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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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그리스인 조르바


 


 


 


굉장히 문학적으로 읽혀지게 되었던 인문서적을 접한다.


 


자신의 삶에 빗대어 살아온 날의 기억들과 가야할 길, 반성과 권유의 점철된 이야기.를 접했다


 


 


~~~~~~~~~~~~~~~~~~~~~~~~~~


 


시작하며


 


내 삶의 두 축은 '학문'과 '참여'다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호모 아카데미쿠스 - 공부하는 인간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소리'를 무시하고 학교 공부를 강요하는 것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고통이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데 길들여지면 죽을 때까지 행복은 유보될 것이다.


 


성적을 위한 공부든, 세상을 알기 위한 공부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


그래서 더욱, 공부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모두가 공평하게 공부하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한 권의 책으로도 내면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


한 권의 책으로도 정신적 충만감을 느낄 수 있다.


한 권의 책으로도 현실을 뛰어넘는 비전과 계획이 시작될 수 있다.


그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도 인생이 바뀔 수 있다.


 


자기 판단으로 목표를 정하고 즐겁게 뛰는 '경주력'을 키워야 한다.


 


공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부의 출발은 호기심이다.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일에 도전하는 사람,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관심을 놓지 않는 사람.


긍정적 변화를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


나를 알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기를 즐기는 사람.


 


존 롤즈 曰 " 가장 중요한 선"으로 자존감을 꼽는다


"그것이 없이는 어떤 것도 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비록 어떤 것이 우리에게 가치가 있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지 못하게 된다.


모든 욕구와 활동은 공허하게 되고 우리는 무감각과 냉소에 빠지게 된다."


 


스피노자는 렌즈 가공기술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철학을 연구했고,


카프카는 법학학사 학위를 받고도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소설을 썼으며,


T.S.엘리엇은 은행원으로 일하며 시를 썼고,


조지 오웰은 교사, 서점 직원, 잡화점 주인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소설을 썼다


 


청나라 괴이문학의 걸작이라 불리는 포송령의 <요재지이>에서 나온 '운칠기삼'이란 말이 있다


 


법학은 세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세상의 분쟁과 갈들을 다루며 법과 제도의 문제점을 밝혀내고 대책을 강구하는 학문이 법학이다.


 


세상을 잘 살려면 자신의 능력 소질, 환경 등에도 잘 맞고, 의미와 재미도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런 일을 발견했다면 그 이후의 승부는 일상의 삶에서 결정이 난다.


하루하루의 일상이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면 일상의 삶에 충실하고 또한 이를 장악해야 한다.


 


공부의 출발은 호기심이며, 공부의 성공 조건은 노력이다.


 


 


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많은 세월이 흘러 과거를 돌아보면 당시 그릇됐다고 간주된 것이 사실은 올바른 것이었고,


올바르다고 여겼던 것이 그릇된 것이었다고 평가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는 역사가의 의무이기도 하다.


 


가난이야말로 최고의 폭력임을 똑똑히 보았다.


 


공부는 호기심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끊임없이 생겨나는


물음에 답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이론적 실천적 기반을 닦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의 관점을 빌리면


"사회민주주의의 도래는 '입증'되고 말고 할 과학적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윤리적 당위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삶에서 실천으로 '구현'해야 할 문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권고'에서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질타했다.


그는 "살인하지 마라"는 십계명이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규제였던 것처럼.


오늘날 사람을 죽이고 있는 배체와 불평등의 경제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마라"가 현대 사회의 새로운 십계명이라는 말씀이다.


 


겁내지 마라.


두려워하지 마라.


기죽지 마라.


쫄지 마라.


길들여지지 마라.


포기하지 마라.


굴복하지 마라.


그리고 저항하라.


 


변화는 내면의 작은 용기에서,


즉 저항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며, 공부를 할수록 그 용기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호모 쥬리디쿠스 - 정의로운 인간


 


'헌번적 형사법'의 본고장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교'로스쿨은 공립 로스쿨이다.


