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을 읽고 팬이 된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신작이다. 과격한 잔혹함과 섬뜩한 엽기성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하는 작풍이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풍을 갖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취향에 잘 맞아서 즐겁게 읽고 있다. 게다가 표지도 무서우면서 아름다운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사용해 기뻣다. 《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의 국내 표지가 원서보다 못해서 아쉬웠던 기억을 날려버릴 멋진 표지다. 이번에 출간된 《남의 일》 역시 섬뜩한 ‘묻지마 살인’에 엽기적인 가학이 이어지고, 쇠톱으로 자신의 다리를 썰고 회칼로 남편의 육포를 뜨는, 팔이 뽑히고 머리가 날아가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단지 잔학한 묘사만으로 이루어져있다면 누구나 쓸수 있고 굳이 읽을 가치가 없을것이다. 이 작품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스플래터에 흔히 등장하는 좀비나 정신이상자, 하다못해 공포물의 대명사인 유령이나 괴물도 아닌 우리의 주변에서 볼수 있을만한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무섭고 남다른 감상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남의 일》에 수록된 작품들을 쓰면서 ‘공포란 과연 어떤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봤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으로 그가 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는 ‘정말 무섭다고 느꼈던 사건들은 대부분 신문 기사를 통해 접했던 것들이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나도 매일 뉴스에서 접하는 살인사건들이 어느 영화나 소설보다 무섭다. 그것이 실제 내 주위에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심각하게 공포를 느끼지는 않지만. 이 작품에는 인간을 향한 일말의 따뜻함도 없다. 독자는 작가가 묘사하는 온갖 불합리한 폭력 앞에서 무기력과 절망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왜 그렇게 잔혹해야 하는가? 그 궁극의 잔혹함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가끔 매스미디어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마음을 쏟고 온정을 베푸는 이들의 미담을 접한다. 그로 인해 훈훈함을 느끼며 ‘이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지극히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타인의 비극에 너무나 무관심해져 가고 있다. 심지어는 타인의 비극을 보며 자신의 마음에 뚫린 허무의 공동을 메우려 하기도 한다. 히라야마 유메아키는 그런 현대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남의 비극에 대해 모두가 ‘남의 일’이라고 외면하는 순간,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는 것이라고. 《남의 일》은 타인의 비극에 무관심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작가는 일말의 따뜻함조차 없는 이 작품집을 통해 오히려 ‘진정한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성 회복을 설파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어째서 기피해야 마땅할 공포를 일부러 찾아 그것을 즐기려 하는 것일까? 나는 책 속에서 죽을 고생을 하거나 죽어버리는 주인공들을 보며 극한의 무서움을 대리 체험하고, 그 대단원을 보면서 ‘나는 괜찮아’라는 상대적 안도감을 느끼는 즐거움으로 읽는다. 하지만 마냥 즐거워할 수만도 없는 것은 작품속에서 죽어간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웃기면서도 웃을수 없는, 무서우면서도 소리지를수 없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