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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 장애를 딛고 선 천재화가 ㅣ 어린이미술관 6
심경자 지음 / 나무숲 / 2002년 2월
평점 :
이 책은 실물을 볼 때 느낄 수 있는 웅장함이나 섬세함을 다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김기창씨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이 분의 삶이 위인전의 형식을 통해서나마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알려지는 것 또한 환영해야 할 일일 것이다. 그림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이라고 하면 피카소, 모네, 고호 등과 같이 외국 화가들만 떠올릴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천재적인 그림실력을 지닌 화가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실은 나 역시 김기창님의 삶과 예술 세계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이 책 초반에도 소개되었듯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만원 권 지폐 위의 세종대왕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 김기창님이시다(영정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음). 세종 대왕 초상화를 그릴 당시에 스승이 고쳐놓은 그림을 다시 고친 그의 고집을 높이 사고 싶다. 하늘같이 높은 스승님이지만 자신의 그림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완성하겠다는, 본인의 그림에 대한 자존심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겠는가... 실은 두 분 다 자신의 얼굴과 닮게 그렸다는 부분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
처음에는 글을 읽으면서 옆에 실린 그림을 보았는데, 이렇게 보니까 그림에 대한 감흥이 좀 떨어지는지라 우선 김기창님의 생애에 관한 글을 먼저 읽고 나서 그림을 따로 감상하였다. 책에 실린 그림들을 살펴보니 정말 다양한 기법, 형식으로 그림을 그리셨다. <소와 소년>이라는 그림에서는 계집아이처럼 여린 모습을 지닌 소년의 모습이나 순박한 눈동자를 살포시 뜨고 있는 소의 모습, 그리고 그 뒤로 안개처럼 펼쳐진 풍경이 너무나 평화스럽게 느껴진다. <연, 유자, 학과 마병, 연꽃과 고양이>라는 작품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아낙들의 삶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는 <군상>이라는 작품은 마치 붓으로 낙서를 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잔소리 하는 자신의 아내를 그렸다는 <화가 난 우향>을 보면 꼭 아이들이 그린 도깨비 같은 모습이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이야 말로 아이들이 김기창님의 그림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 것 같다. 아이들은 도깨비를 무척 좋아하지 않는가~. 잔소리를 한다고 아내가 도깨비처럼 느껴졌다니, 왠지 김기창님이 악동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혹시 우리 아이들도 잔소리 쟁이 엄마인 나를 그리라면 이렇게 그리지는 않을까? ^^;; 이 외에도 김기창님의 예술 세계와 삶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이 많이 실려 있다. 그림 하나 하나를 오래 들여 다 보고 있으려니 잊혀졌던 옛날 이야기가 묻어나는 것 같다. <엿장수>라는 그림은 예전에 병이나 고철 등을 들고 나가 엿으로 바꾸어 먹던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으로 피카소라는 화가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김기창님을 한국의 피카소라고 칭하는 것이 조금 못마땅하다. 난 김기창님은 그저 '한국의 수묵화가 김기창' 님으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일곱 살에 장티푸스로 귀머거리라는 장애를 얻었지만 어머니의 열의로 한글을 배우고, 스승인 김은호 선생님을 만나 재능을 꽃피운 그의 삶을 우리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지 궁금하다. 이 책을 읽은 뒤에 역시 귀가 멀어 불행한 때를 보내야 했던 또다른 예술가인, 작곡가 베토벤에 대해서 알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