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간들 - 이보영의 마이 힐링 북
이보영 지음 / 예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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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을 읽는다. 제목이나 표지 때문에 설명할 수 없는 끌림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내게 온 책을 읽는다. 밑줄을 긋기도 하고 메모장에 옮겨 적기도 한다. 나만 알고 싶다는 소망과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은 문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떨림을 잊고 만다. 책장을 정리하다, 누군가의 짧은 글을 통해 다시 그 책을 떠올린다. 내가 사랑했던 그 책, 내가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던 그 책 말이다.

 

 이보영의 『사랑의 시간들』이 그 책을 데리고 왔다. 다른 이유로 선택한 책이었고 다른 감정으로 마주했던 책이지만 그 책이라는 이유로 뭔가 통한 게 아닐까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책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이다. 배우 이보영이 아닌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다가온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덧글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온라인 동호회의 회원처럼 말이다. 거기다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이런 문장들까지.

 

 ‘사랑하고 사랑받고, 인정하고 인정받고, 감사하게 즐기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현재에 충실하면 행복은 이미 다가와 있으리라. 모두 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다. 그렇기에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이 꽤 많다.’ (22쪽)

 

 어쩌면 우리는 책을 통해 차마 말하지 못한 아픔과 사소한 상처를 위로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보영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속 ‘제제’를 보며  드라마 주인공 ‘서영이’를 떠올렸던 것처럼 말이다. 예고 없이 날아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분노를 키우며 힘들던 시절에 대해 털어놓고 싶었던 건 아닐까.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의 인물에 빠져들어 동화되면서 잠시 고통을 내려놓기도 하니까.

 

 ‘부디 지친 자신에게 소중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내가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기를. 평생 나를 속여왔구나, 정직하게 슬픔을 마주보지도 고통을 표현하지도 못했구나,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기를. 나의 슬픔, 나의 슬픔을 알아봐주고 말을 건넬 때 고인 물이 흐르듯 인생 또한 흘러간다.’ (50쪽)

 

 책이 주는 즐거움과 위안을 아는 그녀가 선택한 23권의 책 가운데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은 『어린 왕자』, 내면 깊은 속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김형경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고독한 예술가의 삶을 아름답게 전한 빈센트 반 고흐의『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정말 반가웠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휘둘리며 보냈던 시절에 어렵게만 읽었던 김형경의 소설은  나에게『사람 풍경』으로 이어졌고 삶을 직시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보영도 『사람 풍경』을 읽었을까?

 

 ‘내가 온전한 사람이어야 온전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내가 상대에게 기대하는 만큼 나에게도 기대하게 마련이고, 얻는 게 있다면 또한 잃어버리는 게 있다.’ (94쪽)

 

 책을 읽고 책에 대해 말하고 책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보영의 글에서 그런 행복이 엿보인다. 좋은 책을 같이 읽고 싶은 수줍은 마음, 과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진심으로 써 내려간 글은 읽는 이에게도 행복이 된다. 당신과 내가 함께 좋아하고 사랑한 그것이 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충만해진 사랑의 시간들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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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21 1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구 좋으네요~
양철나무꾼님의 리뷰에서 이책 눈도장 찍었다가 또 잊고 있었어요
님이 다시 기억케 해주시네요^^
이보영은 예쁜배우이기 이전에 야무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곤했는데 책의 글도 왠지 야무지게 잘 썼겠다~란 생각이 듭니다^^
읽을책들이 자꾸 자꾸 쌓여갑니다ㅜ

자목련 2015-07-21 20:34   좋아요 0 | URL
특별한 에세이는 아니지만 편안한 책이에요. 책에 대한 솔직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어요.
이보영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국문과 출신이라 이 책이 더 궁금했어요, ㅎ

푸르미원주 2015-07-21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를 하는 책, 읽은 책에서 느낀 점, 감흥들을 쏟아놓는 이런 책은 징검다리가 되고 중매쟁이가 되어서 새로운 책의 저자와 만나게 해주더라고요.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여덟단어]가 그랬고,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등이 그랬어요. 이보영씨의 이 책에서도 23권을 소개해주시는군요. ^ ^

자목련 2015-07-21 20:35   좋아요 0 | URL
네, 23권을 소개하고 있어요.
말씀처럼 이런 종류의 책은 징검다리, 소개자로 다른 책과 만나고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지요.

해피북 2015-07-2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읽으며 좋아하는 배우와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이야기 할 수있던 그 시간들이 참 좋았던거 같아요. 특히 군더더기 없는 글 속에서 마음이 느껴졌던거 같아요^~^

자목련 2015-07-22 10:27   좋아요 0 | URL
<어린왕자>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정말 모두에게 좋은 책이구나 실감했어요.
이 기회에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했구요. 더위가 몰려오네요,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21세기 지구에 등장한 새로운 지식
프랑수아 레나르 & 뱅상 브로크비엘 지음, 이희정 옮김 / 푸른지식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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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선을 먹어. 생선만큼 좋은 게 없지.”

