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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ㅣ 사계절 중학년문고 5
고정욱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04년 2월
평점 :
| 3조는 나와서 문제를 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칠판 앞으로 '기어가는' 아이, 동수. 어릴 때 다리에 마비가 와서 일어서지도, 혼자 힘으로는 걷지도 못하는 동수가 자신은 칠판 앞으로 가야하는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에서 장애아나 '악바리'가 아닌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동수에게 하면 된다고, 남들이 하는 거 똑같이 다 하라고 하신 선생님이 계셨기에 자기 자신의 장애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고 모든 일을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된 것이리라. 어제 급식도우미로 갔을 때 만난 반 아이 엄마와 나눈 이야기 중에 하나가 "선생님을 잘 만나야..."였는데, 부모님과 함께 아이의 인생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시는 선생님의 커다란 비중을 생각해 볼 때 책 속의 동수는 선생님을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
담임 선생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서 편하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가 자신을 힘들게 업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이 더 좋다는 말에 가슴이 찡해졌다. 오토바이를 타면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지만 다 큰 아이를 등에 업고 15-20분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집 큰 아이가 업어달라고 졸라서 가끔 업어 보면 나는 무거워서 몇 분도 못 업고 있겠던데, 동수의 엄마는 날마다 얼마나 힘드셨겠는가! 동수는 날마다 업어서 통학을 시켜 온 어머님의 고충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문득 어린이날, 장애인의 날, 연말 연시같은 특정한 시기가 되면 불우 이웃을 돕는다며 선물꾸러미를 잔뜩 들고 찾아 와서는 사진찍고, 촬영을 끝내고 신문이나 TV에 거하게 난 뒤에는 다음 해가 될 때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게는 선심쓰듯 한 두번 연례 행사 차원에서 매스컴을 탈만한 선행을 베푸는 것이리라. 그들이 떠난 뒤에 남겨져 상처받고 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TV 모 프로그램에서 박봉을 털어 오랫동안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도와오신 경찰을 찾아내서 그 선행을 알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보고나니 문득 그처럼 매스컴으로 유명세를 탄 그 분이 여전히 자신의 선행을 묵묵히 하고 계실까? 아니면 이 책 속의 경찰관처럼 진급을 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그 일은 그만 둬버리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익명으로,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힘들어 하는 이웃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게 하는 동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