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6년 스물세 살의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학생이 됐을 때 흑사병이 돌았다. 그래서 뉴턴은 자신이 태어난 외딴 고향 마을 울즈소프에 내려가서 어떤 의무에도 얽매이지 않고 1년의 세월을 편히 보낼 수 있었다. 뉴턴은 그 1년 동안에 미분과 적분을 발명했고 빛의 기본 성질을 알아냈으며 만유인력 법칙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물리학의 역사에서 이와 비슷했던 해를 하나 더 찾는다면 그것은 아인슈타인이 기적의 해라 불렀던 1905년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학생시절 뉴턴은 빛에 큰 관심이 있었다. 그는 미친듯이 태양에 빠져들었다. 뉴턴은 거울에 비친 태양의 상을 들여다 보는 위험천만한 짓을 하기도 했다. .. 그렇게 하기를 몇 시간, 곧 내 두 눈은 아무리 밝은 물체를 본다 해도 태양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시력을 회복하기 위해 내리 사흘동안 어두운 방에 문을 닫아걸고 들어가 지내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태양을 상상하는 일만은 그만두느라고 무척 고생했다.p122-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플러와 마찬가지로 뉴턴도 그 시대를 풍미하던 미신을 완전히 멀리 하지 못했고 신비주의와도 자주 접촉했다. 사실상, 뉴턴이 지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도 상당 부분 이 같은 이성주의와 신비주의의 대립과 긴장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스무 살이던 뉴턴은 그곳에서 "안에 무엇이 씌어 있는지 궁금해서" 점성술 책을 한 권 구입했다고 한다.

그는 그 책을 읽다가 도면을 하나 이해하지 못해 계속 읽어 나갈 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가 삼각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각법에 관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그 책의 기하학적 논의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에우클레이데스의 기하학원론을 구해다가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뒤에 뉴턴은 미적분학을 발명하기에 이른다.p1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플러가 스스로 지은 비문을 읽어 보자.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 재고 있다. 

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지만, 육식은 땅에 남는구나." 

그러나 30년 전쟁으로 그의 묘마저 사라졌다. 

오늘날 케플러의 묘비가 다시 세워진다면 

그의 과학적 용기를 기리는 뜻에서 이런 문장을 새겨 넣으면 어떨까.


"그는 마음에 드는 환상보다 냉혹한 현실의 진리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67212&docId=6032182&categoryId=67213


케플러의 행성운동 법칙





케플러는 역사의 한 꼭지점에 서서 "천문학은 물리학의 일부다."라고 단언했다. ...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나는 펜을 들어 책을 쓴다. 나의 책을 요즘 사람들이 읽든 아니든 후세인들만 읽든,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으련다. 단 한사람의 독자를 만나기까지 100년을 기다린다 해도 나는 결코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신께서는 당신을 증거할 이를 만나기까지 6,000년을 기다리지 않으셨던가. p1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