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하루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냈다. 연휴의 끝이라 도로가 혼잡하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조금 게으름을 부린 탓에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수많은 차들과 마주했다. 마치 모든 차들은 다 서울로 향하는 듯 보였다. 이 차들의 목적지는 어디일까? 날씨도 흐리고 빗방물이 내리기 시작하니 조급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평온의 표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말이다. 그러다 생각했다. 예약은 했고 도착 시간이 늦어진다고 하여 그 예약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아주 당연한 생각을.
운전자에게 천천히 가자고 했다. 어차피 늦었고 우리가 속도를 내다고 해서 도로 상황이 좋아지는 건 아니니까. 안내를 도와주는 기기는 도로 상황을 판단해 새로운 길을 안내했으나 우리는 더 늦었다. 이번 서울 여정은 2년 전 예약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정기적으로 병원 검진을 해야 하는데 그 간격이 이제는 2년으로 늘어난 것이다. 실은 대체공휴일이라 진료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문의를 했었다. 정상 진료를 한다는 답을 받으며 서울행을 미루고 싶었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2년 만의 방문은 어색 그 자체였다. 코로나 이전의 예약이니 코로나 이후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병원에서 키오스크로 진료 예약 확인을 하는 시간이 있어 제시간에 왔더라도 얼마 정도 예약에는 늦기 마련이었다. 거리 두기를 표시한 대기 의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낯설게 느껴졌다.
10월의 첫날에도 병원에 다녀왔다.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서였다. 전날에는 저녁부터 금식을 했다. 배고픔을 안은 채 병원에 도착했다. 아픈 사람들이 모인 곳, 아픈 이를 돌보기 위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 건강해진 모습으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 병원에 올 때마다 묘한 감정들과 만난다. 문진과 채혈을 시작으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돌아왔다. 나이를 먹고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10월은 그렇게 숙제를 마친 것 같은 기분으로 시작하였다. 검진 결과는 아직 받지 않았고 어제 검사는 바로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나를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께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담담한 의사의 답변을 들었다. 다시 또 2년 후를 기약하며 예약을 했다. 2년 전에 2년 후의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듯 아마도 앞으로 2년 후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서울에 다녀온 날은 조금 울적하다. 나를 확인하는 순간이라고 할까. 그것도 정확하게 말이다. 아주 나쁜 말을 들은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을 듣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예상한 것보다 힘겹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던 하루였다. 도로 위에 수많은 자동차를 보면서 저마다 제 속도를 내는 그것들을 보면서 어쩌면 살아가는 일은 그 속도를 유지하려 애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는 제일 빠른 속도를 원하고 누군가는 더 빨리 가려고 주변을 살핀다.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좋겠지만 그건 더 달리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울적함을 제거할 책으로는 문학과지성사의 소설보다 가을과 문진영이란 이름이 반가운 김승옥 문학상수상작품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