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을 읽다 보니 이런 글이 나온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다. 그러나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하나로 모아진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  맞아,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모두 성공할 수 있을까? 그건 사람의 성격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공의 기준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수많은 명사들이 말하는 그 기준이, 할수록 즐거운 일, 일 하는 행위가 행복하다, 그 자체라면 진심으로 나는 공감한다. 
 
하지만 성공의 기준이 그들처럼 이름을 알리거나 돈을 많이 버는 일이라면, 그건 아니라고 하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사람,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돈벌이는 시원찮은, 그런 사람들 주변에 많으니까.
 
언젠가 대학에 다니는 한 친구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들었다. 대학을 졸업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당연한 것이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가지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으나, 우리나라 몇 프로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말하고 보니 그 친구에겐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겠다, 싶었다. 우리 때와 다르게 초등학교 때부터 어느 대학에 들어갈지 준비하던 세대였을 테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누구든지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때는 늦었다고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건 아무래도 나이와 상관이 없는 듯하다. 이십대나 삼십대나 나도 매번 그랬으니까..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근데 살다 보니(움, 나도 꽤 살만큼 산 사람으로서^^) 그건 아니었다. 세상 일에서 늦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보다 조금 부족하긴 하겠지만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단, 나이를 따지고, 연봉을 따지다보면 속상해지는 것은 있다. 또 살다 보니(아주 도 통한^^;) 돈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좋긴 하더라마는(-.-) 돈 많이 가졌다고 다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 다 알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직업을 일찌감치 찾아서 돈도 벌고 이름도 알리면 제일 바람직하고 성공적인 케이스겠지만. 
 
이 글을 적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책 한 권이 있는데 바로 김중혁 작가의 책이다. 《뭐라도 되겠지》, 이 책에서 김중혁 작가는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뀐다고 나까지 급해질 필요는 없다. 급한 건 세상만으로 충분하다. (…) 시간은 충분하다. 우리의 목표가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저 성실하게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행복해지면 된다. 주름을 만들듯 천천히 내 속도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좋아하는 직업을 가지는 일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 아닌가 싶다.   

대학 졸업을 앞둔 이들은, 그런 마음 편한 소리가 어디 있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데,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니… 하지만 난 전적으로 김중혁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성실하고 꾸준할 것. 그러다 보면 반드시 성공하게 되어 있다. 모든 일은 조급해서 망친다. 욕심 부리다가 끝장 난다. 그건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 연봉 많고 내세울 수 있는 직업. 그런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하기에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물론 어떻게 들으면 자조적이고 '케세라 세라' 혹은 '될 대로 대라'는 뜻처럼,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의 말로 들리겠지만, 그건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나 그런 것이고, 내게 들리는 저 말은 언젠가는 뭐라도 될 것이니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이든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꾸준하게 열심히 하라는 소리도 들린다. 나이? 난 그것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조급할 필요도 없다.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내 아는 분은 마흔이 다 되어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편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산다. 그 이전엔 전혀 다른 일을 하던 분이다. 난 그 분이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속으론 좀 걱정을 했지만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올인하는 일은 자주 오는 일이 아닐 뿐더러, 용기 내어 하기도 쉽지 않다. 더구나 잘 나가는 직장, 노후가 보장된 그런 직장을 때려치우고 전혀 다른 일, 당연히 겁나고 걱정된다. 하지만 하다 보면 다 살아가게 되어 있다. 얼만큼의 돈을 가져오느냐의 차이일 뿐이지만 내가 원하는 일을 함에 있어 받는 행복의 양과 비교하자면 그 이전의 것하고 엄청난 차이가 날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몇 번의 다른 일을 거쳐야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은 그냥 취미로 시작했어도 그 일을 차근차근, 천천히,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가 취미였던 그 일이야말로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삶이 조금 지겨우면 작은 취미,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조금씩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뭐라도 될 것이니까. 움움, 이건 경험자로서의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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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 텔레비젼에서 가야산 소리길에 관한 내용을 봤다. 눈이 절로 돌아갔다. 안 그래도 요즘 혼자서 돌아다니는데 재미를 붙였는데 소리길에 대한 정보는 그야말로 그 재미에 불을 붙였다. 가을이 가기 전에 꼭 가봐야지. 혼자 다짐을 했다나. 그리고 신간 검색을 하다가 만나게 된 책, 바로 이것이었어!!! 소릴 지르고 말았다. 책이 나올 거라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듣긴 했다. 제목만 듣고도 사실 설레이긴 했는데, 막상 목차를 보고 나니 이 책은 반드시 사서 품에 안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사계절, 전라도》이다. 