1960년대 미국 대학 내 정치활동과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보장을 위해 벌어졌던


'자유언론운동'의 발상지


 


법 공부를 잘 하려면,


제일 먼저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을 정립해야 한다.


법학은 '가치 지향적 학문'이지 '가치중립적 학문'이 아니다.


어떠한 가치를 중심에 놓을 것인가를 스스로 분명히 하고,


다른 가치와의 소통과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법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철학, 정치학, 사회학 등 다른 학문을 알아야 한다.


법학은 독자적인 학문체계와 논리를 갖고 있고 또 그래야 하지만,


다른 학문의 시각과 성과를 흡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법학은 편벽하고 건조한 개념과 논리의 묶음에 머물고 말 것이다.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법의 가식에 대해서는 항상 회의적인 태도를 취해햐 한다.


그러나 법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결코 냉소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남아공 헌법재판관 알비 삭스


 


 


방향은 올바르게 잡혀 있다. 다만 아직 힘이 모자랄 뿐이다.


 


1849년에 소로曰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신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히다."


 


 


존 롤즈曰('차등의 원칙')


"모든 사회적 가치들- 자유, 기회, 소득, 재산 및 자존감의 가반-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분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단순한 불평등은 부정의가 된다."


 


'중용'의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정확함'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 曰


'비겁'도 '만용'도 아닌 '용기'가 '중용'이다.


중용은 현실의 부정의와 부당함을 직시하고 그것을 고쳐서 최상 최적의 현실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고민하고 행동하는 심성과 자세를 뜻한다.


 


형상법은 인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형법은 단지 법죄를 처벌하는 것만 아니라 인권을 보호하는 거도 사명으로 하고 있다.


 


형법은 범죄와의 투쟁 도구인 동시에 국가형벌권에 의해 시민이 부당하게 억압받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청년이라면 모든 것을 배우되 단 포기만을 배우지 말라고 하고 싶다.


언제나 공부하고 연대하고 도전하길 바란다.


 


미국 헌법의 이해 (안경환,박영사)


1989년 발표하신 논문 [미란다 판결의 현대적 의의]를 읽고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묵비권과 변호인 접견권 등 형사절차적 권리 보장의 혁명을 이룬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대한 판결이 가슴을 뛰게 했기 때문이다.


 


 


호모 엠파티쿠스 - 공감하는 인간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권이 하위 법률인 형법과 민법으로 인해 껍데기로 전락하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된 사회적 경제적 기본권은 아직도 취약하다.


이 문제가 빨리 중요한 사회의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


노동자를 '임금노예'로 만드는 법제는 바꾸어야 한다.


 


정치에 참여하면서도 정치에 함몰되어선 안된다.


 


나만을 위해 하는 공부는 별로 매력이 없다.


우리를 위한 것이기에 나는 지금까지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


 


사람냄새가 더 많이 나도록 하는 것이 내 공부의 목표다.


 


 


마무리 하며


 


'당신이 걷는 길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공격이나 비난을 받고 고비를 겪을 때 힘들다고 주저 앉으려 하지 않는가,


조금 힘들다고 긴 호흡을 잃은 채 조급하게 대응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생은 매순간 선택을 필요로 하는 '갈림길'과 '막다른 길'의 연속이다.


루쉰이 연인인 쉬광핑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하길.


'갈림길'을 만나면,


"울지도 되돌아오지도 않고 먼저 갈림길 어귀에 앉아서 좀 쉬거나


한잠 자고 나서 갈만해 보이는 길을 선택하고 계속 걷습니다",


'막다른 길'을 만나도


"같은 방법을 취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 가시덤불 속으로 헤치고 들어갑니다"


 


 


포기하지 말고 체념하지 말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걸음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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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 비움의 길, 다스림의 길 이용주의 고전 강독 2
이용주 지음 / 이학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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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장의 도와 덕을 읽고 수행론을 읽다

본문만을 읽는다면 5000자 정도 가량의 내용이라 읽는게 문제는 아니지만.

