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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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근심하던 부부 사이에 뒤늦게 아이가 생겼다면 응당 기뻐해야 할 노릇이련만 나이 마흔다섯의 공생원은 마나님의 임신 소식에 한숨만 늘어놓을 따름이다. 대체 무슨 사연으로?

때는 조선 성종시대. 연거푸 과거에 실패해 백수 신세였던 공생원은 큰아버지에게 빌붙어 살던 처지에 재력 있는 처가에 장가를 가 신세를 편다. 자신보다 키가 한 뼘은 크고 몸무게도 너덧 근은 더 나가보이는 마나님을 모시며 ‘공처’도 나름의 ‘충’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살아간다. 성격 드센 마나님만 보면 깜짝깜짝 기가 죽는 공생원이지만 할 줄 아는 최고의 욕이 ‘이 자식’일 만큼 성격 유순한 공생원과 마나님은 알고 보면 썩 잘 어울리는 한쌍이기도 하다. 그런 둘 사이에 자식이 안 들어서는 것이 문제였는데, 백방으로 알아본 결과 의원 서지남으로부터 공생원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니 그만 포기하고 마나님에게 잘하라는 면박을 받는다. 그러니 공생원에게 마나님의 임신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일 수밖에. 서지남이 비록 의료사고를 내고 야반도주한 돌팔이 의사이기는 하나 공생원은 꺼림칙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공생원은 마나님의 주변 인물을 하나하나 용의 선상에 올려놓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소설가 김진규는 전업주부로 생전 처음 써본 소설 <달을 먹다>로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면서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전작 소설에서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양반과 중인 계층의 엇갈리고 금지된 사랑과 운명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작가가 이번에는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조선시대 민초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소설은 상당 부분을 용의자들의 사연과 내력을 추적하는 데 할애한다. 따라서 소설은 ‘불륜’보다는 조선시대 서민들의 핍진한 생활상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소심한 공생원이 티는 못 내고 이웃과 마나님의 주변 인물의 뒤를 캐는 과정을 통해 조선시대 서민들의 인물상과 생활상을 솜씨좋게 풀어낸다. 배꼽이 깊어야 아들이 들어선다는 말에 혹한 마나님에게 배꼽 성형을 해준 의원 채씨, 두부 쑤는 솜씨가 일품인 두부장수 강자수, 장사 솜씨가 일품인 마나님의 소꿉친구 저포전의 황용갑, 동네 건달이자 난봉꾼인 악소배, 백달치 등 인물의 사연을 통해 조선시대 서민들의 사람살이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전작에서 “박물지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을 받을 만큼 당대의 사물과 풍습을 공들여 그려낸 김씨의 필력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능청스레 농을 걸며 조선시대 이야기꾼과 같이 해학을 섞어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입담이 걸쭉하다.

소설은 결말부에 두 가지 반전을 심어놨다. 공생원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해 그를 불안과 의심으로 몰아갔던 원흉인 의원 서지원이 다시 마을에 모습을 드러내고 드디어 출산을 하게 된 마나님은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 공생원에게 충격고백을 한다. 독자들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어서 ‘귀여운’ 수준의 반전이지만, “누구의 자식도 아닌 내 자식”이라는 마나님의 일갈은 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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