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마음>을 리뷰해주세요.
느림보 마음 - 시인 문태준 첫 산문집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문태준 시인이 불교와 관련이 있는 직업이라는 걸 의식한 까닭일까, 책을 읽으면서 어느 사찰의 입구에서 들리는 불경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상 속의 목소리는 글을 한 문장 한 문장 읽어주면서 어지럽고 복잡한 내 마음을 다스려준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잠시 모든 일을 멈추고 천천히 느리게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서정 시인, 시인의 시 같은 문장이 그런 마음을 품게 했을 것이다.  

세월의 손때 묻은 주름은 항상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늘 사랑표현을 위해 예비하고 있는 손, 일의 즐거움을 선택하는 때가 가을임을 예찬하는 시인의 글은 오래 전 교과서에서 보았던 수필들처럼 아름답다. 또 글 곳곳에 나오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강아지 대신 거북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속에 그가 말하는 거북이의 침묵과 느림의 행복은 강아지를 선택했을 때는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또 빛바랜 사진 속 엄마의 30대를 보며 솔직한 삶의 한 단면에 행복해하기도 한다. 아들과 아버지와 할아버지, 3대가 공중목욕탕에 가서 나누는 덧정과 편지를 자주 보냈던 연애시절과 달리 아이 둘 낳고 살다보니 무심해진 아내의 투정에 그 밤 장문의 편지를 쓰는 시인의 마음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이렇듯 길지 않은 짧은 글에 담아내는 아름다운 글들, 뭐든지 급한 마음에 빨리빨리를 외치는 독자에게 느리게 사는 삶의 미덕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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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그림 - 그림 읽어주는 남자 레스까페의 다정다감한 그림이야기
선동기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림을 보는 것은 좋아한다. 어떤 화가가 무엇때문에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지만 그냥, 그냥 좋다. 그런 탓에 너무 깊이 들어간 해설이 담긴 그림책들엔 당연하다는 듯이 이해가 안 되는 편이고, 화가들의 심중을 캐낼 듯이 분석하는 게 아니라 그림을 보며 자신의 마음이 들어간 해설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이 간다.  

이 책을 처음 본 순간, 제목에서부터 살짝 끌렸다. 『처음 만나는 그림』이라니. 이건 분명 유명하거나 이름있는 해설가들이 아닌 살짝 풋내(!)가 나는 분의 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블로그에서 그림을 연재하던, 그림엔 완전 초짜인 분의 마음이 들어간 책이었다. 허나 제목은 끌렸지만 사실 구매를 해야할지는 망설였다. 사고 싶은 그림책(!)이 한 두권이 아닌 탓에 검증이 안 된 책을 무조건 구매하기엔 책값이 장난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맘을 바꾼 것은 그림과 짧은 글때문이었다. 

다른 그림책에 비해 이 책엔 엄청난 수의(두 쪽마다 한 장씩 들어 있다.) 그림이 들어 있다. 더구나 다른 책에서도 늘 보던 그런 그림들이 아니다. 몹시 생소한 그림들이다. 내가 아는 화가라곤 <존 윌리엄 고드워드>뿐이다.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정말! 간단한, 다른 책들에 나오는 해설들에 비하면 글이라고도 할 수 없는 짧은 글이 실려 있다. 그저 저자는 자신이 보는 그림에 대한 지극히 기본적인 지식외에 다른 것은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그림을 보며 오롯이 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거다. 저자의 참견(!)이 들어가 있지 않은 내 맘대로의 해설을 이 책을 보며 느낄 수 있는 거다.  

자고로 그림이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림을 이해하는 데는 자신의 현재 마음이 들어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해설이 좋은 것이다.  또한 그래서 이 책에 공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며 생소한 그림들을 보며 그 느낌을 받아본다.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는 그림이 있는가하면 처음 보는 순간 찌릿한 느낌을 주는 그림들도 있다. 처음 만나는 그림, 앞으로 오랫동안 이 그림들을 보며 지낼 생각을 하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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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수집가>를 리뷰해주세요
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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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음 

그동안 너무 호러물만 좋아하고 읽어온 탓인지 가벼운 공포에는 꿈쩍도 안한다. 그럼에도 일본의 기담이야기는 나름 재미가 있어 기대를 했었는데 기담이 기담이 아닌 이야기로 끝나버려 조금 싱거웠다. 사실 히사카가 '초'를 치지 않았으면 충분히 기담이 되고도 남을 이야기였는데 '그게 말이야~'하고 설명을 해주는 히사카의 친절때문에 완전 김이 새버렸다. 아니 어쩌면 그게 매력일 수도 있는 책인데 난 좀 그랬다.  

