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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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고 좋아하는 동생은 공부하는 아이다.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지속하는 동안 그녀는 항상 공부를 했다.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더 많이 알기 위함이고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함이다. 관심을 갖는 분야는 다양해서 만나면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이쯤 되면 예상했겠지만 글도 쓴다. 독립출판으로 곧 자신만의 책이 나올 예정이다. 정희진의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를 읽으면서 줄곧 그 동생이 생각났다. 이 책을 보면 좋아하겠구나, 어쩌면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정희진의 책을 몇 권 읽다 말았다. 그러니까 어떤 책은 끝까지 읽지 못했고 어떤 책은 읽기만 했다. 읽으면서 좋았지만 그 좋다는 걸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그 훌륭함을 내가 망치는 글을 쓸까 봐 두려웠다는 핑계를 대고 싶다. 그러니 이 책에 대한 리뷰 또는 감상을 쓰는 일은 한 편으로는 용기가 필요했고 한 편으로는 어떻게든 이 책이 너무 좋아서, 당신이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고 싶어서다. 아무튼 그렇다.‘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란 제목만 보며 글쓰기에 대한 안내서 같지만 이 책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공부 좀 하라는 내용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적더라도 최선을 다해 다른 세계를 만들고 싶다. 자본에 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많은 글 쓰는 이들의 고민일 것이다. (13~4쪽)


글쓰기는 결국 가치관의 문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돈이든 명예든 자기실현이든 고통의 승화든 추구하는 바가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글쓰기는 왜 쓰는가에 ‘따른’ 어떻게 쓰는가의 문제다. (15쪽)


글을 쓴다는 건 가치관의 문제라는 것, 이 말을 오래 생각했다. 누구나 쓰고 누구나 읽고 원하는 건 뭐든지 쓰고 발표할 수 있는 세상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이라 주저하고 어렵다. 무엇을 쓰는가, 무엇 때문에 쓰는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럼 결국 쓰기 위해 나를 알아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게 뭔가를 알아야 하니까. 지금 내가 쓰는 건 이 책이 좋아서 그걸 알리고 싶은 거니까.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라는 부제가 있지만 내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쓰기와 공부다. 내가 모르는 걸 안다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모르는 데 어떻게 알겠는가. 그게 가능한가?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나에 대한 공부.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읽은 『한나 아렌트 평전』 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공부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란 말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이런 문장에서 그랬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란 결국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말. 정확하고 뻔하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인간은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존재이다. 본질적인 상태는 없다. (33쪽)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파악한 다음에 가능하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은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관심이 없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뭔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다. (56쪽)


쓰기가 최고의 공부이자 지식 생산 방법인 이유는 쓰는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138쪽)


정체성을 찾는 사춘기도 아닌데 우리는 여전히 나는 누군인지 사는 게 뭔지 알지 못해 힘들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는 집중했던 적이 없다. 내가 있는 동네를 시작으로 점차 확장하면 지역사회, 국가, 세계까지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있는 이 작은 사회는 누가 살고 있는가, 나를 포함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가 돌아볼 수 있다. 말하기와 듣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나가 크게 정치 참여나 학교나 공공기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가 무슨 주의, 사상, 페미니즘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모든 개개인이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사회를 이루고 구성하니까. 개별성의 존중도 그만큼 필요하다. 그러니 융합이라는 것도 저자의 설명처럼 먼저 내 몸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가 경험하고 그것이 퍼져 공동체나 함께 공부하는 도반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융합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당파성의 지속적인 생산이라고 하는데 가치관의 충돌과 재생산이 없다면 공동체나 도반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건 이런 문장과도 통한다고 생각한다. 융합에서 중요한 건 갈등과 공명인 것이다. 새로운 것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필수과정이니까. 


