을 기록하는 모습은 기특할 정도다. 특별한 건 종말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종말을 통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기대를 한다는 점이다. 희망의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아무리 소중해도, 어려도, 건강해도, 한순간에 죽을 수 있잖아. 그런 애길 하고 싶은 거야.” (158쪽)


희망의 말처럼 언제 어디서든 종말과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종말은 모양과 형태가 다양할 것이다. 종말을 두려워하는 대신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 도망가는 게 정답은 아닐 것이다. 소망이의 죽음을 피하기만 했다면 희망과 엄마 사이에는 오해가 깊어졌을 것이다. 할머니가 삼촌을 인정하기까지 일정한 거리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종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가 죽음과 종말에만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곧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하다는 걸 잘 모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줄곧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까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말이다. (215쪽)


십 대의 등장인물을 내세운 청소년 소설이자 성장소설이지만 모두에게 좋은 소설이다. 가족 간의 갈등이나 말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방관한 적이 없는지 묻는다. 그랬다면 이제라도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삶이라는 걸 알려준다. 삶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몫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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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07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 *^^*

자목련 2022-10-08 13:53   좋아요 1 | URL
미니 님도 신나고 환한 시간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2-10-07 2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22-10-08 13:53   좋아요 2 | URL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 조심하고요^^

거리의화가 2022-10-08 2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연휴 잘 보내시길^^

자목련 2022-10-10 10:37   좋아요 1 | URL
거의의화가 님 저도축하드려요.
연휴 마지막 날, 즐겁게 보내세요^^

thkang1001 2022-10-09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자목련 2022-10-10 10:38   좋아요 2 | URL
항상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환한 하루 이어가세요^^

얄라알라 2022-10-10 17: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H, J, D
영문 대문자와, 실제 한국어 이름, 십대 이야기를 다룬 액자소설 리뷰,
자목련님 글 또한 액자소설처럼 ~~
매번 축하드리러 오게 됩니다. 자목련님 계속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2-10-11 14:53   좋아요 2 | URL
얄라 님의 응원과 격려고 힘이 나는 오후, 감사합니다!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
임이랑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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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사는 게 좋은 이가 얼마나 될까. 외모부터 시작해서 성격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속상함만 커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을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건 평생의 숙제는 아닐까. 감정을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취약한 감정이 있기에 그 감정이 등장하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것에 대해 잘 알고 다스리기 위해 누군가는 상담을 받고 약을 먹기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시간을 견딘다. 밴드 ‘디어클라우드’로 활동하며 식물집사인 임이랑은 『불안이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리라』를 통해 자신만의 방법을 알려준다. 자신의 불안에 대해 그것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누구나 불안을 경험한다. 크게는 세계가 무너질 것 같은 불안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에 휩싸인다. 저마다의 불안은 다르듯 그것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은 통일된 무엇이 있을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예민한 자신의 상태를 알았던 저자는 열세 살에 자실 충동을 느꼈다. 열세 살짜리가 무슨 그런 생각을 할까 싶다가 무엇이 그토록 그를 불안하고 힘들게 만들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생긴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나의 약점과 나의 모순, 감추고 싶은 비밀과 굳이 들추지 않는 게 이로운 사실들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은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증폭된다. 내 보이고 싶지 않은 것들은 아주 힘이 세다. (33쪽)


그가 꺼내놓은 깊고 커다란 상처의 시작은 화상으로 인한 몸의 흉터였지만 어린아이를 향해 내뱉는 어른들의 말이었다. 외할머니의 “저 지지배가 지 애미 잡아먹네”란 말은 평생 그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였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화상 자국이 깊게 남은 발이 얼마나 싫었을까. 자기혐오로 가득했을 시간을 흉터는 그저 흉터일 뿐이라 인정하는 그가 대단하다. 타인과 세상의 시선이 아닌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는 자신의 예민함을 무기로 뾰족해진 삶이 아니라 예민하면서도 안전한 사람으로 살기를 원한다. 예민함 대신에 각자의 상태를 넣어 보면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다. 그가 식물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식물이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듯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자신의 세계를 지닌다. 결국 자신을 돌보며 사는 일이다.


하나의 식물은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식물은 이파리마다 각자의 역사와 기억을 기록한다. 나는 그 세계를 목격하고 관여하며 식물의 세계와 나의 세계를 연결하고 분리한다. (68쪽)


어쩌면 불안과 함께 지낸 시간이 없었더라면 그는 식물과 글쓰기가 주는 기쁨과 위로를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불안이 꼭 나쁜 건 아니다. 불안을 알면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필요한 통화를 해야 하거나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생긴 불안은 연습을 하게 만든다. 혹여 실수하지 않을까 두려움 마음을 키우는 대신 연습을 하고 준비를 하며 불안과 마주하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분은 글에 대한 애정을 갖는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쓰려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처음에는 너무 어렵지만 이상하게도 한 글자 한 글자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낀다.


글쓰기는 즐겁다. 책상 앞에 앉아 한 글자씩 쓰기 시작하면 비밀스러운 짜릿함을 느낀다. 무의식 저 끝에 잠들어 있던 단어와 마음을 연결해 새로운 문장을 만들고 문장과 문장을 엮으며 이야기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나를 데리고 간다. (125쪽)


에세이는 자신을 보여주는 글이다. 한없이 쉽게 여겨지면서 한없이 어려운 것이다. 임이랑은 그것을 잘 안다. 적절하게 보여줄 것과 감추어야 할 것의 균형을 맞춘다. 자신의 불안과 상처를 통해 자신이 느낀 예민한 일상과 감정을 공유한다. 자신과 같은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라는 걸 알기에.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이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처하려는 그의 태도는 단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며 삶을 살아가는 내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사람은 어렵다. 어떤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려워진다. 함께 지내온 시간과 역사가 쌓일수록 서로에게 더 복잡한 마음을 적립하고 만다. 이타적인 줄 알았던 사람이 한없이 이기적인 모습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나쁜 사람도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좋은 사람의 가면을 쓴 채로 곁에 머무르기도 한다. 어차피 계속 모양을 바꾸는 게 인간관계라면 나는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 앞에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한다. (204쪽)


저마다 지닌 불안의 형태는 다르다. 하나의 불안이 사라진다고 해서 바로 평온의 상태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온통 불안으로 가득한 세상이라고 해도 하나 이상하지 않을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래도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는 일도 좋을 것이다. 그 누구의 불안도 아닌 나의 것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불안을 만지고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과 믿음을 안겨줄 테니까.


거대한 바위 같은 불안 앞에 능동적인 마음을 갖고 싶어서 불안을 형상화하며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쉽게 잘라 옮길 수 있는 두부 같다고 상상한다. 무기력한 상태로 거대한 모판에 담긴 불안이 나의 중심에 머무르게 두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조각 두부로, 조각난 두부를 젓가락으로 집어야 할 정도로 잘게 잘라 마음속 이 방, 저 방으로 옮겨 가며 하나씩 처리한다. (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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