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의 역사 - 일상생활과 예술작품에 나타난 인간의 나체 이해 방식
장 클로드 볼로뉴 지음, 전혜정 옮김 / 에디터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어떤것이든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관심이 무조건적으로 간다.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도 좋아하지만, 그 어떤것에 대한 역사라도 사실 마찬가지로 흥미를 가지고 보는터라 책이 나왔을때 마치 내가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의무감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표지는 얼마나 고혹적인가?  혹자는 "선정적이다."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순전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느끼기엔 표지에서 풍기는 뭔지 모를 아름다움이 있었다.  물론, 제목과 걸맞게 수치심을 염두에 두었기에 상의를 드러낸(아니면 그보다 더한 누드일지도 모르지만) 여인의 모습이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도 했었다.  내 눈엔 수치심과 결부시키기엔 표지가 너무 아름답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만큼 기대감도 컸다고 해야 옳을거 같다.  수치심이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역사의 깊이는 얼마만큼 되는지에 대해 알수 있다는 커다란 기대감이라고 해야할까? 

 

일단 "수치심"을 굳이 따지고 들자면, 종교적 차원을 넘어서 아담과 이브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할까?  그러나, 실지 언제부터 수치심이 시작되었는지 기원을 찾아 간다는건 쉬운일이 아니다.  프랑스 궁정이나 귀족들의 얘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에서 보면 예전왕들은 신하들의 알현을 침대나, 화장실에서 맡았다고 한다.  물론, 화장실에서 뒤를 보는 장면이 그대로 보여질수 밖에 없었고, 신하들은 그런부분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고 한다.  지금같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었다고는 하나, 화장실에서의 접견이라니...... 상상만해도 웃긴일이다.  게다가 귀족들은 침대에서 누군가를 맞이하는것 역시 그다지 잘못된 일이 아니었던터라 애인과 같이 있다 들키기도 부지기수라고 하니, 웃기는 일이 아닐수 없다.  일단 수치심은 대체로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에게서 먼저 생겨났고, 여자들의 몸을 감추기 위한 방편으로 많은것들이 생겨났으므로 여자=수치심 이라는 등식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몸이 아파도 의사에게 몸을 보일수 없다며 죽음을 택하는 왕비와 귀족부인들이 있었으니, 각기 당시마다 수치심의 여부는 누군가 그 규율을 만들기보다 사회적으로 스스로 파생되어 만들어져 형성되어 가는경우가 태반인터라 (물론, 법률로도 수치심을 묶기도 하지만) 역사를 깊이 따지고 들어가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엔 허용되었던 일들이 지금의 현실에서는 얼토당토 않은 일이며, 그 반대인 경우도 있어 수치심의 기준은 시대적 상황일수밖에 없는 애매모호함을 남긴다.

 

다른 모든 책에 대한부분이 솔직히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프랑스 역사에 관한 부분이 많이 할애된데다가 무슨사건 하나하나, 이름 하나하나가 생소한터라 읽는데 적잖이 고생을 했다.  그러나, 수치심이 예전시대 신분을 나타내기위한 한 방편처럼 "천박하게 다 드러내 놓은 노예"와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 "고고함을 내세운 귀족"과 대조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함이었다는 부분은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수치심의 역사에 대해 짧은 지식으로 알아내기 힘든 아쉬움이 들지만, 작가의 깊은 연구와 방대한 자료에 대해선 대단하다라는 생각만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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