나는 내 몸의 역사다. 개인의 몸은 그 개별성 때문에 앎의 내용과 가치관에 따라 현실과 합쳐지는 범위가 다르며 만들어지는 지식도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101쪽)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는 누구나 지녀야 할 가치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또 경우에 따라 갈등하거나 공명한다. (117쪽)


물론 지나친 갈등은 문제를 불러온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세대 간 간극은 어떻게 봐야 할까. 각자 경험한 시간이, 앞서 말한 것처럼 역사이므로 서로가 살아온 시대가 비교의 대상과 기준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하나의 일자리를 두고도 중년이나 노년이 청년의 그것을 빼앗는다고 말하는 분노하는 시대. 선거철이 되면 더욱 커지는 목소리들. 어떤 세대를 살든 그 세대에 한정된 삶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역시 공부일 것이다. 돈이 되고 취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앎이라는 공부. 현재의 나이를 감당하기 위한, 인생을 살아가는 공부 말이다. 


우리는 각자 나이를 감당해야 한다. 하지만 가난하고 나이 든 이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간주되는 이들을 존중하자. 이것이 공정이다. (177쪽)


강자의 주관성은 객관성처럼 여겨져서 투쟁해서 쟁취할 필요가 없는 반면 약자의 삶은 그렇지 않아 고달프다. 약자에게 객관성은 쟁취해서 확보해야만 가능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생, 사회 운동이다. (221쪽)


굳이 정치적인 이슈를 들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 정말로 필요한 건 제대로 된 융합이다. 서로의 이익에 따라 절충하는 게 편협한 태도의 융합이 아니라. 어떤 위치에 있든 공부는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고위 계층에 있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현재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달라질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우리 사회는 어려움에 처했다. 그러니 공부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 책을 읽는 일은 공부의 방법 가운데 하나이고 자신만의 언어,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일이다. 이 책으로 정희진의 글쓰기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책으로 시작하는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마침내 쓰는 일은 중요하다. 나를 알고 나에 대해 쓰는 일, 모르는 나를 천천히 아는 나로 바꾸어 가는 과정, 그게 융합은 아닐는지. 진짜 글쓰기가 폭발하는 순간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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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1-18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공부를 응원합니다💪

자목련 2022-11-21 09:05   좋아요 1 | URL
쟝쟝 님의 응원을 받아 행복합니다!!
 
서핑하는 정신 소설, 향
한은형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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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나쁘면, 하나가 좋다. 세상은 그렇게 시소처럼 양쪽으로 기울게 만들어져 있다고, 그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려는 게 나라고. 가벼워졌다 무거워졌다, 다시 가벼워졌다가 하면서. 발이 땅에 닿았다 떨어졌다 다시 닿았다가 하면서, 또 한 번 날아오를 시간을 기다리면 되었다. (11~12쪽)


살다 보면 나만의 탈출구가 필요한 순간을 만난다. 삶이 주는 온갖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문 말이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문을 우리는 너무 늦게 발견하거나 끝내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직 나로 존재하는 순간, 내 의지로 행동할 수 있는 무언가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한은형의 장편소설 『서핑하는 정신』은 얼핏 제목만 봐서는 서핑에 대한 소설이 아닐까 싶지만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열고 나갈 수 있는 그 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서핑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고도 말하긴 어렵다. 누군가에게 서핑은 그런 문이니까. 


주인공 제이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열 살까지 살았지만 서핑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혼자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살고 있다. 직계가족이 없는 큰 이모의 유산으로 아파트가 하나 생겼다. 양양이 아파트.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아파트를 처분할까 싶은 마음에 양양의 아파트를 찾았다. 그때까지 제이에게 서핑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었다. 모두가 분주하고 약속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시즌에 누가 서핑을 하겠는가. 우연히 들어간 술집에서 옆자리의 대화를 듣다가 ‘와이키키 하우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서핑 강습을 신청하게 된다.


