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어린이.어른
폴 아자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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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술의 본질에 충실한 책을 사랑한다. 그것이 어떤 책인가 하면 직관에 호소하고 사물을 직접 느낄 수 있는 힘을 어린이들에게 주는 책, 어린이들도 읽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책, 어린이들의 영혼에 깊은 감동을 주어 평생 가슴 속에 추억으로 간직되는 책, 그런 책 말이다.-59쪽

아름다움도 상대적이다. 여자를 보는 눈이 높아지면 그때까지 아름답게 보이던 여자도 금세 추하게 느껴진다. 또 그때까지는 윤기가 흐르고 부드럽다고 생각했던 피부도 갑자기 반점이나 곰보, 기미나 흉터로 꺼칠꺼칠하고 홍하게 보인다. 우리가 지닌 고결한 꿈, 무한이라든가 불멸에 대한 이상도 결국은 인간의 어리석음을 증명할 재료를 하나 더 늘려 줄 뿐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보다 더 저주받은 운명도 없지 않을까. 인간의 무거운 멍에 가운데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노쇠한 몸을 질질 끌고 다니는 저 스트럴드브러그 족*을 닮게 될 테니까. 무한한 고난, 이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진실한 것,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걸리버여행기에 나오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저주를 받고 태어난 종족-86쪽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그림책'이다. 창백하고 나른한 달빛이 산 속으로 연못으로, 창을 통해 집 안으로 살며시 숨어들어 장난치다가 사라져간다. 달은 가는 곳마다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이 '그림책'인 것이다. 현재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폼페이의 별장이라든가 바이킹의 이국풍 궁전과 같은 과거의 이야기도 있다. 또 현실만으로는 시시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정들이 등장하는 마법의 무대도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자연 풍경으로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꿈나라가 나타나고 진실의 그림자가 빛을 내면서 변해간다. 그것은 환한 한낮의 아름다움보다 더 아름다울 것이다.-126쪽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마법의 거울이라는사실을 잊기 전에 밝혀 둔다. 그 거울에 비치는 진리의 주변에는 환상이라는 엷은 안개가 끼어 있다. 분별 있는 척하는 어른들이 머릿속에서 어설프게 꾸며낸 세계만큼 진절머리나는 것도 없다! 진실 또는 진실 비슷한 것들이 곳곳에서 뒹굴고 있어 모처럼의 몽상을 망쳐 버리고 만다. 게다가 어디를 가더라도 범주라는 것과 마주친다. 가장 위대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한다. 다음은 동물. 이것은 인간보다 못하다. 그 다음이 식물. 그 아래가 여러 가지 사물. 이것들을 하나로 뭉뚱그려 막연하게 사물이라 부른다. 어린이들은 이러한 시각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우주 라만상을 퇴색시키거나 제한을 두거나 등급별로 나누는 일에 반대한다. 어린이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넘치는 생명력을 만물에게 나눠 주므로, 온갖 것들이 갑자기 활기를 띠며 말을 걸고 어린이들도 귀기울인다. 어린이들은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다.-151-152쪽

어린이들은 명쾌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들에게는 어두운 쾌락도 타락도 없다. 어린이들은 슬픔 속에 느끼는 즐거움, 일부러 고통스러워 하며 이를 천천히 즐기는 즐거움 따위는 알지 못한다. 또 묘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영혼의 불안을 자랑스럽게 내보이거나, 각자의 인상이 어떤 식으로 변해가는지 가만히 엿보거나, 여러 갈래로 뻗은 생활 감정을 선악의 문제 이상으로 성가시게 캐고 드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어린이들은 건강하다. 앞에서도 주의를 촉구했듯이 그들에게 필요한 작가는 외면적인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가이다. 사물 그 자체에 흥미를 갖고, 거기서 어린이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이러쿵저러쿵 언급하지 않는 작가를 필요로 한다. 어린이들에게 호사가나 회의론자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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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5-07-3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고, 역시, 아영엄마님의 내공은 따를 수가 없다니까요....^^
벌써 읽으셨군요!
그나저나 다행입니다. <좋은 책이란> 장의 다섯 페이지를 죽자고 워드쳐서 올렸는데, 허걱, 똑같은 제목의 밑줄긋기가 있어서 깜딱 놀랬어요!!!! ^^
다행스럽게도 별로 겹치는 부분은 많지 않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