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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평점 :
요즘 이 책이 꽤 화제다. 왜그럴까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헤세의 글을 읽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에 관심을 갖지 않을까? 아니, 헤세아저씨의 글을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모두들 그의 글에 일단 관심을 가진다. 특히나 더더욱 유명한 작가가 헤세아저씨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글을 썼다하면 두배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나는...... 왜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던 걸까? 하긴, 이런 의문조차 무의미하다.
어린시절 <데미안>을 만났고, 신비한 데미안의 모습에서 뭔가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솔직히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뭔가 끌리는 듯한 느낌. 그후에 만난 <수레바퀴 아래서>가 나의 헤세사랑에 정점을 찍었달까. 청소년시기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머릿속이 복잡했고, 나름 방황 아닌 방황으로 힘들었던 시기. 그 책을 읽고 나는 헤세아저씨의 글에 빠졌다.
왜? 라고 묻는다면, 그 책을 덮는 순간 우리의 주인공 한스는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 책을 읽고 살고 싶어졌다. 무수히 많은 죽음을 생각하던 시절, 나는 그 책 한권으로 삶의 의미를 부여 잡았고, 그 책 한권으로 살아갈 힘을 얻었으며, 무조건적인 헤세교의 신도로 푹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지만 헤세아저씨의 글은 읽으면 읽을 수록 어렵다.
<유리알유희>의 그 두께에 압도되면서 글을 읽고 읽고 또 곱씹어 읽었지만, 그가 전하는 메세지를 간파하지 못해 실패한 나.
재독을 언젠간 해야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아는분의 유리알 유희에 대한 본인만의 해석을 듣고 다시 한번 흥미를 가지게 되기도 했지만, 역시 재독은 쉽지 않다. <싯다르타>를 읽으면서 나는 왜 사무엘 배케드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이 됐는지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이것 역시 재독을 해 봐야 그때의 느낌을 깨트릴지 '아, 이래서 그랬군.' 이라고 공감할 지 알 듯 하다.
<수레바퀴아래서> 다음으로 좋아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개인적으로 <지와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읽었는데 혹여 이 책이 같은 책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덥석 두권 사는 분이 없길 바란다. 물론, 출판사가 다르다면 재독을 해도 상관없겠지만.....
처음 "지와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접했을땐 왜 이런 제목인가? 라는 의문을 품었는데, 다 읽으면서 어렴풋이 그 제목을 이해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원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가 좋다. 나는 아마도 그때 나르치스를 좋아했던 것 같다. 나와는 다른 지적이며 신비로운 뭔가가 느껴지고, 당시의 나는 골드문트 같은 어긋나버리는 삶을 좀 싫어했던 점도 있었던 듯한......
그리고, <크눌프>를 만났던가? 그런데, 아...이 책은 정말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군.
그렇다. 나는 가벼운 책을 읽고 나면 이렇게 헤세아저씨의 책을 한권씩 야금야금 거리며 읽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이런저런 핑계로 그의 책을 사들이고만 있지만, 그가 나에게 끼친 영향은 너무나도 커서 헤세아저씨 이야기만 나오면 기염을 토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그가 어디에 살았으며, 죽음은 어디서 맞았는지, 그런것은 아무것도 모른체.... .. 오롯이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뭔가 그의 글을 분석하라하면 말주변 없음으로 입을 닫아야 하지만 말이다.
정여울 작가도 나와 같은 그런 시절을 겪었나보다. 수시로 찾게 되는 헤세아저씨의 글을 들추며 그를 따르는 여정을 나선걸 보니.
그의 글만 접해서 알지 못했던 그 시절의 헤세아저씨의 삶을 정여울 작가덕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며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특히 초반 그가 살았던 곳곳의 사진들을 보며 내가 그동안 사랑했던 헤세아저씨의 발자취를 책 속에서 찾으러 눈에 불을 켰다.