각장의 문장에 대해 해석이 갖는 의미를 찾아가는 부분이 지금까지 나온

서로다른 책들의 번역이 만드는 제2의 창작의 세계가 아닌가.

서점에 가도 옮긴이의 책들이 여러권이 있는데

노자의 도덕경 원본도 판본이 여러개로 있다고 한다

기존에 《노자》에는 3개의 주요 판본이 있었다. 하나는 한대漢代에 성립된 하상공본(河上公本),[1] 또 하나는 삼국三國 시대의 왕필이 주석한 왕필본(王弼本), 그리고 당대唐代의 학자 부혁이 전한 부혁본(傅奕本)이 그것이다. 이 중 왕필본의 권위가 가장 인정되어 후대에 나온 대부분 《노자》 텍스트들은 대부분 왕필본을 따랐다.[2]

나무위키 발췌

삼국시대의 왕필본을 대부분 사용해오다.

1973년 12월 중국 호남성 장사의 마왕퇴 3호 고분에서 백서(비단) 도덕경이 발견되었고 그것을 백서본이라고 하는데 왕필본과 도경과 덕경의 순서가 배치만 바뀌었다는 부분을 빼고는 거의 같다고 하였고.

일부 순서가 바뀐것도 있다는 부분을 빼고 지금까지는 왕필본을 따라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또 재미있는 건.

1993년 호북성 형문시 곽점의 전국시대 고분에서 죽간 노자가 발견 되었는데.

곽점초간본 노자라 불리는 이 판본이 가장 오래전의 원본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전체 81장인 왕필본과는 다르게 세개의 죽간에 20장,8장,5장 으로 구성되어 총 33장만 보여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건 학자들의 이견이 있는 주장들이 있다고 한다.

이용주 작가가 머리말 앞의 일러두기 남긴 도덕경의 원문은

왕필본을 기본으로 간본, 백서본, 하상공본, 부혁본, 범응원본, 도장본 등

여러 판본을 교감하여 확정하였다고 정리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몇몇 도덕경중에 최근에 구입만 하고 소장으로만 가지고 있는 책이 있는데

러시아 작가인 톨스토이가 번역한 러시아 완역본을 번역하여 한국에 낸것도 있다는 것에서

대문호 톨스토이도 노자 도덕경의 영향을 받았고

헤겔의 대논리학에서 다루는 변증법 역시 도덕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책에는 안나옴)

81장의 그 원본은 분명히 짧지만 그 해석의 부분은 옮긴이들에게

여러모로 각 나라에서 자기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고난이였을것같다.

한자의 해석이 번역가마다 달라 그 해석을 달리하는데.

나 역시 옮긴이의 언어가 다르니 번역이 틀리다고만 생각 했다가.

다른 책에서 그것에 관하여 명쾌한 답을 준게 있었다.

소(疏):

중국 고전은 어렵기 때문에

중국인도 설명을 참고하지 않으면 해독하기 힘들다.

여기서 어렵다는 의미는 시대가 흘러 제도도 바뀌었고, 예전에는 사용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있고, 완전히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예전과 지금의 의미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역대로 고적(古籍) 해석 작업이 정부 주도하에 혹은 개인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해석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주(注, 註)가 있으며

그 밖에도 소(疏), 전(箋), 해(解), 석(釋), 정의(正義), 집해(集解), 집주(集註), 전(傳), 색은(索隱) 등등

매우 다양하다.

명칭은 번잡하지만 모두 원문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한다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단지 어느 해석이 오래된 경우라면

그 해석을 다시 해석하는 설명이 있는데

이를 '소'(疏)라고 한다.

같은 해석이지만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명칭을 달리한 것이다.

유유출판, 책벌레의 공부중.

노자 도덕경 각 장을 읽다보면 연관 된 파트와 장을 안내하는 부분이 있고

읽다보면 앞에서 본것같은 내용들의 연결성에 이걸 순서대로 보다가

어떻게 파트를 정리할까 고민을 했지만.

