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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머신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집에서 쉬는동안 늘 새책구입으로 혈안이 돼 있던 내가 오랫만에 묵혀둔 책들을 꺼내읽기로 했다. 몇년전 온라인에서 친해진 친구로부터 온 책선물이었는데 늘 '읽어야지.'라는 마음만 가진채 신간소설들에만 손이 갔던터였는지라 선물해준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쌓여가는 책들에도 미안한 맘이 들어 있던차에 일본소설이라는 이유와 제목이 SF적인(?)요소가 있으면서도 새록새록 뭔가 추억거리를 얘기해 줄거 같아 집어들었다.
처음 들어보는 일본작가지만, 선물해준 친구가 꽤 괜찮은 느낌을 받을수 있을거라는 말이 기억이 나 웬지 기대감이 더 컸었다. 혹시나 SF소설이 아닌가 했었더니(SF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얼마전 그런류의 소설을 읽고 왕창 실망한 터라) 잔잔함이 흐르는 조용함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어쩌면 요시다슈이치와 비슷한것 같기도하면서, 또 그와는 좀 다른느낌. 솔직히 요시다슈이치의 글은 너무 잔잔해서 읽다보면 지루한 느낌이 가끔들기도 한다. 그런느낌에 비해 이책은 잔잔하지만 책속에 푹 빠져들어 지루함을 느낄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까지 사귀어오던 남자친구가 배낭여행중 갑작스런 사고로 죽었지만, 주인공은 그 사랑을 지우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녀에겐 새로운 남자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시절부터 셋이 어울리다 남자친구가 죽은후 자연스레 사귀게 된 사이. 하지만, 둘 사이엔 언제나 전 남자친구의 잔해가 남아있다. 그것이 아픔인지, 아니면 아쉬움인지, 깊은 사랑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그녀는 늘 죽은 남자친구의 그림자를 안고 살아간다. 부모님의 전근으로 혼자 집을 독차지하게 된 그곳에서도 그의 체취가 남아있고, 집앞에 움푹패인 구덩이 속에도 어린시절 빠져 허우적 거리던 그를 기억하며 힘들어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왜 그가 사고직후 옆에 앉아있는 여자승객과 꼭 껴안고 죽었냐하는 궁금증에 몸부림치는 그녀였다. 우연히 같은 여행을 하는 일본여자를 만났다는 그의 엽서를 마지막으로 그들의 죽음은 이후 일본에서 불꽃같은 사랑으로 미화되었고, 그의 애인은 마지막까지 그녀가 아니라 같이 죽음을 맞이한 그녀였다. 사랑과는 별개로 자신이 그 옆자리에 없음을, 그를 믿지만 한순간의 섭섭함이 어쩌면 그를 더 잊지 못하게 하는지로 몰랐다. 지나간 사랑의 아픔은 되씹을 수록 깊어만 져 갔다.
지나간 아픈사랑에 힘들어하는 주인공,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죽은 친구와 그녀의 애인이었던 여자를 자신의 사랑으로 만든 죄책감과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등이 얽히는 지금의 남자친구. 같이 추억할수 있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픔이 되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깊은 골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둘이지만 셋인 그 모습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애써 둘이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가 떠난자리를 같이 공유한다는 마음과 같이 지킨다는 마음으로 따듯함을 지닌채 그들은 사랑하기로 한것이다.
아픈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잊지못하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본다는것은 직접 겪어보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무척이나 힘들거라는 느낌이 온다. 특히나, 살아있는 상대가 아닌 이미 이세상에 없는 상대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더 애틋해지고 추억이 깊어져만 가고 있으니 그걸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이 오죽하랴. 그러나, 저자는 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깊이 있는 절망을 더 나락으로 빠트리지 않고 공유하며 웃음을 되찾아 갈수 있도록 주인공들에게 함께 추억하는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픈사랑은 늘 추억하면 아프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보다 아프지만 함께해서 행복했었다는 느낌을 주는 책. 잔잔하면서도 그만큼의 감동이 있고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