 “생선은 무슨! 중금속에 얼마나 오염됐는데!”

 “딸기를 먹어봐, 건강에 엄청나게 좋을 거야.”

 “껍질이 없는 과일이잖아. 농약에 찌들어 있을 거야.” (315쪽)

 

 이런 대화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익숙해졌을까? 음식에 대해 유독 집중하는 우리의 태도를 삶의 질과 연관해서 설명할 수 있을까? 학창 시절에 미래엔 밥 대신 먹는 알약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원하는 그 약은 아니더라도 포만감을 주는 약, 에너지를 보충해주는 약이 존재한다. 이처럼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그것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얼리 어답터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21세기 지구에 등장한 새로운 지식』이라는 거창하면서도 살짝 궁금하게 만드는 책을 읽는다면 누군가는 나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이 책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식 사전이라고 해야 할까.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용어에 대한 설명서도 좋겠다. 이를테면 예전에 없었던 증후군, 과학의 발달로 부여받은 새로운 이름, 세계의 흐름에 대해 책, 새로운 고전, 언어, 계산, 경제, 과학, 역사, 지리와 환경, 유럽의 정치, 미술과 음악, 새로운 일상까지 10개의 장으로 나눠 소개한다.

 

 우선 고전을 보면 고전이란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영화나 책을 상상하면 안 된다. 21세기의 고전이란 『트와일라잇』『해리 포터』,『헝거 게임』 정도다. 센스 있는 독자라면 언어로는 약어나, 이모티콘을 말할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말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약어나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아마도 그런 이들에게 정보를 주고자 하는 게 이 책의 다정한 의도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지식이라는 게 공부와 비슷해서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가 재미와 즐거움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의미가 될 수 있기에 이 책은 호불호가 가릴 듯하다. 예술, 환경 분야에서는 명확한 사진이나 그림이 첨부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저마다 관심을 갖는 분야가 다르니까 취향대로 골라 읽어도 좋다. 독특한 건 책의 마지막 부분엔 책 내용을 테스트하는 퀴즈가 있다는 점이다. 상식을 모으는 이에게는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이나 보통의 교양 그 이상을 원한다면 만족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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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 2 - 요석 그리고 원효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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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을 밝히는 건 촛불 하나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곧 촛불 대신 어둠에 익숙해진다. 어둠을 온전히 걷어내려면 더 많은 빛이 필요하다. 자신을 태우며 빛을 발하는 수많은 촛불의 희생 말이다. 하나의 촛불이 다른 촛불을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버려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신념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학습이나 세뇌가 아니라 깨달음이다. 스스로 깨쳐야 만 가능한 일이다.

 

 삶의 진리를 깨우치는 게 쉽다면 신과 구도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이 아닌 어떤 이상을 꿈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산다는 건 고행이라는 말은 맞았다. 화랑이 되기 위해 서라벌에 온 원효가 화랑 대신 출가를 선택한 이유는 고통을 나누고 싶어서다. 왕이나 귀족, 진골, 성골을 위한 나라가 아닌 백성 모두를 위한 신라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촛불이 되는 혜공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라를 이끌 수 있는 강렬한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고통이라는 진리,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말하는 진리, 고통이 소멸된 진리, 고통을 소멸시키는 길인 진리. 이 모든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님이 바로 중생이다.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부처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죄 없이 죽어 간 저 소녀의 가슴 위에서 자고 깨어날 것이다. 거기가 내 감옥이 될 것이며 해탈문이 될 것이다.’ (1권, 254쪽)

 

 왕실을 위해 점점 화려해지는 황룡사를 보면서 과감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원효뿐이었다. 백제, 고구려와 싸움으로 지쳐가는 백성들의 절망을 원효는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런 원효를 김춘추를 비롯한 왕실에서 곱게 보지 않았다.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원효를 반역의 주동자로 몰아내고 싶었다. 의상에게 국사라는 거대를 제시해 함께 서라벌에서 당으로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려진 대로 해골물 일화로 원효는 백성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고통 속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그의 곁을 지킨 한 여자, 요석이 있다. 신라 전부를 다 가질 수 있는 김춘추의 딸 요석.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딸에게 정략결혼을 요구하는 아버지에 반기는 드는 요석. 원효라는 운명을 위해 전부를 내어주기로 작정했다.  

