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성당 1
일데폰소 팔꼬네스 지음, 정창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이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인간의 잔혹함은 어디까지이며, 또한 인간에게 가해지는 고통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더해 읽어갈수록 연이어 터지는 사건과 사건들 속에서 잠시도 눈을 뗄수 없었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를 몇번이나 이책을 집어 들었던가.   한사건이 끝나고, 하나의 고통이 끝나면 또 연이어 일어나는

간접적으로나마 고통으로 다가오는 일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나는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들기가 무서웠다.  고통의 수위가 읽으면 읽을수록 더해 가는 느낌이 들어 그 고통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싶지 않았다.

책속의 아픔이 나의 아픔인양 그렇게 많이 아팠다.

 

우리나라에도 있어왔던 인간의 차별.. 노비와 양반...적자와 서자의 차별.. 그래서, 난 유달시리 과거 특히나 조선시대를

싫어하는 지도 모른다.  그 시대가 있었기에 내가 있고,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단지

문서하나로 이어지는 인간이하의 차별적 대우가 있었기에 그 시절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웬지 그 고통을 거울삼아 자꾸만 그 시절을 되뇌는 아이러니도 지니고 있지만, 어째꺼나 노비, 양반이 웬지

우리에게만 국한된 얘기인거 같은 착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책을 통해.. 과거 여러나라에서 그런일들이 당연히하듯 일어났으며, 지금도 그런 차별은 한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자각해 본다.

 

한 마을의 영주.. 모든것을 가질수 있는 권리와 그에 속한 농노들.. 죽어라 일을 해 영주들의 배를 불리거나, 왕의 배를

불리기 위해 모든것을 바쳐야 하는 그들의 인생..  그들은 인간도 아니었고, 그저 일하는 기계였다.  농사를 지어 영주에게

바치는 단순한 기계일 뿐이었다.  그들이 반항하거나, 도망을 치는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따름을 의미했다.  그러니,

그들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첫날밤을 신랑이 아닌 영주가 차지할수 있는 말도 안되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 졌으리라.

 

처음은 그런 그들의 아픔에서 시작한다.  초야를 영주에게 뺏긴 베르나뜨..  그 사실에 충격을 받은 신부 프란세스까.. 그리고

태어난 모든 세파의 주인공이 될 아들 아르나우. 

영주는 자신이 초야를 치뤘으나, 그의 자식이 아니라 베르나뜨의 자식이라는 것에 주위의 비웃음을 사자 베르나뜨를 온갖

고통속으로 밀어넣는 일의 시초를 알린다.  그에게 자식을 빼앗고, 아내를 빼앗아 자기 자식이 유모로 불러들인다.  아무

반항을 할수 없었던 베르나뜨는 우연히 자기 자식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주의 명을 어기고 자식을 찾아내

바로셀로나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동생의 집에서 또다시 일어나는 차별과 고통들.. 그리고, 인간만도 못한 대접을 받는

노예들을 대하며 아들 아르나우에게 자유에 대한 각인을 심어준다.

배가 고파 자식을 살리기 위해 평생 살았던 베르나뜨는 영주나 왕에 비해 먹을것 없이 굶어가는 군중들속에서 빵을 갈구하는

이유로..군중을 선동했다하여 죽임을 당하고 얘기는 아르나우에게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죽음속에서 인간이하의 고통을 맛봤고, 억울함을 알게된 아르나우는 우연히 알게된 조안과 형제가 되어 어린나이에

짐꾼으로 자라나며, 성당을 만드는 돌을 들어나르며 성모마리아속에서 어머니를 느낀다. 

세월이 흐르고 결혼을 하고 시민군에 들어가 전쟁을 치르는 등 여러가지 일을 겪는 아르나우.. 우연히 유태인 아이들을 구해

주게되면서 그의 삶은 새롭게 태어난다.  기옘이라는 무어인과 유태인의 도움으로 환전상이 되며, 그들속에서 영사가 되고

전쟁을 막아낸 공로로 남작의 지위에 오르게 되면서 왕으로부터 죽은 아내를 대신해 억지로 왕의 여동생과 결혼을 하게된다.

이미 그의 곁에는 의붓자식인 마르라는 딸이자, 연인이자, 동반자와 함께 기옘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지만, 남작으로

오르고, 왕의 동생과 결혼으로 인해 그 모든것을 잃게된다.  그리고, 아르나우는 이단이라는 크나큰 죄로 고발된다.

모든것이 음모에 의해서 였으며, 돈이라는 욕심앞에 일어난 사건이었고, 질투와 복수에서 온 시기심이었다.

 

두권의 줄거리를 짧은 몇줄로 줄이고자 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큰 고통인듯하다.  책에서 느꼈던 감정을 단 몇줄의 줄거리로

요약해야 한다니.. 그리고, 웬지 글속의 의미를 다 담아내지 못해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어째꺼나, 책 속의

글을 한줄 한줄 읽어 나갈때마다 인간의 한없는 욕심과, 말도 안되는 질투심이 한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엉망으로 뒤엉키게

할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의 끝은 과연 어디인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픔이 클수록 이겨내는 고통속에서 더 큰 행복으로 마지막을 장식할수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아르나우와 같은 고통을

겪으며 인생을 산다면, 그 끔찍함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을것인가...

과거 스페인에서 행해졌던 영주와 노예들, 농노들의 삶이 극명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속에서 스페인의 역사를 어느정도

짐작할수 있었고, 그들의 아픔을 느낄수 있었다. 

단지, 깊은 지식이 없는 탓에 군데군데 이해하기 힘든 부분과 두권이라는 권수가 약간의 부담과 함께, 그들의 고통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지루함으로 와닿았다는 사실을 숨길수 없다.  하지만, 2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을 보고 그것을 이겨내며

새로움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바다의 성당"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종교적 색채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싸움과 아픔이 있었기에 지금 그들에게 노예니, 해방이니, 영주니 하는 단어보다 자유라는 단어가 더 자연스레 와

닿는게 아닌가 하는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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