책의 마지막 후서에 들어가면 도론, 덕론, 수행론으로 파트가 묶여서

어쩌면 관련된 파트끼리 읽어가는게 훨씬 쉬이 읽혀지게 되는 수 있겠다.


한번에 이해할수 없겠지만 조금씩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 거듭해야 완전해질수 있으리라 본다.

몇가지 파트들 추려본다

도는 도라고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은 이름으로 부를 수 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제1장 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총제성의 다른 이름이다.

도는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자의 의미로 부를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를 알수 없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손글씨를 쓰면서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다.

도의 크기는 코스모스가 말하는 우주보다 거 크게 다가왔다.

오히려 우주 그리고 코스모스가 더 작은 것이 되어버리는 느낌이랄까.

마침.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의 각장마다 여러나라의 신화나 문학 과학으로 챕터를

여는데 10장 영원의 벼랑 끝을 여는 3권의 책이 있는데

그중 한권의 도덕경의 제25장의 해석인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혼돈으로 존재한느 무엇이 있으니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고 아득하지만 스스로 우뚝 서서 변하지 않는다.

가지 않는 곳이 없지만 죽지 않고, 세상의 어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의 이름을 모르니 단지 도라고 부를 뿐이다.

억지로 이름을 붙여 크다고 한다.

크니까 가고, 가니까 멀고, 머니까 돌아온다.

따라서 도는 크고, 하늘은 크고, 땅은 크고, 왕 역시 크다

세상에는 네가지 큰 것이 있으니

왕은 그중의 하나다.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제25장 천지에 앞서 있는 도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진다.

해당 파트에 가면 도가 무엇인지 대략적인 추측은 할수 있다.

딱 이거다 라는 표현과 말은 갖지 못하는게 도가 된다.

도덕경 중에 아마 거의 가장 개인적인것으로 읽혀지는 파트가 있다.

읽다보면 도덕경은 겹겹히 도와 덕을 통해 수양을 쌓아가는 과정인데

내적 고민을 포함하는 파트가 있어서 추천해본다.

칭찬과 책망의 거리는 얼마인가? 선과 악의 거리는 어떤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나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넓구나, 끝없이 크구나! 사람들은 희희낙락 즐겁다.

마치 큰 제사를 드리는 것처럼, 마치 봄에 누각에 오르는 것처럼.

나는 홀로 담담하고 욕망이 없는 것 같다!

마치 웃지 못하는 갓난아이처럼.

심심이 피곤하구나, 마치 돌아갈 곳 없는 사람처럼.

세상 사람은 다 여유로운데 나만 홀로 다 잃은 것 같다.

나는 어리석은 마음을 가졌구나! 혼란에 빠져 있구나!

세상 사람은 밝고 밝은데 나만 홀로 어둡다.

세상 사람은 계산이 빠른데 나만 홀로 멍청하다.

마치 바다처럼 넓고, 마치 바람처럼 그치지 않는다.

세상 사람은 모두 유용성을 좇지만 나만 홀로 어리석고 고루하다.

나만 홀로 다른 사람과 달라서

오직 먹여주는 어머니를 귀하게 여긴다.

제20장 도를 실천하려면 세상 가치를 거스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도경의 제20장이 가지는 가장 개인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어떤

득경에서 찾아지는 하늘의 이치를 73장은 담았다

감히 하는데 용기 있는 사람은 죽고,

감히 하지 않는데 용기 있는 사람은 산다.

이 두 경우 하나는 이익이고 또 하나는 손해다.

하늘이 미워하는 이유를 누가 아는가?

하늘의 도를 아는 사람은 다투지 않아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호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며, 느슨해도 잘 기획한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서

숭숭 뚫린 것 같지만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다.

제73장 천도는 성글지만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다

성근듯이 보이지만 천지만물을 바르게 인도한다는 비유는

감정을 해소하는 억울함을 풀게하는 아무것도 놓치지 않는 어떤 믿음과 결과에 대한 천망..하늘의 그물이 있다하니.

이 도덕경이 씌여진 기원전의 세계와 기원후 여러 국가들에게 읽혀지던 시대와 배경을 생각하면.

