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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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20대 초반에 만났는지, 중고등학교때 만났는지 그마져도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로 읽긴 했지만 제대로 된 기억력은 없었다.  단지, 음...... 뭐랄까 어린날 읽었는데도 고전에서 주는 깊이가 있었고, 사뮈엘 베케트라는 작가에 대한 묵직함이 있었고, 뭔지 모르겠지만 <고도>를 기다리는 두 남자의 모습이 자세히는 아니지만 계속 기억에 남았다.  얼마전 필사를 결심 했을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헤세아저씨나 존 스타인벡의 글을 제쳐두고 제일 먼저 기억났던 것도 계속 기다리던 고도를 그들이 만났던가? 혹은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누구인가? 혹은 무엇인가? 라는 의심이 새삼 들어서 이 책을 천천히 필사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필사를 시작하고보니 단지 글자 쓰는 것에 정신이 팔려 내용 파악이 제대로 안되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필사는 그냥 집어치웠다.  자꾸만 내용보다는 글을 써 나가는 과정과 몇페이지의 성공에만 목을 메는 거 같아 내가 책을 읽는 목적과 잘 맞지 않는 거 같아 관뒀다.


일단,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이 들의 모습이 연극무대위를 꽉 채운다.  극본으로 쓰여진 책이기에 읽으면서 그가 써 놓은 지문하나하나에도 꽤 신경이 쓰였다.  에스트라공은 어떤 성격인지, 블라디미르는 어떤 성격인지 그런 지문에서 성격의 차이를 알 수 있는 그런 글이랄까나.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 그들의 "고도"를 기다리기.  고도라는 사람이 이 책에선 분명 인물로 묘사되고 있긴한데, 어릴적 읽을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읽으면서도 단순히 "고도"가 인물이기만 한 걸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쓸때의 베케트 상황이라던가, 시대배경의 지식까진 없어서 제대로 이해 할 순 없었지만 굳이 인물로 한정 짓지 않아도 될 그 무엇인가 라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도대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제대로 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고나마 좀 나은 사람이 블라디미르.

에스트라공은 고도를 기다리는 건 알지만 꼭 블라디미르가 일깨워줘야만 "아, 그렇치 고도를 기다리고 있었지." 라고 깨닫는다.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늘 까먹는다.  자신이 벗어 놓은 신발, 어제 만났었던 사람, 자신이 했던 행동들.  모든걸 깡그리 잊어버리고 늘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덩그라니 나무만 있는 그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곤, 블라디미르에게 서로 헤어질까? 라는 생각을 또 다시 말하고 간다라고 하다가 움직이지 않고, 다시 블라디미르가 "고도"를 기다린다고 말하면 그건 또 기억한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만이 진을 치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들의 기억력보다는 그 순간 순간 그들의 행동에 눈길이 간다.  저러고도 살아 갈 수 있나? 라는 현실적인 생각보다 과연 이들이 말하는 고도가 뭐지? 계속 그런 고민과 그들의 희화화된 모습과, 혹은 안타까운 모습들이 교차되어 지나간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린 게 맞을까?  아니면 그 순간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여전히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어린날 읽었을 때의 느낌보다 지금 읽는 묵직한 느낌이 더 깊이 와 닿는다.  그들의 모습을 글로 표현 할 순 없지만 뭔가 울림이 오는 느낌.

그들의 희화화된 모습이 어디에 대입해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뭔가 이해가 되는 이상한 느낌.

이래서 고전은 늘 한번 읽고 말게 아니구나.  게다가 한 출판사만을 고집해서 읽을게 아니구나.  라는 새로운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 마다, 혹은 역자마다 느낌이 다르고, 그리고 현재 내가 책을 읽는 그 순간이 어떠냐에 따라, 내 처한상황과 나이에 따라 새로움을 선사하는 보물을 찾은 듯한 느낌.  그래서, 고전은 늘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를 파헤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못 다한 이야기를 내가 또 상상하며 기억해 두는 맛이 어떤지 다시한번 실감한 계기가 됐다.  어릴적 느낌이 틀리진 않았구나.  그때 읽어도, 지금 읽어도 좋았던 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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