 

  “나는 말이다. 목숨을 바쳐도 좋을 만한 일을 하면서 살 거다. 사랑도 그렇게 할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말이다.” (2권, 83쪽)

 

 병자와 약자를 돌보고 원효와 함께 새로운 신라를 만들고 싶었던 요석. 요석과 원효의 사랑은 신분 차이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었다. 그것은 불교의 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때문에 김선우가 재탄생시킨 원효의 일대기가 빛을 발하는 이유다. 단순히 요석과 원효의 사랑만 그려냈다면 김선우에 대한 애정이 멈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선우는 달랐다. 1400년 전 원효를 현재로 불러와 법문을 들려주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문장 하나하나 아름답게 갈고닦아 성찰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통해 나를 보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고정된 나가 아닙니다. 나라는 실체가 따로 존재한다는 환각을 벗어나면 우리 모두가 나입니다. 당신이 바로 나입니다. 남과 내가 둘이 아닙니다. 귀족과 평민이 둘이 아닙니다. 본래적 깨달음은 나에서 남을 보고 남에서 나를 봅니다. 나의 이익과 남의 이익이 별개의 것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나 자신과 내 가족과 가문을 소중히 여기듯 우리 모두가 그토록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2권, 163~164쪽)

 

 역사적 사건과 실제의 인물을 소재로 소설을 쓴다는 건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 배경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논픽션으로만 어떤 재미와 감동을 안겨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황룡사와 분황사, 첨성대와 같은 역사적 공간과 비담, 김유신, 의상, 선덕여왕, 김춘추란 인물의 등장만으로 <발원>을 역사 소설과 불교 소설이라 선을 그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감히 철학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김선우는 원효와 요석과 불교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리고 당신이라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각각의 당신이 내가 된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김선우는 이 소설을 통해 모두가 촛불이 되기를 발원한다. 그리하여 1400 년 전 원효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촛불이 발을 맞추어 걸어가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함께 밥을 먹고 단잠에 빠지는 세상을 소망하는 것이다. 촛불이 사라진 시대 소설로 촛불을 만드는 김선우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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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황금방울새 - 전2권
도나 타트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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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면 속상하다. 그것을 대신한 물건이 있다 해도 잃어버린 자신을 탓하는 속상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다. 그저 실수일 뿐인데, 비난을 받을 만한 잘못이 아닌데도 누군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실을 안겨준다. 그래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는 방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당잡힌 삶을 사는 것이다.

 

 미술관 폭발 사고로 엄마를 잃은 열세 살 시오의 삶을 붙잡는 건 엄마와 그림이었다. 피할 수 없는 사고였고 폭발  당시 반지를 주며 파브리티우스의 그림 <황금방울새>을 가지고 나가라는 웰티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엄마를 찾을 수 없었던 시오는 무작정 그림을 들고 집으로 향한다. 어쩌면 엄마가 집에 먼저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은 채 말이다.

 

 몇 년 전 시오와 엄마를 떠난 아빠와 연락이 닿는 건 어려웠고 고아가 된 시오는 친구 앤디의 집에서 지낸다. 주변의 보호와 상담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황금방울새>를 준 죽은 웰티와 조카 피파의 소식도 궁금했다. 시오에게 남은 건 그림과 피파에 대한 관심이 전부였다. 웰티의 낡은 골동품 가게를 찾아 호피 아저씨와 사고 후유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피파를 만났지만 이별로 이어졌다. 그림과 함께 아빠가 있는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 이제 시오에게 가장 소중한 건 <황금방울새>였다.

 

 ‘그림을 꺼내고 만지고 바라보는 것은 가볍게 할 일이 아니었다. 그림을 향해 손을 뻗는 단순한 행동에도 뭔가가 팽창하는 느낌, 공기가 흔들리고 흥분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차갑게 냉각된 사막 공기 때문에 건조해진 눈으로 그림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신비로운 어느 순간 나와 그림 사이의 공간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고,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실재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그 그림이었다.’ (1권, 412쪽)

 

 새로운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 보리스를 사귀지만 아빠와의 삶은 시오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는다. 도박에 빠진 아빠를 떠나 뉴욕의 호피 아저씨와 만났을 때 교통사고로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여전히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시오는 호피 아저씨를 선택하고 골동품 가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아무도 모르게 약에 취하고 아무도 모르게 그림을 생각하고 자신과 같은 상처를 지닌 피파를 그리워한다.

 

 호피 아저씨를 도와 가게를 운영하는 시오의 삶은 제법 안정된 듯 보인다. 가혹하게도 만난 앤디의 가족에게 앤디의 죽음을 들은 시오는 점점 더 약에 의지한다. 그러니까 가면의 삶이었다. 가면을 쓴 삶은 잘 나가는 사업가였고 가면을 벗는 삶은 마약 중독자였다. <황금방울새>를 찾는 사람들과 그들을 피해 달아나려는 시오. 시오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니 왜 웰티 할아버지는 죽음과 직면한 순간까지 그 그림을 시오에게 부탁했을까? 그건 호피 아저씨의 말에서 듣을 수 있다.

