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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막상스 페르민 지음, 조광희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가 강렬하다. 제목은 "눈"이라는데 표지는 화려하면서도 강한 붉은 꽃들이 장식하고 있다. 그와 대비대는 까만 바탕은 순결함을 상징하는 "눈"과 대비되는 느낌이다. 표지가 모든 걸 대변하진 않지만, 이런 강함은 내가 책을 읽고 받아들이는 느낌이 결코 간단하고 쉽지 않을것이라는 걸 말해주는거 같아 책을 펴기전에 설레임반, 두려움반이 앞선다. 어째꺼나 최근에 프랑스소설들이 꽤 괜찮은 느낌으로 와 닿아서 프랑스 소설이라면 내용을 불문하고 읽고픈 욕심이 조금씩 생긴다. 물론, 간혹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내용들이 있긴하지만, 지금껏 내가 유지해온 소설속의 얘기들을 뛰어넘어 색다름을 선사하기에 한두권씩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께가 얇은 책이라 읽는 시간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다. 마음먹고 읽었더니 두어시간이면 넉넉하다. 단지, 프랑스 작가가 일본역사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썼다는것이 무척 특이했다. 승려나 사무라이가 되는 전통적인 집안에서 자란 주인공은 어느날 시인이 되겠다고 승려인 아버지께 선언한다. 그런 아버지는 아들에게 "시인은 직업이 아니며, 취미로 하는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한다. 그러나 몇년을 두고 고민해도 다른 길을 택할수 없었던 아들은 다시 아버지에게 시인이 되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그 내용을 "눈"에 관한 얘기들로만 채울것이라고 한다. 참 특이하다. "눈"이라는 것이 순백하고 순결하지만 그리고, 간혹 시의 주제로 선정돼 멋드러지게 글로 지어질순 있지만, 오로지 "눈"에 대한 시를 짓겠다는 건 조금은 황당스러움이 아닌가 싶다. 어째꺼나 아들은 눈에 대한 시를 지었고, 솜씨가 출중에 급기야 궁정의 시인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궁정시인은 소문을 듣고 아들의 시를 접하게 되지만, 너무도 훌륭한 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색채가 들어있지 않음을 한탄한다. 몇년후에도 여전히 색채가 없음을 알고, 자신의 스승이자 화가를 소개해준다. 스승을 찾아간 아들은 그곳에서 스승에게 색에 대한 배움과 스승이 눈이 멀게된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스승을 찾아오면서 만나게 된 산사태속의 아름다운 여자 시체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게된다. 모든 배움이 끝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때 아들의 시는 순백색인 눈을 노래하면서도 그 누구도 따라올수 없는 색이 들어있었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니, 두꺼운 책 내용보다 더한듯한 기분이든다. 짧으면서도 많은 얘기와 생각거리들이 놓인 책이 아닌가 싶다. 눈에서 색을 발견한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물론, 하얀색 역시 색이다. 흑백이 아닌이상 색을 지니고 색을 노래할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속에 어우러진 색을 찾아낸다는 것은 과연 무얼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다. 같은 하얀속에서도 그 진함과 연함이 다르듯 "눈"이라는 소재속에서 그런 색감을 발견하고 노래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깊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짧은 소설임에도 생각거리는 많고, 머리는 좀 아픈 책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