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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 이정표 도난사건
이세벽 지음 / 굿북(GoodBook)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이세벽이라는 작가는 작년에 "세상에 단하나뿐인 죽음대역 배우 모리"를 읽게 되면서 처음 접했다. 사실 그 책이 무지 특이했던 터라 기억에도 많이 남을 뿐더러 작가의 문체가 깊지만 심각하지 않고, 가볍진 않치만 읽어갈수록 가독성을 주는 터라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꽤 높았었다. 이번에 새로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제목을 접한순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다는 생각을 했다.
"지하철 이정표 도난사건" 정말 특이하지 않은가? 지하철 이정표에 누구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 이정표가 도난되는 사건이라니, 사실 상상만으로 뭔가 새로운 얘기들이 흘러넘칠것 같아 책을 읽기도 전에 기대감이 높았다.
지하철에 버려진 채 7년동안 엄마를 기다리며 송이사라는 노숙자 밑에서 생활하는 철수, 지상으로 올라가고자 하지만 복잡하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으며,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버린 자리로 다시 올것만 같아 쉽게 지하를 떠나지 못한다. 그런 지하세계는 우리가 모르는 노숙자들의 세계가 있고, 그들만의 리그가 있었다. 거기에 황금쥐라는 어마어마한 갑부에 감히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무소불위 절대권력자가 있었다. 그는 권력이란 타고 나는 것이며 세상 어려움은 없이 살아온 탓에 남들의 불편이나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지하철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서 신기한 것이란 신기한 것은 다 봤고, 맛있는 것은 다 먹어봤지만 식욕이라는 것이 그다지 없는 그가 지하철 이정표를 본 순간 왕성한 식욕에 사로잡힌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절대 권력자라해도 황금그룹의 체면이 있으니 그걸 함부로 떼어내 올 수는 없었다. 그러자 황금쥐에게 온갖 아부를 떠는 회색쥐가 붉은 고양이파를 시켜 이정표를 몰래 떼어내 오게 한다. 정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말을 할수가 없다. 그런 그들사이에 부장판사가 있다. 소위 잘나가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나름 정의를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부장판사에게 황금그룹의 스카웃 제의가 있게된다. 아내나 아들은 그가 황금그룹에 갈 거라 생각하고 벌써부터 들떠있지만 그는 양심적 갈등을 하게된다. 그런 그가 어느날 지하철을 타러왔다 길을 잃고 만다. 이정표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자신이 믿고 있었던 길이 옳은길인지 알지도 못한채 헤매다 철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끝없는 꿈같은 날들을 헤매게 된다. 말하는 우체통을 만나기도 하고, 고양이들에게 쫓기는 등 현실과는 또다른 세계에서 뭔가를 찾아 헤맨다. 자신들은 그자리에 있으나 사람들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철수는 엄마를 찾아, 부장판사는 자신의 가족들을 찾아 헤맨다.
그리고, 그들이 최종적으로 찾고자 하는것은 꿈과 희망의 발전소다.
현실전 얘기와 묘사된 얘기들이 뒤섞인 이 책은 처음 읽을때는 엄마가 버리고 떠난 철수의 불쌍한 삶을 다룬건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럼 무척이나 슬플거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점차 읽다보니 권력에 아부하는 회색쥐와 그외 무리들, 권력을 끝없이 탐하는 황금쥐, 암암리에 황금쥐의 모든 것을 봐주는 정부, 그리고, 그런 권력의 유혹에 갈등하는 부장판사등 현실세계를 교묘하게 비꼬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 모든 권력자들이 사람의 형상이 아닌 동물들로 묘사된 것이 특이하기도 했다. 요즘처럼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오직 돈만이 모든것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가운데 단 한명의 꿈이라도 존재한다면 희망이 있다라는 메세지를 주는 작가의 글은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 역시도 돈에 모든 희망을 걸어 가는 입장이 되어 버렸지만, 이런 글을 한번씩 읽을때마다 스스로를 뒤돌아 보게 하는것 같아 반성도 해 보게 된다. 지하철역 이정표속에서 그런 깊은 뜻까지 파고드는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