 

 “어떤 물건을 좋아하면 그 물건은 생명을 갖게 돼, 안 그러니? 물건들―아름다운 물건들―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큰 아름다움을 알게 해주는 거 아닐까? 처음으로 마음을 활짝 열고서 평생 쫓아다니게 만드는, 혹은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되찾으려고 애쓰게 만드는 그런 이미지들 말이야.” (2권, 460쪽)

 

 사랑을 주면 생명을 주는 것이다. 어쩌면 시오는 그 그림을 통해 엄마를 기억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함께 한 미술관의 시간, 엄마와 함께 본 그림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엄마를 잃은 한 소년에게 그림이 주는 위안을 알 수 없다. 감히 그 슬픔과 절망을 짐작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아이들은 모두 치유하지 못한 상처와 함께 성장한다. 엄마와 외삼촌의 죽음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시오와 피피, 보호나 사랑이 아닌 방임된 보리스. 도나 타트는 그들의 내면을 소설 곳곳에 아주 치밀하게 담아낸다. 파브리티우스의 그림 <황금방울새>의 역할도 그러하다.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이들을 이어주고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달랜다.

 

 ‘크나큰 슬픔, 내가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한 슬픔은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좋은 것을, 또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억지로 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선택할 수 없다.’ (2권, 465쪽)

 

 삶을 상실한 사람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주문일까?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나와 누군가를 이어주는 어떤 대상인지도 모른다. 시오에게 <황금방울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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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7-14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궁금했는데 자목련님 덕분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5-07-14 15:44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묘사가 많은 소설이에요. 예상하지 못한 반전도 있구요. 해피북 님도 시원한 오후 보내세요^^
 
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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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삶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행복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행복 말이다.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그 안에서 얻는 성취감이 있으면 그 일은 곧 행복과 같은 의미가 된다. 나오미에게 가나코의 결혼은 그렇게 보였다. 은행에 다니는 남자와 만난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하는 가나코의 일상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그것이 가나코의 위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오미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대학에서 만난 나오미와 가나코는 서로를 의지하는 친구였다.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나오미에게 가나코의 결혼 이후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일부였다. 그런 가나코가 남편의 폭력으로 영혼이 죽어가고 있었다. 가나코는 남편의 반복적인 폭력에도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나오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목격하며 피해 다녔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가나코에게 당장 이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오미의 어머니가 그랬듯 가나코는 결심을 하지 못한다. 남편이 쉽게 이혼을 해 줄 것 같지도 않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모든 게 두렵고 무섭다.

 

 백화점에서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나오미는 가나코 걱정뿐이다. 어떻게 하면 가나코를 남편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그러다 상하이 출신 이혼녀 아케미에게 기발한 방법을 듣는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중국에서는 반드시 보복한다고 알려준다. 가나코의 이야기를 들은 아케미는 죽여버리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아무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술에 취한 남편을 죽이고 암매장하기로 결심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치밀하게 준비한다. 미리 땅을 파고 시체를 담을 가방을 준비하고 남편과 닮은 중국인을 매수해 고객의 돈을 인출해 중국으로 떠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남편은 횡령을 하고 종적을 감춘 것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오늘 밤 사람 하나를 죽이려 하는 젊은 여자가 여기 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확신범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자신이 있다. 이상하게도 왠지 한 줌의 가책이나 망설임도 없다.적당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공허함과도 또 다르게 시커먼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언재부터 자신은 이렇게 됐는지 그것조차 아득한 먼 옛날처럼 생각되어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마치 궤도를 벗어나 것처럼 사고는 점점 더 확산되어 갔다.’ (230쪽)

 

 그랬다. 나오미와 가나코의 행동은 범죄가 아니었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를 심판하는 것에 불과했다. 연습한 대로 일을 처리하고 둘은 자신의 일상을 이어간다. 출근하지 않은 남편을 찾는 전화가 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일이며 여권이 사라졌다는 것까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다.

 

 아,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진짜 행복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축배가 빨랐던 탓일까. 남편의 여동생 요코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CCTV를 분석하고 가나코를 미행한다. 나오미와 가나코에게 두려운 건 경찰이 아니라 요코였다. 가장 중요하게 대비해야 했던 알리바이와 CCTV를 허술하게 그렸다는 게 아쉽다. 어쩌면 이것이 오쿠다 히데오의 장치였을는지도 모른다. 친구와 함께 남편을 죽인다는 파격적인 설정보다 요코와의 추격전에 더 몰입했으니 말이다.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다. 가정 폭력과 살인이라는 소재를 다뤘지만 책을 덮고 난 후 떠오르는 건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나오미와 가나코의 행복이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도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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