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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불어요! ㅣ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평점 :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들려주던 아이들이 고학년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이야기를 해주는 횟수가 줄어든다. 아이가 띄엄띄엄 말해주는 토막 난 이야기들로는 그 또래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속내를 짐작하기가 쉽지는 않다. 일선에서 아이들과 교류하거나 아동 문학을 공부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고자 노력하는 작가의 작품들은 그래서 늘 반갑고, 새롭다. <짜장면 불어요!>는 창비 제10회 ‘좋은 어린이책’ 공모 창작부문 당선작으로, 표제작 외에 저자의 작품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작품인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性)>은 6학년으로 접어든 '울트라 인기짱'인 남자 아이와 '지극 평범 소녀'의 갓 피어오르는 사랑 이야기를 통해 한창 이성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질 나이의 아이들의 고민과 갈등을 담아내었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性)"은 현경이와 상우가 같이 보게 된 DVD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패러디하면서 성장 단계로 접어 든 아이들의 성의식의 특징을 잘 표현한 제목이라 여겨진다.
이 책을 읽을 무렵에 마침 초등학교 4학년인 큰 딸아이가 최근 들어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기에게 애정표현을 하는 반 남자 아이 이야기를 해준 터라 더 인상에 남는 작품이다.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딸아이가 드디어 이성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할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 신기하면서도 아이의 속내가 궁금하여 또래 아이들의 성의식에 대해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표제작인 <짜장면 불어요!>는 '철가방에 대한 철학'을 현란하게 펼쳐놓는 중국집 배달원 기삼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독특하면서도 신명나는 작품이다. 그가 들려주는, 대한민국에 발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심지어 청와대와 기차 안까지도 들어가는- 철가방의 배달 신화(?)는 이 작품을 신나게 읽어나가게 하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나도 가끔 공원에서도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배달원을 보는데 용케도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주문한 사람을 찾아 배달하는구나 싶어 감탄하게 된다.
신속배달이 생명인 짜장면. 식거나 면이 불어버린 짜장면은 맛이 없다. 혹여 "짜장면 불어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얼른 길을 터주자. 이 작품을 읽다 뜬금없이 든 생각... 부모는 날마다 보는 탓에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모를 때가 많다. 부모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이 혹여 어른들의 간섭과 통제로 퉁퉁 불어터지기 전에 얼른 길을 터 주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배달원 기삼을 통해 빨리 빨리~를 외쳐대는 세상과 소위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갖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하기 싫어도 공부만 해대야 하는 교육현실을 살짝 비틀고 있다.
<3일간>은 부모의 불화와 주위의 편견-가정 환경, 공부 수준 등에서 비롯된-으로 상처받거나 비뚤어져 가는 아이들의 심리와 친구 간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의 모범생인 윤서와 부모의 이혼으로 작은 아버지 네에서 살고 있는 희주, 가정 형편이 어려우나 공부를 잘하는 영선은 단짝 친구이다. 그러나 부모의 불화 때문에 슬픔에 빠진 윤서의 가출로 우정이라는 허울 아래 감추어진 희주의 시기어린 마음과 질투심이 표출된다.
친구도 수준에 맞게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로 인해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가 늘어나듯, 작품 속에서도 윤서의 가출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희주의 비뚤어짐에 무게를 실어줄 뿐이다. 저자는 작품 속에서 어느 한 아이의 손을 들어주지 않고 세 아이 모두를 화자로 세워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아이에게 희주 같은 친구가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 등의 생각할 거리를 안겨 준,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작품이다.
<봄날에도 흰곰은 춥다>는 소주를 마시며 흐느끼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떨고 있는 흰 곰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무를 어깨에 지고 날마다 힘들게 일하는 한 가족의 가장의 억눌린 슬픔과 삶의 고단함을 보는 것 같아 한동안 가슴이 아렸다. 아이들은 한숨이 늘어가는, 아빠의 축 쳐진 어깨를 눈여겨 본 적이 있을까? 2045년을 배경으로, 우주선에 타고 있는 한 남자 아이가 지구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어 암담한 지구의 미래를 경고하는 <지구는 잘 있지?>는 개인적으로 조금 난해하게 느껴진 작품이었다.
전체적인 느낌을 적자면 단편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흥미를 끄는 요소를 담고 있으며 작품의 묘미와 재미를 살릴 줄 아는 작가의 경쾌한 글 솜씨는 주목받을 만하다. 다만 미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작품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다가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 급격한 경사를 이루면서 마무리된 듯한 느낌이 드는지라 이런 부분을 좀 더 다듬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서로 다른 모습을 지닌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펴 그들의 고민과 상처를 살피고 보다듬어 주는 작품들을 안겨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