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표지에 쓰인말들, 겉표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긴 머리의 라푼첼의 모습 그 어떤것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야마모토 후미오" 이 이름 하나면 나에게 모든것은 그야말로 무조건 통과였다.
그만큼 나는 그녀에게 중독 돼 있다. 그래서, 이책이 나온다는 말에 두말할 것도 없이 무조건 무조건 읽어야했다.
그녀만이 풀어내는 특이한 색깔속에서 절절하게 와 닿는 미치도록 내얘기 같은 감정이입.
그것이 그녀가 가진 매력이며, 그속에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를 주는 것 또한 그녀의 글속에서 느낄수 있는 또하나의
기쁨이자 아픔이다.
어린시절 라푼첼이란 동화에 난 무슨 의미를 뒀던가? 생각해 보면 시시껄렁하다고 느껴지는 동화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꿈을 키우고, 남자들은 용사가 되고, 왕자가 되고, 여자들은 그런 용사나 왕자가 된 멋진
남성을 기다리며 또하나의 세계속으로 빠져든다.
물론, 어릴적 동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잘못됐다거나 유치하다거나 아무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단지, 그런 상상속의 나래들이 커서도 이어지며, 여전히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것이 문제다. 그속에서 더 자라나지
못한 상상의 나래가 어린시절 그 수준에서 머물러 버리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라푼첼은 내 기억속에 지금 어린시절 그대로 별다른 감흥도 없이 자리 잡은 작은 동화속 얘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가 중독된 야마모토 후미오가 라푼첼 같은 한 여인을 탄생 시켰다는것에서 나는 어린시절 상상력을 그틀속에
가두지 않고 키워 나가기로 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시오미.. 그녀는 그저 무력하게 살아가는 게 꿈일정도로 아무것에 의미도 없이 결혼 6년차에
매일을 빠친코에 드나들어 심심풀이를 하고, 심심하면 잠을 자고, 간혹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리는 세상속으로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싫어하는 무력한 28살 여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바람처럼 고양이 한마리를 던져주고 사라진다. 언제나 그런것처럼. 마치 집이 전철지나가는 역인것
마냥 남편은 그저 그렇게 잠깐 잠깐씩 왔다 사라져 버린다. 그 공허함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하지만, 그녀 또한 그것에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원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니까...
그렇게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는 그녀에게 어느날 앞집 소년 중학교 1학년 로미가 눈에 들어온다.
후크속 루피오를 닮았다하여 그녀 혼자 마음대로 루피오라 이름 지은 소년... 그 소년이 시오미의 삶에 뛰어들었다.
순식간도 아니었고, 살며시 스며든것도 아닌 그냥 일상처럼 루피오가 그녀의 삶속에 들어왔다.
이해하기 힘든 15살이나 어린 소년과의 사랑이 시작된것이다.
과연.. 야마모토 후미오가 풀어내지 못한 글이었다면, 내가 이 글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이런 정신없는 짓을 하는 여인네라고 말도 안되는 저질 소설이라고 욕을 했을까? 시간만 허비했다 욕했을까?
아니 아니다. 그녀이기에 이런글을 풀어낼수 있지만, 그렇치 않더라도 시오미의 미치도록 절절한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작은 공간속에 갇혀버린 그녀의 미치도록 아련한 아픔이 느껴진다면 손가락질만은 할수없었을 것이다.
내용이 손가락질 받을만한 글이라기 보다 그 속에 녹아든 시오미의 아픔이, 외로움이 고독이 너무 커서 나는 그들의
말도 안되는 사랑을 욕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완벽하게 시오미에게 감정이입이 되어버린탓이다.
그만큼 야마모토 후미오는 모두들 중독시키듯 겉에 흐르는 내용보다 속깊은 곳에서 아픔을 끌어내는 것에 탁월한
재주를 지닌 작가다. 그런 마력으로 모두들 중독시키고 주인공처럼 아파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라푼첼을 동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라푼첼처럼 틀속에 갇히려던 시오미는 동정한다. 아니, 시오미를 느낀다.
내가 시오미인듯 그녀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어버린 책속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시오미가 있듯 이 책을 다 읽은
나역시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였다. 또한번 야마모토 후미오의 마술에 빠지며 난 또 그녀의 다음 책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