모두 일곱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은 시작의 형식이 똑같다. 기담을 수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 스트로베리힐(Strawberry hill)을 찾아 기담을 수집한다는 에비스를 만나 자신의 기이한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에비스는 공감한다. 자신의 콜렉션에 넣을 만하다고 말도 한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서 있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는 히사카가 그 이야기의 헛점을 지적한다. 그건 기담이 아니라 트릭이라거나 둔해서 그렇다거나 거짓말에 속아넘어간 것이라고 말한다. 기담이 추리로 변하는 순간이다. 허탈해하는 이야기 당사자. 기담이라고 들려주는 이야기보다는 히사카가 풀어내는 사건의 추리적 결과가 사실은 좀더 섬뜩한 느낌을 준다. 후배, 내 친구의 형, 내 아내의 과거 등등 기이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현실이었으니까.  

이 책에서 '기담'이라는 것에 공감이 간 부분은 마지막 이야기다. 일본에서는 알아주는 신이라는 에비스의 존재나 여섯 편의 이야기들이 모두 연결되어 진짜 기이한 경험을 하는 듯한 마지막 이야기는 소제목처럼 모든 것이 기담을 위한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앞부분 동일한 이야기 잘라내고 호시 신이치처럼 짧지만 뭔가 머리를 띵! 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만들면 훨씬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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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시집 80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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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 도착했다.
조급한 마음에 하던 일 멈추고 시집보다 큰 상자를 찢어버릴듯이 뜯었다.
첫 장에 이런 글이 실렸다. 

"이 시집을 어느 비린 저녁 찾아온 그리움에게 바친다." 

또 한 장을 넘기니 이번엔 이런 글이다. 

自序 

인연에 대해 생각하다가
인연과 세월을 떠돌다가
인연과 세월과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까지 왔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여전히 만져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스침이 많아 상처가 된 내력들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어찌 시뿐이겠는가.
 

그다음은 넘겨보지 않아도 좋겠다. 이미 내 마음은 이 시집을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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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가족>을 리뷰해주세요.
2인조 가족 카르페디엠 17
샤일라 오흐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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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나 소설 속에서 내가 제일 예뻐하는 아이는 바로 세상 구질구질 짜증투성이에 열 받는 일 가득해도 매사에 긍정적인 아이. 왕따 당하고 가진 것 없어 속 뒤집어져도 그걸 무기 삼아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아이. 바로 야나와 같은 아이들이다. 

야나는 '내가 인생이야!'라며 궤변을 늘어 놓는 할아버지와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임대주택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 접착제 종합세트 같은 신발을 신고 할아버지의 셔츠에 짧디 짧은(야나가 커버렸기 때문에 작아져버린!) 치마, 결정적으로 '남성용 외투'를 걸치고 다니지만 다른 아이들이 비웃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똑똑한 야나, 세계를 둘로 나누어버리고 야나가 속한 세계가 아닌 곳에는 들어갈 생각도 안한다.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곳에는 억지로 갈 생각도 안하니 아니꼬울 일도 없다. 더구나 수학도 잘하고 체스도 잘해 같은 반 아이들도 감히 야나를 비웃지 못한다. 또 부모가 계시는 제대로 된 가정이 아닌, 잘해주지도, 넉넉하게 보살펴 주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밑에서  삐뚤어지지 않고 제 몫을 찾아가며  나름의 따뜻한 애정을 받으며 산다. 할아버지의 작은 실수로 양로원으로 기숙사로 헤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샤일라 오흐의 『2인조 가족』은 자칫 꿀꿀하고 초라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끌어간다. 가진 것 없지만 세상에 긍정적이고 씩씩한 야나와 궤변을 늘어 놓는 길거리 박사 할아버지와의 생활을 통해 과연 진정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과연 이런 가족이 존재하기나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므로 너무 비현실적이야 하는 생각들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야나처럼 산다고 해서 세상의 가난한 모든 가족들이 꿀꿀하게 살 것이라는 법은 없다. 다만 우리의 얄팍한 상상들이 야나와 할아버지를 궁지로 밀어넣을 뿐이다. 

시니컬한 자유주의자 할아버지와 비극적인 순간에도 웃을 줄 아는 야나의 삶은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사는 자유로운 삶일지도 모른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같은 캔디의 삶이 아닌 어느 누가 나를 초라하게 만들어도 나는 너를 무시할 거야! 같은 대담한 성격의 야나, 솔직한 삶의 태도. 그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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