미황사를 다녀온 후 여행에 재미가 붙었다. 가급적이면 일주일마다 가까운 곳으로 혼자 떠나보자 했는데 사실 무작정 떠나는 것에는 아직 익숙하질 못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정보를 알아보고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았다. 한데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전라도 곳곳을 보여준다. 이건 뭐 책 한 권만 손에 들면 전라도를 마스터하는 셈?!

광양의 봄, 매화마을은 기본이고 동백꽃 아름다운 선운사(선운사의 꽃무릇도 좋지). 여름, 백련지의 연꽃과 초록 바람부는 소쇄원(소쇄원 그늘에 앉아 물소리 들으며 책을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백양사와 내장사의 단풍, 아름다운 꽃무릇을 볼 수 있는 용천사와 불갑사는 사찰여행 리스트에 꼭 넣어둬야 할 일. 눈 덮힌 전나무 숲길은 또 어떨까. 이번에 개암사를 다녀오며 내소사를 못 간 게 조금 아쉬웠는데 겨울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나저나 이 책 읽고 나서 일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싶어지면 어쩌지?-.-;;; 

 

그동안 마음이 어수선하여 여행 관련 책을 한동안 읽지 않았는데 내 맘을 사로잡은 예쁜 여행책이 나왔다. 그 책을 보자마자 어수선하던 내 마음이 싹, 정리가 되었다...면 좀 거짓말이지만^^;; 핑크빛 표지와 일러스트가 어찌나 예쁜지. 그리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한 달 살아보기, 그곳이 바로 또 베니스라는 점이 나를 유혹했다.  

베니스, 그 말보다 베네치아라고 하면 좀 더 고풍스러워보이는데 더욱 매력적인 것은 그곳이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 도시 하나가 사라진다는데 매력적이라고 하니 좀 나쁜 생각 같지만 그래서 어쩌면 더 그곳이 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캐나다 알버타 주 관광청의 홍보직을 맡아 줄곧 타인에게 ‘여행 권하는 일’만 했"단다. 그는 "어느 날 잠시 일을 내려놓고 인생의 다음 장을 고민하기로" 하고 "이번엔 본인이 여행의 주체가 되어 한 달 동안 한 도시에 머물다 오기로 결심"해서 정한 곳이 베니스였단다. 부러워라. 

나도 그러고 싶다. 베니스가 아니라 어느 곳이라도, 한 달 동안 머물면서 그곳을 온몸으로 다 느껴보고 싶은 로망을 가지고 있다. 조만간 그런 기회가 나에게도 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지만 아직은 해보지 못하고 있으니 부러울 수밖에. 한데 그녀는 낭만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한 달을 보냈다고 하니 더더 부럽지 않을 수 없다는.  

또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프랑스의 시인 알프레드 드 뮈세가 연인인 조르주 상드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곳이 바로 베니스라고 했다. 그곳에서 둘의 사랑은 지속되지 못하고 말았다지만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아, 어쨌든 한동안 이 예쁜 《베니스 한 달 살기》를 읽으면서 베니스로의 꿈이나 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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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painter 2011-10-1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담아갈게요 ^^ http://blog.naver.com/dramapainter
 

뉴스 검색을 하다가 탑에 떠 있는 글을 읽었다. 30대의 여자가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단다. 우울증에 걸리면 스스로 빠져 나오지 않으면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무심히 클릭을 했는데,  그녀는, 20여년 전 큰 언니가 자살한 것을 시작으로 언니 세 명이 연이어 자살로 생을 마감해 심한 우울증을 앓아왔단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책이 있었다. 《처녀들, 자살하다》 

2007년 출간한 이 책은 《미들 섹스》로 2003년 퓰리처 상을 받은 미국 작가 제프리 유제니다스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1993년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 도서관협회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단다. 또 동명의 이름으로 1999년 소피아 코풀라(대부의 감독 프란시스 코풀라의 딸이란다)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근데, 이 소설이 저 사건과 무슨 관계냐고?  

