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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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삶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행복의 주체는 내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시선에 비친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행복 말이다. 아무리 고된 일이라도 그 안에서 얻는 성취감이 있으면 그 일은 곧 행복과 같은 의미가 된다. 나오미에게 가나코의 결혼은 그렇게 보였다. 은행에 다니는 남자와 만난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을 하는 가나코의 일상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그것이 가나코의 위장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오미는 충격에 빠지고 만다.

 

 대학에서 만난 나오미와 가나코는 서로를 의지하는 친구였다. 백화점 판매사원으로 일하는 나오미에게 가나코의 결혼 이후로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일부였다. 그런 가나코가 남편의 폭력으로 영혼이 죽어가고 있었다. 가나코는 남편의 반복적인 폭력에도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나오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목격하며 피해 다녔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가나코에게 당장 이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오미의 어머니가 그랬듯 가나코는 결심을 하지 못한다. 남편이 쉽게 이혼을 해 줄 것 같지도 않고 부모님을 생각하면 모든 게 두렵고 무섭다.

 

 백화점에서 고객을 상대하면서도 나오미는 가나코 걱정뿐이다. 어떻게 하면 가나코를 남편으로부터 구할 수 있을까. 그러다 상하이 출신 이혼녀 아케미에게 기발한 방법을 듣는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을 중국에서는 반드시 보복한다고 알려준다. 가나코의 이야기를 들은 아케미는 죽여버리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아무도 모르게 죽일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한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술에 취한 남편을 죽이고 암매장하기로 결심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치밀하게 준비한다. 미리 땅을 파고 시체를 담을 가방을 준비하고 남편과 닮은 중국인을 매수해 고객의 돈을 인출해 중국으로 떠나게 만든다. 그러니까 남편은 횡령을 하고 종적을 감춘 것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오늘 밤 사람 하나를 죽이려 하는 젊은 여자가 여기 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확신범으로 일을 처리하려는 자신이 있다. 이상하게도 왠지 한 줌의 가책이나 망설임도 없다.적당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공허함과도 또 다르게 시커먼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언재부터 자신은 이렇게 됐는지 그것조차 아득한 먼 옛날처럼 생각되어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마치 궤도를 벗어나 것처럼 사고는 점점 더 확산되어 갔다.’ (230쪽)

 

 그랬다. 나오미와 가나코의 행동은 범죄가 아니었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를 심판하는 것에 불과했다. 연습한 대로 일을 처리하고 둘은 자신의 일상을 이어간다. 출근하지 않은 남편을 찾는 전화가 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일이며 여권이 사라졌다는 것까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다.

 

 아, 이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고 진짜 행복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축배가 빨랐던 탓일까. 남편의 여동생 요코는 집요하게 파고든다. CCTV를 분석하고 가나코를 미행한다. 나오미와 가나코에게 두려운 건 경찰이 아니라 요코였다. 가장 중요하게 대비해야 했던 알리바이와 CCTV를 허술하게 그렸다는 게 아쉽다. 어쩌면 이것이 오쿠다 히데오의 장치였을는지도 모른다. 친구와 함께 남편을 죽인다는 파격적인 설정보다 요코와의 추격전에 더 몰입했으니 말이다.

 

 흡입력이 강한 소설이다. 가정 폭력과 살인이라는 소재를 다뤘지만 책을 덮고 난 후 떠오르는 건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나오미와 가나코의 행복이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 게 아닐 것이다. 소설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도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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