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를 연구한느 벤저민 패링턴은 고대 과학의 쇠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오니아의 중상주의적 전통은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노예 경제의 발전도 동반했다. 노예 소유가 부와 권력으로 이르는 길이었다. 폴리크라테스의 요새도 노예들이 쌓아 올렸으며 페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활약하던 시기에 아테네 시에는 엄청난 규모의 노예 인구가 상주하고 있었다. 아테네 인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온갖 대범한 생각들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해당됐지, 구성원 전부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노예의 정체성은 손을 사용한느 그들의 육체 노동에 있었다. 육체 노동은 바로 노예임을 뜻했다. 한편 과학 실험도 육체 노동이었다. 노예 소유자들은 당연히 육체 노동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과학을 할 만큼의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도 일부 사회에서 체면치레로 'gentle-men'이라 불러 주는 바로 노예주들뿐이었다. 그러니 과연 누가 과학을 했겠는가? 거의 아무도 과학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긱가 된다. 이오니아 인들의 능력은 꽤 훌륭한 기계를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당장 끌어다 쓸 수 있는 노예의 노동력이 기술 개발의 경제적 동기를 갉아먹었다. 따라서 중상주의의 전통은 기원전 600년경 이오니아의 위대한 깨달음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노예 제도를 통하여 200여 년 후에는 과학적 사고의 몰락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인류사의 모순 중 모순을 바로 여기에서 볼 수 있다.p.3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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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토론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논지의 완벽함이지 그 논지가 지니는 권위의 무게가 아니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권위가 배우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장애의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판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권위의 무게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주어진 문제의 답을 스승이 내린 판단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피타고라스학파에서 통용됐던 이와 같은 관행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들은 논쟁에서 "우리의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 하는 식으로 대답하는 습관이 있었다. 여기서 스승은 물론 피타고라스를 가리킨다. 이미 정해진 견해들이 아주 강해서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채 권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식이었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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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타고라스는 지구가 공과 같이 둥글다고 추론한 역사상 첫 번째 인물이었다. 달이나 태양의 유사성에서 주목했거나, 아니면 월식이 일어날 때 달에 비친 지구의 그림자가 원형이라는 사실에 근거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추론을 했을 것이다. 또는 사모스 섬을 떠나는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 시야에서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부분이 돛대라는 점도 지구가 구형이라는 추론의 근거가 됐을 것이다.  직각삼각형의 두짧은 변의 길이의 제곱을 합한 값은 빗변의 길이의 제곱과 같다는 저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법칙도 피타고라스 또는 그의 제자들이 발견하였다. 피타고라스는 이 법칙이 성립하는 직각삼각형들의 사례를 단순히 열거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학적 추론의 방식을 개발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의 모든 과학 연구에서 필수적인 수학적 논증의 전통은 피타고라스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도 바로 피타고라스였다. 그는 우주를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전체", 즉 코스모스로 봄으로써 우주를 인간의 이해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p.29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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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이 광학 기술 발전의 덕을 보기 훨씬 전부터 데모크리토스는 흔히들 말하는 이성의 눈만 가지고도 무한의 심연을 충분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사고력이야말로 헤라의 젖을 극복하고 밤하늘의 등뼈를 뛰어넘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던 것이다. 그는 우정을 소중하게 여겼고, 즐거움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으며, 열정의 정체와 기원에 관한 철학적 고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데모크리토스는 독재아래의 부유한 삶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가난한 삶을 택하겠노라고 했다.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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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리토스에게 있어 삶은 세상을 즐기고 온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이해는 곧 즐거움이었다. 그는 "축제 없는 인생은 여관이 없는 긴 여정과 같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 그는 수 많은 세계들이 우주에 두루 퍼져 있는 물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태어나 진화를 거쳐 결국 쇠퇴하게 된다고 믿었다.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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