놀랍게도 강습을 신청한 사람들은 또 있었다. 제이까지 다섯 명이 모였다. 어제 술집에서 만난 양미가 가게를 운영하고 서핑을 강습했다. 모두 서핑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 그러니까 한 번도 서핑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양미의 강습은 이론부터 시작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서핑 소설일까 기대할 수도 있다. 그렇긴 하다. 양양 바다를 앞에 두고 서핑에 대해서, 서핑의 용어에 대해 설명한다. 고요해 보이지만 무서운 양양의 바다에 대해, 파도에 대해. 차가운 겨울 바다 위에 보드에 올라타려는 이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제이를 포함한 수강생의 면면도 흥미롭다. 닉네임으로 대화를 나눈다. 양양 맥주를 만들고 싶은 남자 돌고래, 시간 강사로 서핑을 연구하는 남자 해파리, 금테 안경을 쓴 남자 상어, 쇼핑몰을 하다 망한 우뭇가사리, 제이는 미역. 무엇이 그들을 이 바다로 불러 모았을까. 그들은 서핑을 배우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고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서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소설을 통해 서핑에 대해 관심이 생긴 건 사실이다. 특히 어른들의 캠프파이어라고 설명하는 에고서핑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자아를 서핑하는 시간, 뭔가 숙연해진다고 할까. 양미의 말처럼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 알아보고 나 스스로 알아보는 시간, 우리는 그런 시간을 갖은 적이 있었던가.


화자인 제이는 속엣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다. 직장에서도 누군가 만나는 관계에서도 그저 듣기만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에고서핑을 하는 동안에도 제이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쪽이다. 서핑이 아니라면 만나지 않을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는 시간, 서로를 가만히 위로하는 시간, 혼자인 동시에 함께인 시간. 서핑을 통해 모였지만 정작 중요한 서핑이 아니라 가만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를 들여다보는 게 행복했다. 


보통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면서 보통의 서핑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나는 보통의 사람이므로.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보통 이상으로 애쓰고 보통 이상으로 힘들어하고 보통 이상으로 출근하기 싫어하는 보통의 사람. 보통으로 단순하고 보통으로 고뇌하고 보통으로 기뻐하고 보통 이하로 슬퍼하고 보통 이상으로 사랑을 느끼는. (233쪽)


소설은 담담하게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혼자 다스리던 제이의 내면이 서핑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섬세하게 보여준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서핑에 대한 책을 읽고 직장과 일상에서도 서핑을 생각하는 제이. 제이의 가슴속으로 서핑이 들어왔다고 할까. 파도를 잡고 타는 일은 바닷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니까. 도시의 서핑, 우리 인생에서 파도는 어디서든 만나고 자신 있게 타고 일어설 용기가 필요하니까. 


위대한 게 뭔데?

지지 않는 거.

뭐에 지지 않는?

자기에게 지지 않는 거.

내일의 해가 뜨면 내일이 서핑을 하는 거지.

오늘의 파도에서는 오늘의 서핑을 하고. (274쪽)


누군가 이 책을 시작으로 서핑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서핑을 시작하지 않더라도 양양 바다를 찾을 않을까. 서핑을 몰랐던 나도 무섭고 차가운 파도가 아니라 따뜻하고 다정한 파도를 타는 근사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서핑을 소재로 한 따뜻하고 포근한 소설이다. 조금이나마 내 안의 나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서핑을 통해서만 나를 알고, 나를 알아가는 건 아니다. 제이에게 서핑이 그러했듯 저마다의 서핑이 있을 것이다. 서핑하는 정신은 ‘자유를 찾으려는 적극적인 몸부림’( 307쪽)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자유를 찾으려는 행동만 있다면 삶은 매 순간 벅찰 것이다. 나만의 문을 열고 언제든 자유롭게 나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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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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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두 번 진행된다. 처음에는 서로 고립된 점의 우연으로, 그다음에는 그 우연들을 연결한 선의 이야기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중에서)


어쩌면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거나 먼 훗날 알게 되는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그런 확신이 들었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사느라 돌아보지 못한 어떤 기억들, 어떤 과거 속에 우리는 스치듯 지나쳐왔을지도 모르고 미래의 시간에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그렇게 따지면 모든 일에 다 이유가 있을 거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과 연결돼있다고 믿고 싶다.