그가 써낸 이야기들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그 이유를 찾고자 더 눈을 부릅떴다. 물론, 그런게 또 눈 부릅뜬다고 제대로 보여질리도 없지만, 조금이나마 그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건 너무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는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 정여울 작가가 말하는 헤세아저씨의 작품들을 다 읽어서 나는 와~ 한순간 소리를 질러본다. 하지만, 우습게도 얼마전 재독을 했던 <데미안>을 제외하고 내 청춘에 강한 영향을 끼친 <수레바퀴 아래서>가 어렴풋이 기억날뿐 다른 이야기들은 생소하게 기억되고, 해석되는 이 느낌. 아,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어렴풋 하긴 하다. 단지, 골드문트가 이런 살인까지 했었다는 기억은 전혀 안 났는데...... 읽어보면서 무릎을 친다. 3초 기억력이래도 어느정도 기억 할 건 하나보다. 단지, 나는 정여울 작가처럼 도저히 헤세아저씨의 글들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담아내야할지 그게 막막하다는 사실이다. 그의 글을 너무도 좋아하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어렵지만 뭔가 느껴지긴 하는데 그걸 말한다는 건, 글로 써 낸다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정여울 작가의 헤세 아저씨에 대한 애정과 그녀다운 해석을 해내는데는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글이 백퍼센트 나와 들어맞진 않는다. 예를 들면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를 괴롭혀 돈을 빼앗던 녀석에 초점을 두게 된다는 정여울작가의 글은 아직도 나는 어색했으니까...크크... 나는 아무래도 그 녀석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이 책을 애정하는 건 내가 읽었던 책의 오래된 나의 기억을 저 먼지 낀 창고속에서 새록새록 꺼내 후~하고 먼지를 걷어내주는 입김을 느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추억과 함께, 내가 헤세 아저씨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새록함을 다시 기억나게 만들었고, 어렴풋하게 느끼고만 있던 뭔지 모를 이야기를 차분히 설명해 주는 것 같아 애정이 샘솟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대문호의 묘 답지 않게 너무 소박해서 사진을 두고 두고 보면서도 그가 정원일을 하며 보낸 말년의 생을 되돌아 보게 만들었다. 북적대는 도시속의 삶보다 이런 소박한 행복이 더 절실하지 않았을까? 이런 사진을 보면 참 정여울작가가 부럽다. 아니,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는 그이 여정을 찾아 떠나보려는 생각조차, 시도조차 하지 못했것만........
어쩌면, 그의 글을 읽다보면 어렴풋한 패턴이 몇권에선 보여지는 것도 같다. 동양사상의 심취, 두명의 남자주인공, 이성적 사랑보다 두 남자에서 오는 미묘한 교감, 깨달에 대한 근본적인 길찾기, 이성적인 사랑과 깨달음 사이에서 방황하는 이들 등등.....
그랬던것 같다. 대체로..... 내가 읽은 것들에선.
아직 그다운 그를 보여줄 에세이를 만나지 못했다. 그게 아쉽네. 이번 이 책을 계기로 나는 헤세아저씨의 에세이를 찾아 읽어야 할 것 같다. 그가 남긴 짤막한 글들은 휘리릭 책장을 넘기며 만났지만 그가 오롯히 헤르만 헤세인 것을 보여주는 에세이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에세이와 함께 이 책을 했다면 더 뭔가 와닿는게 조금이라도 늘어날텐데.....
두고두고 보며 헤세아저씨의 책을 읽을때마다 이 책도 다시금 읽어가는 것도 참 새로운 방법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사랑하는 헤세아저씨. 그 곳에선 정원일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고 계신가요?
문득, 그의 글을 읽었던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는군. 다시 헤세아저씨의 매력속으로 빠져들어야겠다. 그동안 너무 잊고 살았구나.
진정 그를 잊고 살았던 시절을 되돌려 "헤세로 가는길"을 정여울 작가가 다시금 열어 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