《처녀들, 자살하다》라는 꽤나 선정적인(!) 제목처럼 한 집안의 자매들이 줄줄이 자살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그 집안의 막내딸 서실리아가 목욕을 하다가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면서 시작한다. 그 시도는 그 집 자매들이 목욕하는 광경을 훔쳐보러 왔던 소년에게 발견되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면서 실패로 끝나는 듯 했으나 서실리아는 다시 한 번 자기 방 창문에서 몸을 던져 결국 세상을 떠난다.  

서실리아는 손목을 그은 후 응급처치를 받던 병원에서 아몬슨 박사가 "아가, 여기서 뭐 하는 게냐? 너는 아직 사는 게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알 만한 나이도 아니잖니."라고 하는 말에 이런 말을 한다. "분명한 건요. 선생님은 열세 살짜리 소녀가 돼 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라고. 이 장면을 읽고 나면 도대체 왜, 이제 겨우 열세 살인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지 궁금해지고 만다. 하지만 아무도 무엇때문이라고 단정하지 못한다. 그저 나름대로 추측할 뿐이다.  

다시 이야기는 처녀들이 자살 한지 20여 년이 지난 후다. 그 동네에 살았던 소년들이 이제는 중년이 되었고 그때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관찰자의 입장으로 그녀들이 왜! 자살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때 겨우 10대의 어린 소년들이었고 제한적인 정보만을 습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당시 어른들의 속단에 비해 좀 더 진정성에 가까운 소년들의 생각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느껴질 뿐이다. 

아무튼, 소설 속 자매들이 왜 자살을 했는지, 그녀들도 우울증이었는지는 직접 읽어보길 바라며, 우울증에 관해서는 늘 김진규 작가가 생각나는데 《달을 먹다》를 펴내고 한 작가 인터뷰에서 그녀가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게 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울증은 벗어나기 힘들긴 하지만도 노력만 하면 빠져나올 수도 있는 것.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그걸 알고 노력하면 오늘 뉴스에서의 그런 일들은 안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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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2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녀들, 자살하다] - 요 책 심히 땡기는데요? 내일 도서관 가서 당장 빌려야겠어요. 쌓인 책이 산더미 같지만 뭐... 다다익선이지요 ㅎㅎ '책이 정말 좋아요'라는 소개글이 정말 마음에 드네요. 책 좋아하는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도 참, 좋아요.
지나가다 살짝 들렸다 갑니다 :)

readersu 2011-09-22 10:04   좋아요 0 | URL
저 아는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아니 책이 얼마나 좋으면 프로필 소개에 책이 좋다고 두 번씩이나 써놓느냐고^^;;; 아마도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두 번이 아니라 그 배배배는 더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 겁니다.

방문도, 댓글도 감사합니다^^
 

-
시를 잘 모르지만 좋아하는 지라, 맘에 드는 시집이 나타나면 잘 사서 읽는 편인데 그동안 고전 한시는 읽어볼 생각을 안 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매창시집』을 읽게 되고 또 지난 번에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를 읽으며 만난 이규보의 시들에 반해 시집을 샀다. 이규보에 관해선 학교 다닐 때 배운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어쨌든 그의 시를 읽게 된 것이 중요. 내가 구입한 책은『욕심을 잊으면 새들의 친구가 되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이규보는, 