김연수의 단편은 오랜만에 읽었다. 내가 좋아했던 그의 소설이 이런 것이었지 생각했다. 그러니까 존재에 대한 의미와 확신, 따로 또 같이 이어진 관계, 심연에 닿으려는 끊임없는 이해와 노력 같은 것들. ‘나’와 ‘지민’의 과거와 현재를 들려주는 표제작「이토록 평범한 미래」부터 그랬다. 1999년 여름 스물한 살의 ‘나’와 ‘지민’은 외삼촌이 일하는 출판사에 찾아간다. 지민이 엄마가 자살하기 전 쓴 소설 『재와 먼지』를 찾기 위해서다. 외삼촌에게 들은 소설의 내용은 동반자살을 선택한 연인이 과거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는 SF 적 내용이었다.


놀라운 건 나와 지민이 동반자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와 먼지』 속 연인은 과거 처음 서로가 서로를 만났을 때부터 차근차근 살아간다. 미래로부터 과거의 삶을 사는 것이다. 외삼촌은 어린 연인에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 아닌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29쪽)라고 말한다. 시간이 흐른 뒤 소설가가 된 나는 지민과 결혼했고 『재와 먼지』를 읽게 된다. 그리고 지민과 서로가 기억하는 그 시절을 돌아본다. 간절하게 바랐던 미래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는 외삼촌의 말처럼 미래를 기억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 미래의 소중함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연수가 표현한 미래를 기억하는 일은 희망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울림을 전한다. 삶의 신비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제 안다. 우리가 계속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것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을. (「이토록 평범한 미래」, 34~35쪽)


그러니까 불행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삶이라도 우리는 과거 아닌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난주의 바다 앞에서」,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로 이어진다. 남해의 한 섬의 강연을 온 ‘정현’이 대학 동창 ‘손유미’를 만나는 「난주의 바다 앞에서」에서 과거 손은정이었던 유미가 어떻게 섬에서 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들려준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아이를 잃는 고통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다 과거 복싱을 했던 정현이 들려준 ‘두 번째 바람’이란 말에 일어나게 되었다고. 유미가 그 이야기와 함께 떠올린 ‘정난주’의 삶도 그랬다. 200년 전 가족을 잃고 아이와 유배를 가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끝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고 전해지는 이야기.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난주의 바다 앞에서」, 60쪽)


누구나 인생에서 수없이 넘어지겠지만 그다음이 있다는 걸 생각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두 번째 바람’은 어쩌면 불행과 슬픔을 인정하는 일이며 삶이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걸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 바람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면 그에게는 세 번째 바람을 만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삶이란 고독하고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라 해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속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가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일도 그러하다. 손자인 ‘나’는 할아버지의 대화에 등장하는 세례명 ‘바르바라’가 오래전 할아버지의 구술 녹음을 떠올리고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녹음을 통해 ‘바르바라’가 과거 1949년 할아버지가 북한의 수도원에 있을 때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동생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바르바라’에 대해서도 듣게 된다. 그것은 전설적 성녀인 동시에 할아버지를 지탱해 주는 존재였다. 이 단편을 읽는 동안 나는 엄마를 생각했는데 현재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싶은 것이었다.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은 나와 함께 살아온 시간과 고모에 들은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모습이다. 내가 조카나 주변인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통해 엄마는 미래에도 기억될 것이니까. 할아버지를 통해 ‘나’가 알게 된 바르바라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 이렇게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으로 미래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신이 되어 이 모든 세계를 인식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며 자신의 존재를 확장해나갈 수는 있어. 우리의 기억은 시공간적으로 겹쳐져 있으니까.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235쪽)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가 곁에 있지 않더라도 그를 생각하고 기억하는 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에서 확인한다. 단편 2014년 4월 ‘나’는 옛 연인 ‘희진’에게 메일을 받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희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데 한국의 인디 대표로 초대받아 일본에서 공연하다 자작곡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부르다 울게 된 사연과 뒤풀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자신이 어떻게 초대가 되었는지 듣게 된다. 나와 희진이 과거 연인 시절 일본 여행에서 한 카페에 갔던 시점에 희진을 초대한 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 희진과 나가 신청한 음악이 당시 절망에 빠졌던 그를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진이 남긴 사인을 통해 내내 찾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181쪽)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란 마음은 ‘지훈’이 헤어진 연인에 대한 사랑을 기억하며 검색한 ‘사랑해’라는 말에 담긴 사랑의 의미를 들려주는 「사랑의 단상 2014」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아이들의 친구와 부모라는 것. 현재 우리가 겪은 이태원 사고로 떠난 이들의 친구와 가족의 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어떤 경로와 어떤 형태든 우리는 누군가와 닿고 있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비록 곁에 있이 않더라도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은 기억하는 일로 시작되고 간직된다는걸.


