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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가 좋아
오로어 제쎄 지음, 바바라 코르투에스 그림, 양승현 옮김 / 아이앤북(I&BOOK)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나에게도 동화 같은 일이 생겼다. 집 청소를 하다가 9년 전 잃어버린 인형을 찾았다. 키 10㎝, 거꾸로 쓴 하얀 야구모자와 두 갈래로 구불구불 드리운 머리카락, 하트가 그려진 분홍 티셔츠, 회색 스트라이프 스커트, 하얀 장화를 신은 듯 둥글고 커다란 발을 가진, 꼬마 코커스패니얼 여자 강아지 인형. 나는 먼지에 전 인형을 깨끗이 목욕시켜 말린 뒤 교통카드를 매달았다. 차멀미 불치병자인 나는 강아지 인형을 손에 꼬옥 쥔 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성경 속의 한 여인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다가 마침내 찾아내자 함께 기뻐하자며 이웃을 불렀던 여인. 까짓 유치하게 인형은 뭐고 동전은 뭐야? 라며 비웃을지언정 모든 물건에는 사람처럼 ‘이야기’와 ‘역사’가 있다.
책 속의 어린 아이에게도 둘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존재, 토끼 인형 두두(두두는 프랑스어로 아이가 늘 가지고 다니며 아끼는 담요나 인형 같은 물건을 말함)가 있다. 물론 아이에겐 다른 인형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두두처럼 아이와 쌓은 이야기와 냄새, 자국과 자취가 없다. 있다 해도 세탁기에 돌리면 말끔히 사라지는 콧물 자국 정도. 어? 그런데 엄마와 함께 동네 병원에 다녀와 보니 두두가 없네? 소아과 진료실에 두고 왔어. 내가 나올 때에 병원 문 닫는 시간이라고 했는데 어떡해? 두두는 나 없으면 안 되는데! 심술쟁이 아이가 두두를 꼬집고 못살게 굴거나 자기 집으로 데려가 버리면 어떡하지? 옷장이랑 서랍에서 유령들이 나와서 두두를 놀래켜서 엉엉 울게 하면 어떡하지? 어른들이 두두를 버려서 쓰레기차가 무시무시한 쇠 이빨로 우두둑 씹어먹을지도 몰라. 안 돼!
늦은 저녁, 아이는 아무도 몰래 두두를 찾으러 집을 나서려 한다. 그런데 한 발자국을 떼기도 전에 두려움이 발목을 콱 잡는다. ‘얘야, 어딜 가려고 그래? 이 밤중에 길을 잃어버리거나 심술 사나운 괴물이 너를 캄캄한 숲 속으로 끌고 가면 엄마 아빠를 다시는 못 만날 거야. 두두 같은 건 잊어버려. 더 예쁘고 좋은 인형들이 많잖아.’ 아이는 고개를 젓는다. ‘아냐, 두두랑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데! 나만 아는 두두 냄새가 있어! 두두만 아는 내 비밀도 있어!’ 그때 울리는 초인종 소리. 의사 선생님이 퇴근길에 두두를 데려왔다.
‘두두!’ 아이는 두두를 꼭 껴안고 잠이 든다. 아이의 눈가에 남은 눈물이 두두의 얼굴에 젖어든다. 그들만의 이야기 한 편이 또 새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정’이란 이야기이며 역사이다. 이야기는 굴곡이 많아야 흥미롭고 가치가 있다. 하루도 마음 편할 날 없는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때로는 징글징글하다는 내 가족, 친구들, 모두 내 역사의 주요 등장인물들이다. 있을 때 잘하시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