스물네 살 되던 해에 부친상을 당하여 개성 북쪽 근방의 천마산(天磨山)에 들어가 한동안 지내게 된다. 그는 내키는 대로 술을 마시고 자유분방하게 노니는 습성 탓에, 과거에 급제한 후에도 벼슬아치들에게 밉보여 이렇다 할 자리를 얻지 못하고 신산(辛酸)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처럼 불우한 처지에 아버지까지 잃게 된 그에게 천마산의 아름다운 자연은 큰 정신적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이규보는 천마산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서 느끼는 충만함, 마음의 평온에 대해 여러 차례 읊었다.
또한 그가 백운거사(白雲居士)라는 호를 스스로 지은 것도 이 무렵이다. 이 호는 무심히 천마산 산등성이의 구름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뭉게뭉게 피어나 한가롭게 떠다니고, 산에도 머물지 않고 하늘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비를 내려 메마른 초목을 살리며, 변함없이 순수한 빛깔을 지닌' 흰 구름이 좋아 이런 호를 붙이게 되었다고 「백운거사 어록」(白雲居士語錄)에서 말하고 있는데, 이 '흰 구름'이야말로 자유롭고 거침없는 상상력과 타자(他者)에 대한 꾸밈없는 연민을 지닌 이규보의 정신세계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당한 형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했다. 일흔넷이 되던 해 가을 '이제는 눈이 아파서 더는 시를 쓸 수 없다'고 고백하는 시를 남긴 후 며칠 뒤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평생을 시인으로 살았기에 남긴 시가 많단다. 또한 그 세월만큼 구현하는 작품 속 세계관은 다채롭다고. 

그의 시를 읽으며 내가 왜 이규보에게 반했나 했더니 그의 호처럼 여유로운 마음과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타자를 대할 때의 따듯한 심성과 호탕함 그리고 편역한 김하라 님의 말처럼 "진리를 드러내되 대상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이며, 갈등과 분란을 낳지 않으면서 진실을 길어낼 수 있는 것" 을 나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며 훌륭한 시인"이라고 일컫는 이규보에게 쏙 빠져든 것.  

감성적인 시들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할 만한 그의 시 몇 편을 올려보면,

이규보가 술자리에서 쓴 시라고 하는 「오늘이 가면」"내 평생에 슬픈 일은/오늘이 흘러 어제가 되는 것/어제가 모이면 곧 옛날이 되어/즐거웠던 오늘을 그리워하리/훗날 오늘을 잊지 않으려거든/오늘을 한껏 즐기자꾸나" 내 삶의 모토와 어찌나 비슷한지-.-;; 

그리고 그의 낙천적인 성격이 드러나 있는 「비 오는 날의 낮잠」도 참 좋다. 재미있다. "주룩주룩 낙숫물 소리/낮잠을 방해할 것도 같은데/어째서 빗소리 들릴 땐/유독 잠이 달콤한 걸까?/맑은 날엔 문 닫고 있으려 해도/나가고 싶은 생각 끊이지 않지/그러니 잠도 깊이 들기 어렵고/언뜻 잠이 들었다가 화들짝 깨지/그런데 지금은 장마철이라/길이 온통 물바다 됐네/아무리 친구를 찾아가려 한들/코앞도 천 리처럼 멀기만 한걸/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지 않고/뜰엔 발소리도 나지 않누나/그러니 잠을 잘 수가 있어/드렁드렁 천둥 치듯 코를 곤다네/이 맛을 말로 하긴 정말 어렵지/임금인들 어찌 쉽게 알겠나?/임금이 잠 못 자는 건 아니지만/아침마다 신하들과 회의가 있으니" 불행한 상황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찾으려는 노력. 이런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 시에 드러나 있다. 좋아할 수밖에 없음. 

뒤에 실린 산문 중에 「귀찮음 병」이라고 있는데 굉장히 위트 있고 재미있다. 대략 이런 내용. 

백운거사에게는 귀찮음 병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빨리 변해 가는데 귀찮음 병은 꼼짝 않고 머물러 있고, 이리 보잘것없는 몸인데도 귀찮음 병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네. 집 하나 있는데 풀이 우거져도 베기 귀찮고, 책 일 천 권이 있는데 좀이 슬도록 펴 보기도 귀찮고, 머리가 헝크러져도 빗기 귀찮고(…)남들과 웃고 노는 일도 귀찮고(…)걷기도 귀찮고(…)세상에 무슨 일이든 귀찮지 않은 게 없는데 이런 병을 무슨 수로 고칠꼬?"
손님은 아무 대답도 없이 물러가더니 이 귀찮음 병을 고칠 방법을 찾아 열흘 뒤에 다시 찾아왔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오래 못 보았더니 퍽 그립더구먼. 한번 보고 싶어 왔네."
그러나 거사는 귀찮음 병이 도져 만나기를 꺼렸다. 그러자 손님은 굳이 나오라 하여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좋은 술을 빚었는데 바야흐로 잘 익어 향기가 그득하다네(…)자네 아니면 누구랑 마시겠어? 게다가 우리 집에 시종드는 계집아이가 있는데 노래도 잘하고 생황도 잘 불고 아쟁도 잘 탄다네(…)자네를 대접하고 싶은데 같이 가기 싫어할까 봐 걱정일세(…)" 