한번 시작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 「사랑의 단상 2014」, 211쪽)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통해 미래를 기억하는 일을 마음에 새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일, 어떤 절망과 슬픔에서도 희망의 방향으로 나가는 일, 두 번째 바람을 맞이하며 그다음을 살아가는 일이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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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1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기억하고 잊지 않는것, 현재를 잘 살아내고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느낀 작품이었어요.

자목련 2022-11-14 10:08   좋아요 0 | URL
네, 결국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소중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어요. 이 계절에 만나서 그런지 더욱 깊게 와 닿은 문장도 많았고요. 화가 님, 따뜻하고 포근한 한 주 시작하세요^^
 
쇳밥일지 - 청년공, 펜을 들다
천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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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하나면 있으면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기술이 제일이라고 했던 시대는 사라진 것일까. 한때 공고, 기술고라 불리던 학교는 이제 무슨 과학고나 산업고로 바뀌었다. 학업과 일을 함께 배울 수 있다고 홍보를 하지만 정작 실습에서 차근차근 배우는 대신 현장에 투입되어 무보수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한 게 현실이다. 그러게 공부를 잘해서 인문고에 들어가 대학에 가야지 하는 아무 말이나 하는 어른들도 있을 것이다. 천현우의 에세이 『쇳밥일지』를 읽게 된다면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는 못한다. 누구에게나 능력 있는 부모와 환경이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저자의 환경도 그러했다. 부모의 이혼과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가난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온전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살기를 바랐기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택했다. 고졸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에 기능대에 들어갔다. 직장인과 같이 하루 종일 받는 수업에서 재미를 찾기는 어려워다. 현실적으로 빚으로 낸 등록금도 문제였다. 휴학을 하고 공장 아르바이트를 하다 학교로 돌아왔다. 실업고, 기능대를 나와도 마주한 현실은 잔혹했다. 힘든 주야 교대 근무를 해도 야간 수당 시간 책정이 적어 월급은 너무 적었고 법으로 보호받는 제도는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든 대신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그마저도 불안했다. 거기다 또래와 비교되는 시선들이 저자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우정을 쌓아온 이들에게조차 전문대 나와서 대기업 가기는 어렵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


한국에서 명문대란 만병통치약 같아서 어딜 가나 약발이 들었다. 당장 효성만 해도 현장 쇳밥 수십 년 먹어온 기술자가 명문대 학식 몇 년 먹은 관리자 눈치를 살폈다. 게임 속 세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은근슬쩍 대학을 드러내는 이부터, 명문대생을 사칭하는 유저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이제껏 봐온 세상이 그 꼴이었지만, 학벌의 그림자가 우리 사이에까지 드리우지 않길 바랐다. (92쪽)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받은 월급은 겨우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라 편입을 결심했는데 어머니가 사기를 당해 빚까지 고스란히 떠안는다. 월급으로는 턱도 없었다. 주말 막노동을 하면서 용접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용접이 얼마나 멋진 일이며 대우도 나쁘지 않고 국가에서 교육비도 대준다는 사실도. 용접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다시 시작해야 했다. 자격증을 따고 취직한 공장은 하청의 현실과 정직원과 비정규직의 차별, 무방비로 노출된 위험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경리 직원 ‘초원 씨’를 만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초원이 서울로 가면서 헤어졌지만 팟캐스트를 듣고 경제와 정치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직 후 조금 안정되었나 싶을 때 어머니의 암 진단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취업의 시간이 이어졌다.


