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때 미래그림책 35
트리나 샤르트 하이만 그림, 바바라 슈크 하젠 글, 이선오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살다 보면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란 말도 있듯이 살아가는 내내 힘든 때만 있는 것은 아니며 힘든 시기가 지나면 좋은 때가 오곤 하지 않던가... 이 책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가정의 사정을 엿볼 수 있는 생활상과 가장인 아빠의 실직이라는 힘든 상황을 맞이하여 슬퍼하면서도 아이가 데려온 '고양이'를 매개체로 기운을 되찾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세세히 글로 표현 하는 대신에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본문의 그림은 흑백톤이며, 인물이나 배경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 놓았다.

 단추를 다느라 바쁜 엄마에게 강아지를 사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가 자꾸 조르지 말라는 대답을 들은 아이는 아빠에게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른다. 그런 아이에게 아빠는 힘든 때라서 사주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아침을 먹으며 아이에게 "모든 것이 자꾸 오르기만 할 때가 힘든 때"임을 가르쳐 준다. 솔직히 우리네 서민들의 가혹하리만치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을 볼 때 요즘이 바로 "힘든 때"가 아닌가 싶다. 공공요금도 오르고, 물건값도 오르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안 오르는 건 월급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ㅜㅜ;;) 책 속의 가족이 좋아하던 작은 상자에 든 시리얼 대신에 양이 많고 값싼 '왕푸짐표' 대용량 시리얼을 사 먹어야 하는 것이나 바닷가 대신에 수영장에 간 것. 쇠고리 요리 대신에 콩 스튜를 자주 먹는 것 등 아이가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느끼는 부분들을 통해 경제적인 사정이 많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트에 장을보러 가면 대게 아이들은 이것 저것 고르러 다니느라 신이 날텐데 아빠가 물건을 고르고 있는 장면에서 보여지는 아이의 표정은 무심한 듯, 심드렁하기만 하다. 뭘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을 것 같은 모습이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것들이 다 내 생활의 한 모습이라 공감이 간다. 나도 장 보러 갈 때면 커다란 시리얼 상자-과자 대신에 줄 때도 있는지라-을 고르고, 질보다 양으로 따져서 물건을 고르고, 문화생활은 공짜표나 초대권이 생겼을 때나 누려 볼 수 있는 것이고, 놀러가는 건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그래도 애들 아빠가 직장에서 해고될 염려같은 것은 없다 싶어 당장에 살 길이 막막한 것은 아니다. 낮에 갑자기 집에 오신 책 속의 아빠는 화가 나 있다. 직장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아빠 자신의 심적인 충격이나 고통이 그 누구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에게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의 위로와 격려가 절실한 때일 것이다. 아이 아빠의 처진 어깨와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오래전 친정 아버지께서 비록 정년퇴직이지만 한참 집안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일을 그만 두셨을 때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집 밖으로 내 보내진 아이는 쓰레기통 안에 무엇인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지나가던 어떤 누나의 도움으로 그것을 꺼낸다. 비쩍 마르고 조그마한 고양이, 그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와 몰래 우유를 주려던 아이는 그만 실수를 하고 만다. 소리를 듣고 달려 온 부모는 아이를 안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문든 남편의 실직 소식을 접하여 억장이 무너지고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는 상황에서 아이가 그런 실수를 한다면 나는 당장에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야단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난 뒤라서일까,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면서 아이에게 고양이의 이름을 물어보시는 아빠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인다. 아이가 고양이에 지어준 이름은 '강아지'.  자기가 원래 키우고 싶었던 것이 강아지라고 고양이에게 '강아지'라는 이름을 붙여주다니, 원~. 고양이와 함께 노는 것이 좋아 밝게 웃는 아이나 그 뒤편으로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니 이들이 힘든 때를 잘 넘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고양이가 아이가 싫어하는 콩을 대신 먹어주려나? ^^;;

- 이 책을 읽어주고 난 후에 작은 아이가 뭐 사달라고 할 때 돈이 없어서 못사준다고 했더니 "힘든 때라서 그런거죠~"라고 한다.. 뭐, 요즘이 좀 힘든 때이긴 하지...(늘 힘든 때였던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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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5-06-2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그림책과 이 비슷한 소재의 책을 보면서, 번역되어 나오기는 좀 힘들겠다 싶었는데 드디어 나왔군요. 그래요, 미래엔앰비쯤이면 내줄 수도 있겠군요. 리뷰 감동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