군주를 가르키는 방법이 되고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으로도 읽혀지더라.

지금의 세대에서 읽다보면 정치와 맞닿아 있는 부분들도 있다

최근에 중고 서점을 가서 산책중에

어린시절 표지가 닳아서 없어질 정도로 오래동안 보고 메모하고 지금도 최고의 책으로 꼽는 한권이 있다

그책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 엮은 책인데.

아버지가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과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마음을 담았던 내용임에도

성장을 돕는 어떤 용기와 동기부여를 주는 큰 사랑이 담겨 있었다.

한자로 쓰인 문장과 발음을 포함하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문장을 한글로 해석한 부분들만 인용구로 남겨 보았다.

번역이 옮긴 작가들마다 다르겠지만.

이 노자 도덕경이 함의 하는 내용은 하나의 격언이다.

삶에 어느 시기에 마주칠때 하나의 실마리가 될수 있고

생각을 좀 더 심원하게 만드는 통찰을 생각을 연결시키는 읽기와 생각을 남기는

책이자 사상과 철학이다.

한 권의 책을 여러번 자주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해마다 다시 읽게 되면 조금 다르게 이해가 되는 부분을 어렴풋이 알것 같다.

요즘 읽으면서 느낀것은 내 자신의 생각이 마음이 좀 더 확장되어가는 마음이였다랄까.

생각을 바꾸는 그런 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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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론의 법칙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널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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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를 좋아했다.

매튜맥허너히의 금발 백인의 남자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줬고

그가 보여주는 위기탈출의 기지도 좋아했다.

 

넷플릭스로 동명의 시리즈가 나왔을때에도 

괜찮은 작품의 드라마 버전으로만 알고 있었다가.

원작자인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에서 작품상 주인공인 마이크할러(미키할러)로서

등장인물의 시리즈를 전개하는 장편소설로 이번이. 아마도 3번째 작품으로 보이는데

책을 읽고 난후 리뷰에 도움이 될까 싶어 넷플릭스 드라마를 좀 빠르게 리뷰했는데

변론의 법칙에서 보여준 여러 기질이 그안에 담겨있더라.

 

중고서점에서 마이클코넬리의  미키할러의 전작을 같이 샀다.

변론의 법칙에서 보여주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읽혀지지 않는 감정선과 명대사들이

인간과 마주하는 현실의 삶에서 아주 유용한 경구로 들리는 무언가를 던지기에. 

더 읽고 싶게 하였다.

 

변호사로서 변론으로 법정에서 다투는 방식을 어떻게 준비하고 이야기 할지.

작가 마이클 코넬리의 탐구와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들이 있다.

그건 마주하고 대화할때 어떤 경험이 되어주는 이야기로 읽혀졌다.

 

나는 나의 결백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결백은 나만이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임을 그리고 결백이 부당함에 대한 완벽한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결백은 그 어느 것도 보장해주지 못했다. 구름이 저절로 걷히고 신성한 개입의 빛이 나를 비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혼자였다.

 

결백은 법률용어가 아니다. 법정은 결백의 판결을 내리는 곳이 아니다. 배심원단의 평결이 결백을 증명해주지도 않는다. 사법부는 유무죄만 판단해줄 수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결백의 법칙은 성문화된 규정이 아니다.

 

자신의 무죄를 밝혀나가는 법정 스릴러로 560페이지 정도분량의 아야기를 담는 내내

어느하나 소홀히 아쉬운 구석이 없었다. 긴장감 있었고 

결말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바라보는 가운데.

마지막 엔딩은 미드 엑스파일이 엔딩과 같은 느낌을 얻었다.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거대한 문제에 조각으로서 있던 하나의 문제로서

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은문제를 소홀히 하게 되는 어떤 거대한 힘을 조금 들여다본 느낌이랄까.

 

주인공이 너무 매력적이였던 영화였기에. 그 주인공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생각해보면.

그가 경험한 것들에서 원칙과 규칙을 갖고 행동했기에 보여줄수 있는 방어과 공격을 통해

그가 매력적인 캐릭터임을 더 알게된 듯하다.