내가 무슨 대기업만 노리는 것도 아닌데, 알짜배기 중견 기업 찾느라 눈알 굴리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다달이 200만 원 월급에 여덟 시간 일하면 충분한데, 그조차 이리 힘겨울까. (203쪽)


그럼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용접공으로 살아가는 청년의 현실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제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점차 그의 글은 방송, 언론에 노출되고 칼럼을 청탁 받았다. 현장 노동자 지인들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저자가 만난 이들은 그가 직접 일한 현장의 동료였다. 대학 1학년 ‘노키아’ 공장에서 알바를 하며 만난 여자 동창 은주를 시작으로 용접 학원에서 만난 동생, 용접이라는 걸 알려준 포터 아저씨까지. 그들의 이야기는 곧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이었다.


『쇳밥일지』는 용접을 하는 청년공의 기록이자 노동 일선의 체험이며 노동 현장에 대한 고발이라 할 수 있다. 낮은 임금, 열악한 근로 환경, 산재에 대한 회사의 생각,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까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지방 중소 기입의 현실을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는 없다. 현장을 경험한 이만이 들려줄 수 있는 생생한 기록이다. 청강대의 졸업 축사 요청을 수락한 그가 말하는 용접이 그를 세상과 연결시켰고 이제는 글로 사회를 아름답게 용접하는 이로 만들었다.


‘용접’. 녹여서 붙인다는 뜻처럼 용접봉이 지난 곳은 열이 식으면서 철과 철 사이가 메꾸어집니다. 쇠에다 대고 하는 바느질이라고 생각하심 편할 거예요. 이렇게 메꿔진 흔적을 비드라고 하는데요. 이 비드의 모양으로 용접 실력을 가늠합니다. 좌우 간격이 똑바를수록, 푹 꺼졌다가 볼록하지 않을수록, 눈으로 봤을 때 예쁠수록 ‘좋은 용접’인 셈이죠. 잘 된 용접은 금속판 위에 그린 그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64~265쪽)


『쇳밥일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방 중소기업의 현실이나 용접공을 비롯한 기능공의 삶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주변에 이런 일을 하는 이가 없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그렇다. 그러니 이런 책을 읽은 게 다행이지 않은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이들의 삶에 대해 요즘 MZ 세대의 사고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저자가 돌아와서 들려줄 이야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내가 일해나갈 곳은 현장이 아닌 사무실. 파란 작업복이 하얀 와이셔츠로 바뀌고, 메꾸어나가야 할 공백은 철판과 철판 사이에서 지면과 지면 사이로 바뀐다. 하지만 돌아오리라. 내가 지나쳐왔던 세상, 담배 냄새와 절삭유 냄새로 찌든 곳. 비지땀 흘리며 뿌듯했던 하루도, 죽살이에 벅차 힘겨웠던 하루도, 이내 막걸리와 소주로 씻어내고선 내일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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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1-0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분 이런 책이 있군요. 데려갑니다.
오십중반 제부가 용접 배우고 있어요
직장 다니면서요. 퇴임 후 할 일 몇 가지 미리 준비한다네요. ^^

