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박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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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이라는 작가에 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이책을 선택한 건 그야말로 순전히 제목탓이다.  얼마나 멋드러진가!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니......

책 제목을 작가가 정했건, 아니면 출판사에서 정했건 정말 기막히게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는 제목이었다.  물론 얼추 제목에서 짐작은 할수 있다.  냉장고와 연애를 연관시키는 걸 보니 뭔가 음식얘기도 들어 있을거라는 느낌..

어째꺼나 제목에 이끌려 책을 읽게 된 이상 제목만 번지르르 하다면 뭔가 왕창 실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아무래도 박주영 작가의 팬이 될거 같은 기분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연애라는 감정에 덤덤해지다가도 한번씩 찾아오는 권태로움에 지겨워지고, 어릴적에는 쉽게만 생각되어지던 연애라는 것이 점점 힘듦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그런 나에게 어쩌면 이 책은 같이 공감할수 있고 친구처럼 조곤조곤 수다 떨수 있는 얘기를 제공해주는 친구 같은 느낌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바쁜 시계보다 뭔가 동떨어진 느낌의 주인공 나영.. 그녀는 3년된 애인이 있고, 어릴적 첫 사랑 아니 엄연히 말해 짝사랑인 지훈이 있고, 지훈의 애인이자, 자신의 대학때 친구인 유리가 있으며, 나영 자신이 어렵게만 생각하는 문제들을 쉽게 매듭지어 주고 결정내려주는 수진이라는 명쾌한 친구와 10년간 한사람만 사랑하는 친구 은주가 있다.  나영의 어린시절은 부모의 별거로 부터 시작되고 어린시절 엄마가 해주는 요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자신은 요리솜씨가 꽝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오다 우연히 요리하는 맛에 빠지게 되고 그녀는 그일이 그냥저냥 자신의 밥벌이를 하게 해주는 일이 돼 버렸다.  3년된 애인 성우에 대한 기대도 사랑이라기보다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는 일상이 돼 버렸고 친구의 애인이지만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지훈은 이성,동성 따지기를 떠나 만나서 밥먹고 영화보고 헤어지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둘을 그저 조용히 봐줄수 없는 세상...  지훈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나 얘기가 없던 성우가 어느날 이별을 얘기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훈과 자주 만나는 나영을 이해못한 성우의 뾰료통한 모습에 화가난 나영이 헤어지자고 먼저 말해버리는 거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초연한 그리고 누가 밉다라는 선입견이 없는 나영의 삶에 사랑 또한 성우여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에 실연은 시간흐르듯 지나간다.  새침떼기 유리가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애써도 나영은 그런 모습과는 동떨어지고 티비속의 꽃미남이 나오는 드라마를 여전히 챙겨보는 열혈 애청자이고, 답이 똑똑 떨어지는 수진처럼 되지 못한 흐리멍텅한 계산법이지만 그녀가 살아가는 인생이 재미없게 느껴지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요리할 것들을 꺼내 만들어 내는 그녀만의 요리시간들은 그녀만의 공간이자 숨쉬는 곳이었다.  물론 사랑은 요리를 만들어내듯 자유자재로 어찌해볼수 없는 문제지만 요리의 레시피를 작성하고 그것을 머리로 그려내는 나영은 요리속에서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만들어낸다.

 

세상의 복잡함 속에서 담담함이 느껴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내가 생각하는 공감은 보이지 않지만, 편안함이 엿보여서 좋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유리의 모습에 가깝다.  여우처럼 너무 내것만을 챙기진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과 사람의 모습에서 포장하려는 습성..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모습은 나영이었음 한다.  세상에 무관심한듯 그리고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지만 자신은 그자리에서 변한것 없이 자신만의 낙천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발을 디디는 것.  어쩌면 빠른 세계시간에 느려터진 그녀의 시작이 늦을지 모르지만, 마지막 도착점은 그 누가 빠르다고 할 수 없는 느림의 미학이 엿보이는 주인공 나영의 모습이었다.  모든것이 틀에 박혀있다고해서 나영의 모습도 틀에 박혀야 한다면 난 이책을 과감히 던져버렸으리라.  하지만, 내가 바라는 모습이 들어있고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편안함이 있기에 책을 읽는내내 불편한 느낌이 전혀 없었던듯 하다.  비록 냉장고에서 모든 연애를 꺼내어 요리할수는 없지만 그 요리를 시작으로 새로운 사랑은 시도해 볼수 있는 새로운 마음가짐은 가질수 있지 않을까..

박주영이란 작가 내가 느끼는 코드를 그대로 읽어내는 느낌이 좋다.  앞으로 팬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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