 

작품에서 찾은 명지문들이 많다. 조금씩 기회가 될때마다 풀어 내고 싶은

그리고 내안에 담고 싶은.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소설작품이 동기부여가 될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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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항준 감독이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한말이 인상적이였다

 자신과 자신의 와이프 김은희. 그리고 매니저를 자처한 방송인 송은이를 두고 돈을 많이 갖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일을 오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한 사람들을 보았다.


일을 좋아하고 오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갖는 마인드를 읽다보니

그들이 왜 현재의 삶이 성공으로 읽히는지 알수 있었다.


꾸준히 로또를 사고 스포츠 경기에 베팅을 하면서

이러한 삶이 내가 원한 삶은 아닌데

지금의 불확신을 견디려는데 당장의 기회를 얻고 싶어하는데

돈이 없음에도 돈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는 나도 있다.


일할 자격을 묻는데. 좋아하고 오래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는것으로 대변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일이 되고 그것이 삶에 보상으로 갖춰지는 사회가 되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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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공부하는 파이썬 - 1:1 과외하듯 배우는 프로그래밍 자습서, 개정판 혼자 공부하는 시리즈
윤인성 지음 / 한빛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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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C. C#. JAVA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자료구조를 배웠지만. 그것은 과제이자 해내야 하는 커리큐럼이였다.

물론 재미있는 과제를 만들어 가는 재미는 있지만.

특히 오래전 배웠던 것중에 프로그래밍으로 연산을 하는 방법을 통해.

스타크래프트의 광물을 캐는것과 함께

진지를 구축하는 숫자의 연산과 도출을 하는 과정인데.

너무나도 지난한 방법을 그당시에도 비주얼 스튜디오를 가지고 

했었는데. 


파이썬 파이썬..서점을 가면 이 새로운 언어는 무얼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감히 대학시절에만 하고 10년 넘게 만지지 않았던 프로그래밍을 건드릴 엄두를 못내었다


다만 출판사 한빛미디어 홈페이지와 이메일 홍보에서 본것이 나에게 

대단히 작은 과제이자 도전이고 안되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시도했다.

혼자공부하는 프로그래밍 시리즈중에서..파이썬을 하고 싶다는 학습단.리뷰 신청서를 제출하고

잊고 있었는데 학습단 선정이 되어버린것이 나의 작은 시도이자 시발점이였다.


선정되고 개인적으로 구매해서 그냥 파이썬이 뭔지 만져보자는 마음이

컸기에 시도하고 시작할수 있었다.

겁을 먹었던 과거보다. 도중에 그만 두더라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그냥 6주의 커리큘럼 과정에 기본과제와 선택과제를 가지고.

프로그래밍을 실행하고 싶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6주의 과정을 마쳤다.

책과. 저자의 직강이 있는 유튜브를 보고.

한주한주의 커리큘럼 과제를 마감일에 간신히 맞춰 페이스북 스터디 그룹에 업로드 해오다 보니

어느새 모든 과제를 마쳤다. 


절대적인 이론적인 지식은 빈약한 상태이나.

프로그래밍을 실행하는 방법을 직접 만져보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이전에 잘 몰랐거나 관심사 밖에 있던 프로그래밍이

자신의 관심과 새로운 시도가 가지는 마음가짐.

그리고 정말 쉬운 파이썬이라는 도구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실행하면서

이렇게 한다면.. 프로그래밍이라는 걸 할수 있겠구나 하는 자심감을 얻었다.

지금은 그저 책에 나온 예제와 비주얼 스튜디오 파이썬이 알려주는 

간단한 작업만 시도한 상태이기에.


자신이 창작자가 되어 만들어가는 과정까지는 지난하겠지만.

무언가 자신과 자심감을 얻은 배움의 과정이였다.


1주차 https://blog.naver.com/realist100/222806728095

2주차 https://blog.naver.com/realist100/222816295614

3주차 https://blog.naver.com/realist100/222830277465

4주차 https://blog.naver.com/realist100/222835761897

5주차 https://blog.naver.com/realist100/222848541209

6주차 https://blog.naver.com/realist100/222854547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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