자목련 2022-11-10 09:38   좋아요 1 | URL
문재인 전 대통령의 추천으로 유명해진 걸로 알고 있어요.
용접을 배우고 계시다면 현장의 구조나 근무에 대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프레이야 님, 남은 가을 안에서 환한 날들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2-12-0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2-12-09 08:5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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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공평하지 않고 노력과는 상관없이 흘러간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은 무엇일까. 그 기대마저 없다면 삶이 너무 서글프기만 하다는 걸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불운과 불행을 지나쳐오면서 이제는 어떤 일들도 받아들이고 감당할 수 있을 거라 다짐하지만 매번 무너지고 만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자조하며 쓸쓸함을 견디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현실이든 소설이든 인생은 뭘까 묻다가 결국 동지애를 불러온다고 할까.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을 읽으면서 모든 건 지나가고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40여 년 전에 발표된 소설집의 열두 편 단편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다 소설 속 젊은 인물들이 이제는 노년의 시기를 지나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은 인생이 뭐라는 걸 조금을 알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들이 쌓여가니 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열두 편의 이야기는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있다. 때로는 그 어려움을 인정하지 못해서 깊은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데 몇 편의 단편에서 그런 게 보였다. 그건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고 미련 때문이기도 하다. 카버가 보여주는 단편 속 인물이나 일상은 특별할 게 없다.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다가오고 우리의 현실과 고민을 대입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40여 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직장 동료 버드의 집에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아 가는 ‘나’와 아내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깃털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무관심하고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지 느낄 수 있다.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했지만 정작 버드의 아들 이름이나 집 안에서 공작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건 다른 단편에서도 이어진다. 직장에서 실직한 남편의 무기력한 모습을 그린 「보존」에서 그는 냉장고가 고장 난지도 모른다. 퇴근한 아내가 재료가 상하기 전에 요리를 하고 냉장고에 대해 상의를 해도 냉장고를 구하긴 구할 거라고 할 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경매에 가보자는 아내의 말에도 시큰둥하게 대한다. 


마찬가지로 병원에서 일하는 ‘나’와 방문판매로 비타민을 파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비타민」의 부부도 전혀 소통하지 못한다. 아내가 무슨 고민을 하며 어떻게 사업을 이어나가는지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당신이야 내가 비타민을 복용하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겠지. 중요한 건 그거야. 당신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비타민」, 141쪽) 아내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가 내게도 들리는 것만 같다. 


어쩌면 무심하다 못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이들은 마침내 맞이하게 될 결과가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꾸 회피하고 미룬다. 「신경써서」 속 로이드와 이네즈가 그렇다. 상의할 게 있다고 말하는 이네즈를 로이드는 회피한다. 무슨 이유로 따로 살고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로이드가 이네즈의 방문에 샴페인을 화장실에 감추는 장면으로 대충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이네즈가 상의할 일은 이혼이다. 이네즈가 찾아왔을 때 로이드는 한 쪽 귀가 귀지로 꽉 막혀 잘 듣지 못하는 상태다. 이네즈가 로이드의 귀지를 빼주려고 방법을 시도하는 게 이 단편의 전부이지만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네즈는 뭔가 해결하려 애쓰고 로이드는 두려워하고 방관하는 것. 


“어쨌거나 뭔가 하긴 해야지. 일단 이것부터 해보는 거야.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그게 인생이야. 그렇지 않아?” (「신경써서」, 163쪽)


뭔가 하긴 해야 하고 잘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 나가는 일이 인생이라는 단순하면서도 명백한 이야기.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실패하고 좌절한다. 왜냐하면 누군가 꿈꾸고 계획하는 인생에는 실패와 좌절이 없기 때문이다. 별거했던 부부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순간 집을 비워줘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는 「셰프의 집」, 사랑했던 시간, 좋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직장 동료와 바람이 나 떠나버린 아내의 빈자리에 육아와 일로 힘들어하는 「열」은 안타깝다. 「열」의 주인공은 아내의 배신에 분노하면서도 하루하루 일상을 이어가야 한다. 그를 도와주는 주변인의 등장으로 안정을 찾지만 곧 또 다른 어려움에 빠진다. 그 과정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그것과 다르지 않아 울컥한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ㅡ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ㅡ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열」, 254쪽)