그 말에 거사는 좋아라 옷을 떨치며 일어났단다. 그에 손님은 거사를 보고 처음엔 말하기도 귀찮아하더니 지금은 서둘러 말하고, 걷기도 귀찮아하더니 지금은 걸음도 빠르다면 핀잔을 준다. 그러면서 "사람의 품성을 도끼처럼 찍어 망가뜨리기로는 예쁜 여인을 따라갈 것도 없고, 창자를 썩게 하는 약이 바로 술이라"며 그것들에 망가지는 거사의 모습을 보는 것이 왠지 귀찮을 것 같고, 그러다보니 거사와 얘기하는 것도 귀찮아지고, 앉아있기도 귀찮아지는 걸 보니 거사에게 귀찮음 병이 옮은 것 같다고 비아냥거린다. 그러자 부끄러워 얼굴이 벌개진 거사가 이마에 땀을 흘리며 사과하였단다. "(…)내가 이제 마음을 바꿔 어질고 의로운 일에 힘써서, 귀찮다는 생각은 버리고 부지런히 살아 보려는데 자네는 어떤가? 나를 비웃지 말고 조금 기다려 보게나" 훗, 그러니 어쨌든 술이나 마시러 가자는 말?! 아무튼 아무리 귀찮아도 남자들은 술과 여자, 흥겨운 놀이엔 약한 법인 듯-.-;; 

그리고 마지막, 이규보가 어째서 그토록 술을 사랑하였는지 나오는 글, 

"술병아, 술병아! 너에게 술 두 말을 담는다. 기울여 마시고 또 담아 두니 언제인들 취하지 못하겠는가. 너는 나의 몸을 우뚝 하게 하고 나의 마음을 확 트이게 하는구나. 때로는 춤을 추고 때로는 노래하니 모두 네가 시킨 것이다. 내가 너를 따라다니는 것은 다만 네가 바닥나지 않기 때문이다." 

낙천적 성격, 귀찮음 병, 오늘을 즐겁게 그리고 요즘 부쩍 술 많이 마시는 내가, 이규보에게 빠진 이유 중 하나. 술! 아 멋져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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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에 김태정 시인이 돌아가셨단다. 오늘이 발인.  

작년 말에 암에 걸리고 해남에서 홀로 투병 생활하시다가...
아직 젊은데...그녀의 두 번째 시집 나오길 기다렸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지난 봄에 친구들과 섬 여행을 갈 때 친구가 들고 온 시집이었다. 
그 섬에도 동백나무가 많았는데
우연히 들고온 시집을 읽겠다고 펼친 친구가 이 시집에도 동백나무 이야기가 있다며 들려주었고
우린 동백나무 아래에서 설정샷을 찍고, 시를 읽으며, 이 시집 정말 좋다며, 좋다며,...  

집으로 와서 바로 주문을 해서 읽었다.
문단 데뷔 13년 만에 겨우 낸 첫 시집이라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은
그렇게 내 앞으로 왔고 시를 잘 모르지만 시를 좋아하는 내게 이 시집은 정말 멋졌다. 
첫 시집 나온지 좀 되었으니 어디에선가 두 번째 시집을 짓고 있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
어느 생엔가 문득 세상에 홀로 던져져
월광을 듣는 밤은
미칠 수 있어서
미칠 수 있어서 아름답네
오랜만에 상처가 나를 깨우니
나는 다시 세상 속에서 살고 싶어라
(...)
_월광(月光), 월광(月狂) 

