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암 정약용 전기
정해렴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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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진도 안빠져 고생함. 어차피 전기인데다 한시많아서 각오는 하고있었지만 생각보다 진도가 더 안빠져서 많이 난감했었네.

그래도 국사시간에 이름만 듣고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이런 책 쓰셨다고 달달 외우기만 하다가 실지 정약용 선생의 삶이 어땠는지 한번쯤은 알고 싶어서 전기가 보이자 마자 겟.

생각했던 것 보다 좀 날카롭게 생기신 듯 하다. 그림상으로 보니.....

개인적으로 평전, 전기 이런 부분을 좋아하는 건 수박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던 인물에 대해서 깊이있게 다가갈수 있는데다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 기쁨이 있기에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요즘은 어째 이런 책을 들면 읽기가 더뎌서 좀 피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실학자의 선두주자 정약용 선생이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태어난 순간부터 한해한해 나이가 들어가는 날들의 일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린시절 시를 지어 아버지에게 칭찬을 들은적이 있고, 둘째형 정약전과의 돈독한 형제애가 보여진다. 유독 다른 형제들보다 정약전과 각별했던 듯 하다.

머리가 총명해 급제를 하고 정조임금이 실시하는 글짓기(?)에 1등을 해서 붓과 벼루를 하사받기도 하고, 20대때 본격적으로 정조와 함께 관리로서의 일을 해 나간다. 심지어 암행어사로 갔었던 건 몰랐는데 정조임금의 특별한 부탁이 있어 탐관오리들에 대한 진실을 낱낱히 밝히기도 하는구나. 그래서 그런지 임금이라해도 옳은소리, 바른소리를 하니 사방에 적이 있었다. 정약용의 고발로 관리직에서 물러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회를 엿보며 이를 갈았다고 해야하나. 자신들의 잘못보다 그 잘못을 들춰내 임금께 고한 정약용에 대한 원망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진 임금아래 어진신하라 정조임금은 누군가 정약용에서 죄를 뒤집어 씌어 무고한 상소를 올려도 그에 대한 신임은 두터웠다.

심지어 관리직에 임명해도 정약용은 거절하기도 비일비재해서 어찌 이런 분이??? 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네.

자식은 제법 낳았지만 4일만에 안타깝게 죽기도하고 네다섯에 죽기도해서 안타까운 마음도 컷다.

해마다 시를 짓고 조상들께 인사를 올리고, 전라도나 경상도로 부임되는 아버지를 따라가 효를 다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천주교를 접하게 돼 외국에서 온 새로운 문물도 받아들이기도 하고, 천주교에서 말하는 교리를 듣기도 한다. 이때까지만해도 천주교를 그리 배척하는 건 아니었던 상황이다. 그래서 같이 어울리며 교리에 대해 논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권력을 잡으며 영조의 어렸던 중전이 수렴청정을 하면서 급변하기 시작한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관리들이 천주교에 대한 탄압과 함께 정약용과 정약전을 유배 보내야 한다느니, 참형에 처해야 한다는 상소문들이 빗발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이는 천주교때문에, 어떤이는 그가 가진 사상만으로 상소를 올려 무고하니 순조 1~2년 즈음에 결국 유배를 가게 된다. 아마 초반은 경상도 쪽이었던 것 같고 후에 강진으로 옮겨 기나긴 유배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강진에서부터 다산초당에서 무려 18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다니..... 게다가 정약전 둘째형도 흑산도로 유배생활을 떠나 둘은 그때 헤어진 후로 결국 형의 죽음이 찾아올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한다. 이런 크나큰 아픔이 있을수가....

정조시대엔 수원성 축조와 관련된 어마어마한 일까지 해 낸 그에게 어느날 갑자기 내려진 유배생활이라니.....

하지만, 그 아픔속에서도 우리는 또 그 유배생활때문에 어마어마한 유산을 물려받게 된게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 하게도......

긴 유배생활중이었기에 <경세유표>나 <흠흠신서>등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유배의 고달픔은 상상 그 이상이어서 온 가족을 강진으로 이사시켜 곁에 두려는 생각까지 했다는 것은 몰랐던 부분이라 새롭기도 했다. 형 정약전의 준엄한 꾸짖음으로 그 생각을 접었다하니 형님 정약전의 고언을 대단히 깊이 새겨들었던 듯 하다. 게다가 그도 어쩔수 없는 아버지인터라 두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늘 잔소리가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유배생활에서도 찾아와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으니 그의 학식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지은 <아학편>을 몇년전에 읽은 적이 있는데 꽤 유용했었던 거 같다. 딱 실생활에 맞게 된 한자들만 추려내 <천자문>이 아닌 <아학편> 그 책으로 아이들이 한자공부를 하면 좋겠더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여진히 지금 한자를 배우는 현재도 <천자문>이 주를 이루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선생이 지은 책들의 내용은 그 책들을 한권한권 읽어야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간단하게 소개된 부분들은 보니 그 시대적에 일찌기 받아들여 말대로 했더라면 외적의 침입에 더 방비할 수 있었고 어쩌면 나라를 그리 쉽게 뺏기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됐다. 그만큼 미래를 보는 혜안 또한 깊었던 것이다.

전기를 읽어보니 한 인간으로서의 정약용 이라는 사람이 더 잘 보여서 역사책이나 국사수업시간에 달달 외우던 그런 주입방식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서 한발짝 더 다가선 느낌이다. 물론, 사대부의 마음가짐을 가진 꼰대스러움도 적잖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시대는 그러했으니 어쩔수 없는 상황이고.....

그래서 전기를 읽는게 재밌고, 즐겁고 배울것도 많치만 또 한사람의 인생에 희노애락이 담겨 더 감동있는 듯 하다. 물론 진도가 안나가는 건 무거운 덤이지만 말이다. 이름으로만 외우던 "정약용" 선생을 한발짝 더 다가서게 한 책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마지막으로 다산과 사암 모두 호인데 호가 꽤 많았던 듯 하다. 이외에도 호가 엄청많았는데 기억이 다 안날뿐..

우리가 아는 다산이 제일 유명하긴 한데 저자는 사암으로 전기 제목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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