모든 게 계획한 대로 이뤄진다면 삶의 비밀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는 데려다 놓는다. 아이의 여덟 살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고 행복한 시간을 기대하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속 부모에게 닥친 일은 아이의 교통사고였다.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는 수술을 했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 의사는 괜찮은 상태라고 말하지만 부모는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 와중에 집에 잠깐 다니러 간 사이 이상한 전화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아이는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나중에야 그 전화를 기억한다.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빵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빵집 토해낸다. 사장은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빵을 내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여기에 있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7쪽)


그들은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었다. 그들은 검은 빵을 삼켰다. 형광등 불빛 아래에 있는데, 그 빛이 마치 햇빛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28쪽)


실은 단편의 제목처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것들이 우리 인생을 지켜주고 지탱해 주는지도 모른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실과 슬픔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이다. 그저 지나온 삶의 고단함과 쓸쓸함을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고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힘을 얻는 것, 그런 경험들을 통해 그것이 인생이라는 걸 우리는 배우고 알게 된다. 불운과 불행의 시간 속에서도 삶은 이어지고 다시 희망을 생각하는 일, 산다는 건 그런 거라고.


표제작 「대성당」에 느끼는 것도 그런 것이다. 화자인 ‘나’는 아내의 친구인 맹인이 자신의 집에 방문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는다. 맹인을 위해 책을 읽어주던 아내가 그와 오랜 시간 관계를 이어온다는 사실도 못마땅하다. 그러니 그런 맹인을 만난다는 게 반가울 리 없다. 그리고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도 모른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모든 걸 다 끝낸 후 맹인은 볼 수 없는 TV 속 대성당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 유쾌할리 없다. 그러다 맹인이 대성당을 그려보자고 제안한다. ‘나’의 손에 맹인이 손을 올리고 함께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한다. 


“자네 인생에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겠지. 그렇지 않나, 이 사람아? 그러기에 삶이란 희한한 걸세, 잘 알다시피. 계속해 멈추지 말고.” (「대성당」, 309쪽)


그리고 맹인은 화자에게 눈을 감아보라고 말한다. 대성당을 그리는 일이 다 끝나고 맹인이 어떠냐고, 그들이 그린 대성당을 보고 있냐고 물어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감은 그 시간은 이제껏 자신이 살아온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나’가 느끼고 경험했을 그 모든 것들을 우리는 알 수 없다. ‘나’가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기 전 맹인을 이해하려 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라고 말하는 그 놀라운 신비로움을 알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표제작 「대성당」은 아름답고 훌륭하다. 인생에서 우리가 쉽게 말하는 것들, 함부로 단정했던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할까. 맹인의 말처럼 삶이란 희한하고 멈출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산다는 건 어렵고 알 수 없어 두렵지만 그것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게 인생이다. 어떤 기대도 어떤 절망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절망하더라도 삶의 희망과 기대를 놓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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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11-08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좋아하는 책이에요. 특히 <대성당> 정말 걸작이죠. 저도 희망과 기대 간직하며 살게요. 여전히 실망이 누적되면 마음, 몸까지 아프지만요.

자목련 2022-11-09 11:05   좋아요 0 | URL
저는 너무 늦게 읽었지만, 오히려 지금 읽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이곳도 좋고요.
블랑카 님, 몸도 마음오 아프지 말고, 설령 아프더라고 잘 이겨나가요, 우리!

새파랑 2022-11-08 1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성당> 너무 좋더라구요~! 저도 얼마전에 읽어서 리뷰 찾아보니 전 <열>을 제일 인상깊게 읽었다고 써놨네요. 리뷰 안남겼으면 기억도 못했을거 같아요 ㅋ

자목련 2022-11-09 11:04   좋아요 1 | URL
맞아요, 리뷰의 좋은 점이지요. <열>속에서 그 노년 부부의 역할이 중요하게 다가왔어요. 우리가 늙는다는 것, 인생이라는 게 알 수 없다는것. 그래도 오늘을 즐겁게 살아야겠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