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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일단 표지와 제목에서 오는 유쾌함이 책을 읽기전부터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오 나의 마나님"이라고 외치며 앞치마를 두른 남자. 내용을 모르더라고 어느정도 짐작을 할수 있게 만드는 표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남자들이 사랑하는 누군가를 받들때 "오~ 나의 여신님"이라고 외치는 말들을 책속에서 많이 접했던터라 제목에서 오는 느낌 역시 그러긴했지만 웬지 익살스러움이 더 와 닿는듯한 기분이었다.
프랑스 소설은 워낙 글속에 숨겨진 풍자가 많고, 재밌기에 좋아하는편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본소설과 함께 프랑스소설도 많이 챙겨보려고 한다. 그러던중 만난 책이라 더 호기심이 발동하고 읽기전부터 미소가 떠올랐는지도 몰랐다.
소설이라고 하기보다 작가의 실생활을 그린 수필처럼 느껴지는 이 책은 두 딸을 둔 아빠로서, 자신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아내를 둔 남편이 일상사를 적은 글이다. 결코 미워할수 없는 익살들이 넘쳐나는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를 읽을수록 이 남자 불쌍하기보다는 웬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 듯한 기분이 드는건 뭘까? 예전 남자들의 권위는 온데간데없고 아내들의 말 한마디에 좌지우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투덜투덜 거리지만 그건 단지 귀여운 투정일 뿐이다. 이미 스스로의 자리를 인식하고 남편의 자리에서 묵묵히 아니 쩌면 아내와 조금은 자리가 뒤바뀌어 버린 상황에 대한 아쉬움으로 가득하지만 결코 밉지 않은 투정이다. 두 딸 아이를 공원으로 데려가 놀게 해야한다는 내용속에서 그는 여자들의 위대한 관찰력에 경의를 표한다. 일단 공원에 산책나온 다른 부인의 아이들과 친해지게 해놓으면 자신은 책을 읽고 있어도 무방하다는 아주 재밌는 이론을 펼친다. 그 부인의 아이와 놀고 있으면 자신의 딸이 놀다가 다치더라도 자신보다 먼저 대처하는 민첩성을 발휘하며 놀래거나 다쳐서 우는 아이를 달래는 데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 내용을 읽으면서 오~ 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같은 여자로서 그런부분에 대해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이 남자, 여자의 위대성을 찾아내고 있었다. 물론, 간혹 자신이 영화 "대부"속의 주인공처럼 남자의 권위를 찾고 힘있는척 아내에게 큰 소리를 쳐보고 싶어하지만, 영화에서처럼 되지 않는게 현실이라는걸 깨닫는 무지 현실적인 남자이기도 하다.
생각하기엔 현대생활에서 나약해져 가는 남자들의 처연한 모습을 그린듯한 책이지만 실제 따지고 들어가다보면 현실에서 남자와 여자가 공존해 가며 세월에 따라 같이 묻혀지고 쌓아가는 사랑의 느낌이 더 강하게 전해져 온다. 물론 지금 남자들, 힘을 잃어가는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여자들의 사회생활의 활발한 진출로 그 입지가 줄어든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남녀대립의 얘기가 아니라 그런 현실속에서 남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아내의 모습을 위트넘치게 즐기며 사는
재미난 남자가 있을 뿐이다.
읽는 내내 프랑스풍의 풍자에 웃었고, 작가의 익살에 웃으며, 작가의 찰력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두 딸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아내보다 많아도, 월급이 아내보다 적어도, 이 남자 결코 불행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