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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네로 ㅣ 동화 보물창고 13
엘케 하이덴라이히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김지영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이 동화는 이탈리아의 어느 농가에서 태어나 자신이 선택한 주인을 따라 독일로 이주하였다가 세월이 흐른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검은 고양이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담고 있다. "검은 고양이" 하면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을 떠올리게 되는데, 검둥이라는 뜻의 "네로"라는 이름을 가진 이 녀석은 농부에게 "이 검은 악마 같은 놈아~"같은 소리를 듣긴 해도 섬뜩한 느낌보다는 악동 같은 느낌을 주는 고양이다. 거기다 농가에서 다른 가축들을 괴롭히고 말썽을 부리며 우두머리 개까지도 능수능란하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면 가히 폭군 수준으로 비슷한 성향과 이름을 지닌 어떤 황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인 부부 별장에 있는 소파에 올라간 일로 "꼬를레오네(사자의 심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자 자기 이름 앞에 "돈"을 붙여 부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는 네로란 녀석, 어린 시절부터 카리스마가 철철~~ 넘친다! 그러나 농가의 가축들에게 온갖 원성을 사는 네로가 착한 마음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바로 자신의 형제 고양이인 "로자"를 챙겨주고 돌봐줄 때이다. 표지 그림에서 눈이 중앙으로 약간 쏠린 사팔눈을 가진 고양이가 '로자'로,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엽게 보여 미소를 짓게 만든다. 약간의 장애가 있긴 해도 이졸데에게도 귀여움을 받으며, 네오로 인해 험난한 모험을 겪기도 하지만 이후로 안락하고도 평온한-네로의 삶과 비교해 보자면 지나치리만치 무사 평온한- 삶을 살다 가는 고양이다.
이졸데와 로베르트가 머무는 별장에서 호사를 누린 네로는 사료 한 입 때문에 싸워야 하는 농가에서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자의로 주인을 선택하고 로자와 함께 그들을 따라 독일로 향한다. 축구 선수 마테우스의 나라 독일로!! 상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아는 네로는 새로운 곳에서도 우두머리가 되어 어느 고양이와는 우정을, 어느 고양이와는 사랑을 나누면서 남자들의 세계, 싸움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사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네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할 녀석으로 상당히 거만하면서도 마초적인 성향(남성우월주의)을 드러내곤 한다.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여성을 낮추어 보는지라 동화 속 동물이지만 솔직히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은 마음이 불끈 불끈 솟아오른다.
책을 읽다보면 어떤 부분에서는 작가가 고양이의 습성을 잘 묘사하였구나 싶다가도 네로가 카밀라에게 삶은 달걀이나 닭다리 요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 등에서는 고약한 취미를 지닌 작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요소요소에 웃음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을 적절히 배합하여 읽는 재미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초등 2학년이 되는 작은 아이도 이 책을 읽었는데, 우두머리 개가 네로를 흉보며 씩씩거리다가 네로가 나타나자 슬그머니 말을 바꾸는 것이 너무 웃기다고 배를 붙잡고 뒹굴 정도로 계속 깔깔거리며 웃고 나서야 다시 책을 보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림 속으로 떠난 여행>으로 명성을 알린 '크빈트 부흐홀츠'라는 것도 이 책을 주목하게 만드는 점이다. 그의 섬세하면서도 은은한 색채의 그림이 미운 짓을 어지간히 많이 한 네로를 덜 밉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대장이 되어 화려한 인생을 살았으나 세월이 흘러 로자가 죽자 슬픔에 잠긴 네로는 주인 부부를 따라 다시 이탈리아로 온다. 많은 것이 변하고 낯선 얼굴들뿐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 흔적이 배여 있는 고향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늑한 곳이자 아련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곳이다. 네로 또한 비록 사료 한 입 때문에 싸워야 할지도 모를 삶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나름대로 멋진 삶을 누렸던 곳이기에 고향에서 자신의 마지막 생애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 인간의 심리를 많이 반영하고 있는데 노년에 고향을 그리워하고 가고파 하는 마음 또한 잘 녹여 놓고 있다.
- 책을 다 읽고 옮긴이의 말을 읽다가 이 책 제목을 생각하면 "검은 고양이 네로~ 네로~ 이랬다 저랬다 장난꾸러기 랄랄랄랄라~~ "라는 노랫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구나 싶어 슬그머니 웃으면서 책장을 덮었다.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 땜시 별 점을 조금 더 후하게 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