술을 마시며 베토벤의 월광을 듣다가 이 시가 생각났고, 

살면서 때로는 너도/부러 들키고픈 상처가 있었을까/이 세상 어디쯤/나를 세우기가 그리도 버거웠었네/때로는 사는 일로 눈시울도 붉히고/사는 것 내 맘 같지 않아 비틀거리다/위태로운 마음으로 허방을 짚으면/휘이청 저 산 위에 기울어진 불빛들/빗장 속의 안부를 묻고 싶었네/모두들 어디에 기대어 사는지/너는 또 무엇으로 세상을 견디는지/너에게 이르는 길은/너를 넘어가는 것보다 더욱 숨이 찼었네/상처도 삭으면 향기를 이루리라/노을에 지친 어깨는 또 그렇게 일러주지만/문득, 대궁밥만큼 비어 있는 산그림자
_북한산 

문득 산이 그리워지면 _북한산이란 시를 읽었다.  
어디 그뿐인가, 무언가에 화가 났을 때는 시인의 시를 빗대어 욕을 했다.
속이 시원했다. 

시가 안될 때/요렇게 한번 해보렷다/개새끼!/그래도 안될 때/죽어도 안될 때/쫌스럽게 하지 말고/
똑 요렇게/씹새끼!/설사가 나오지?/후련하지?//욕이라는 것은 그래서 좋은가/사람들은 그래서 사는가(…)
_시의 힘, 욕의 힘 

김태정 시인은 '민중서정시인'이다.
첫 시집내고 "시만 빼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며 해남 어느 시골마을로 내려갔단다.
그곳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TV도 없이 라디오를 벗 삼아 작은 마당에 야채를 가꾸며 살았다.
그런 그녀가 작년에 암 선고를 받았고, 병원에선 겨우 3개월의 기한을 주었단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그것은 어쩌면/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또 어쩌면/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어쩌면 나에겐/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가난한 연인들이/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_물푸레나무  

한동안 그녀의 시에 빠져 지냈다.
그리고 늦은 여름, 휴가를 가기 위해 고민을 하다가 그녀의 시집이 생각났다.
그래, 미황사.
봄에 읽었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의 시집 속 미황사가 생각났고,
동백나무가 떠올랐다.
그렇게 찾아갔던 미황사.
그녀의 시에 나오던 그대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새처럼 날아간 거라고/땅끝 바다 시린 파도가 잠시/가슴을 철썩이다 가버린 거라고……/스님의 목소리는 어쩐지/발밑에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자꾸만/자꾸만 서걱이는 것이었는데//차마 다 터뜨리지 못한 울음처럼/늙은 달이 온몸을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그의 필생의 호흡이 빛이 되어/대웅전 주춧돌이 환해지는 밤/오리, 다람쥐가 돌 속에서 합장하고/게와 물고기가 땅끝 파도를 부르는/생의 한때가 잠시 슬픈 듯 즐거웠습니다/열반을 기다리는 달이여/그의 필생의 울음이 빛이 되어/미황사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홀로 충만했습니다 
_미황사(美黃寺) 

그리고 돌아와 내내
미황사와 김태정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시들을 생각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의 시,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한 생애가 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새처럼 날아간'
그녀의 길지 않은 생을 생각하며. 

십년 묵이 낡은 책장을 열다가 그만/목구멍이 싸아하니 아파왔네/아침이슬 1, 어머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때문이 아니라/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수염이 텁수룩한 도이치 사내를 펼쳐 보더거/그만 재채기를 했네/자본론, 실천론, 클라라 쩨트킨,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묘지/때문이 아니라/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던/네루다 시집 속엔/오래 삭힌 멍처럼 빛바랜 쑥이파리 한점/매캐한 이 콧물과 재채기는/먼지 때문에/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다는 그 말/때문이 아니라/다만 먼지 때문에//바람이 꽃가루 날려보내듯/먼지가 울컥, 눈물을 불러일으켰나//청소할 때면 으레 나오던 재채기도/재채기 뒤에 오는 피로도/피로 뒤에 오는 무기력도/무기력함으로 인한 단절과 해체도/그 쓸쓸함도, 그 황폐함도 다만/먼지 때문이라고 해두자/먼지보다 소심한 눈물 때문이라고 해두자//그 사소한 콧물과 재채기 뒤에/저토록 수상한 배후가 있었다니//꽃도 십자가도 없는/해묵은 먼지의 무덤을 열어보다가/그만 눈물이 나왔네/최루가스 마신 듯 매캐한 눈물이/먼지 때문에, 다만 먼지 때문에
_눈물의 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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