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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 ㅣ 미래그림책 33
데이비드 위스너 글 그림, 이지유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품 속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날리기 좋아하는(^^;;) 데이비드 위스너가 이번엔 무엇을 날렸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뭔가를 날리긴 하는데 이번 것은 현실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광경으로, 허리케인이 몰고 온 강렬한 바람에 날려 빗방울은 사선으로 떨어져 내리고 약한 가지가 부러져나가고 나뭇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다 바람에 날려간다. 허리케인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바람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거대한 바람과 비를 몰고 오는 태풍이 몇차례 상륙하곤 한다. "태풍"이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엄마가 가끔 들려주시던, 59년에 몰아닥친 사라호 태풍이 생각나는데, 엄마가 말씀하시길 그 때는 동네 곳곳이 물에 잠기고 돼지 같은 가축들이 정말 냇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기도 했다고 한다.(참고로 사라호 태풍의 최대 중심 풍속은 초속 85m, 평균 초속 45m의 강풍을 동반했었음)
이 책에서 허리케인이 불어 닥쳐서 가족 모두 집안에 머물고 있던 중 동생이 형에게 바람이 고양이 한니발을 날릴 만큼 세게 불지 묻는다. 그러자 형이 "시속 몇 Km"라는 표현을 써서 대답해 주는데 솔직히 그것으로는 아이들이 바람의 세기를 확연히 느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책에 나오는 시속80km 정도면 고양이가 날려갈 정도가 되지는 않을 것 같고, 같은 회오리바람의 한 종류인 토네이도(시속300~500km)라면 정말 날려가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와 집을 날려버린 것도 토네이도였다. 풍속이 초속 30m정도면 건물이 부서지고 나무가 뿌리째 뽑힌다고 한다니, 데이빗과 조지네 마당의 커다란 나무가 뿌리를 드러내고 마당에 널브러진 것도 그 정도로 강한 바람이 몰아닥쳐서인 모양이다. 정전 사태까지 일어나서 두 형제는 침대 위에서 비상등을 켜놓고 대화를 나누는데 그 모습을 보니 밤에 큰 손전등을 켜놓고 속닥거리곤 하는 우리 집 두 딸아이의 모습이 생각난다. ^^
태풍이 불어 닥치면서 생긴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부분은 어떤 것일까? 우선 고양이가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바람막이 덧문 앞에 앉아 있는 장면을 그냥 지나치지 마시길~ 덧문에 테이프들이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눈과 입이 있는 얼굴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리고 데이비드 위스너가 환상을 펼쳐 보일 공간으로 선택한 것은 뿌리째 뽑혀 쓰러져 버린 나무이다. "잠자는 거인" 같이 마당에 누워 있는 나무를 보며 데이빗은 정글놀이를 하자고 제안하고, 형제는 용감하게 정글 속으로 모험을 떠난다. 쓰러진 나무의 한 편에서는 고양이가 발을 핥고 있는 현실의 세계가 존재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형제가 만들어 낸 정글의 세계, 즉 판타지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거대한 코끼리와 무시무시한 표범이 등장하는 정글과 엄청난 크기의 문어와 해적이 등장하는 바다,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요상하게 생긴 외계인이 땅 속에서 솟아나오는 우주공간 등, 자신들이 구축한 상상의 세계에서 두 아이는 정말 신나게 논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 공간 속에서는 이들 형제가 무적인 것을!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무가 이웃집 마당으로 쓰러진 탓에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둘만의 공간은 치워져야 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상상을 펼쳐가며 즐겁게 놀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해 주던 나무가 아무런 통보도 없이 조각조각 잘려 나가버리다니,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얼마나 상심이 크겠는가... 전기톱으로 잘려져 한 쪽에 쌓인 나뭇조각들이 산산히 부서진 형제의 마음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이제 형제는 또 다른 폭풍이 불어 닥치기를, 그리고 하나 남은 큰 나무가 이번에는 자기 집 마당에 쓰러지기를 소망한다. 그들만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섣부른 해석인지도 모르겠으나 고양이는 아이들이 펼치는 판타지와 현실을 가로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늘 아이들 곁에 함께 머무르는 고양이는 형제가 여러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동안 그 세계에 진입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고양이에게도 상상의 세계를 펼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으니 마지막 장면의 묘미를 놓치지 마시길~ 또 한 가지, 신기한 스쿨버스 7권인 <허리케인에 휘말리다>편에 허리케인의 바람 속도나 허리케인의 눈에 바람이 불지 않는지 등의 다양한 지식이 나와 있으니 이 책과 함께 곁들이면 좋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