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제가 생겼어요! ㅣ 그림책은 내 친구 25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0년 9월
평점 :
지난겨울, 우리 집 막내를 즐겁게 해 준 문제작! ^^ 막내는 미리 웃을 준비라도 하듯 헤실 거리며 이 책을 내민다. 실은 아이가 처음 그리 하였을 때 이 책의 어떤 장면이 재미나서 그리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그림들이 매우 단순하다. (작가에게 핀잔을 들을 소리겠지만 종이 낭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지면에 여백을 많이 두고 있다. ^^;;) 하지만 단순함에서 다양한 것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천이야말로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아니겠는가.
예전에 모 부모 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사가 동그라미 두 개를 제시하고 그림을 그려보게 한 실험 결과물을 보여주었더랬다. 그러면서 동그라미의 위치나 크기를 달리하는 등 여러 가지 표현법을 생각해내거나 다양한 사물을 연상하여 그려낼 줄 아는 아이들이 21세기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라고 평했다. 이 책을 처음 보면서 나는 미처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기발한 그림들을 제시한 결과물에 감탄하며 강사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작가는 길쭉한 세모 형태의 다리미 자국에서 다양한 사물을 이끌어 내며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왼쪽 책장에는 본문 글이, 오른쪽 책장에는 배경 그림 없이 대상에 초점을 둔 간결한 그림이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가 수를 놓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새하얀 식탁보. 그런데 다림질을 하다가 잠깐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식탁보에 누렇게 눌은 다리미 자국을 내버렸다! 아, 절망이다. 화자의 절망적인 심정을 작가는 다리미 자국에 몇 개의 선을 그려 넣어 커다란 포탄으로 변신시켜 대변하고 있다.
이후 다리미 자국은 간결한 덧그림만으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의자가 되기도 하는 등 무한 변신을 한다. 이 작품을 아이가 아주 재미난 책으로 인식하게 된 대에는 막내의 큰 언니의 공(?)이 크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책을 보다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남자로 묘사한 장면을 가리키며 막내에게 아빠라고 한 모양이다. 그런 식으로 몇몇 장면을 가족과 연관시키며 함께 본 이후로 막내에게는 마우스나 의자 같은 사물 외에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이 눈도 들어 있는 책이 되었다.
- 다른 그림책을 볼 때도 흔히 그러하듯 자신이 특히 더 좋아하는 장면을 얼른 보고 싶은 마음이 큰지, 막내는 엄마가 책장을 차례차례 넘기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듯이 앞서서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는 자기가 찾던 장면이 나오면 소리를 치기도 하고 조잘거리며 웃음을 터트리곤 한다.
주인공의 엄마는 참 너그럽고 현명하다. 내 성격 같았으면 짜증부터 냈을 텐데... 세상 끝으로 도망가고 싶을 만큼 큰 걱정에 휩싸여 고민을 한 주인공의 염려와 달리 엄마는 소중히 여기는 테이블보에 또 하나의 다리미 자국을 보탠다. 그리고 고 고운 색실들로 새로운 추억을 아로새긴 -세 사람의 추억이 모두 담긴-식탁보는 가족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식탁보가 되었다.
모 블로그에 도서 정보를 페이퍼로 올릴 때 책 제목을 그대로 제목으로 썼더니 블로그 이웃이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어 들어와 봤다는 댓글을 남기셔서 "엣, 이거 제목이 문제인걸~"하고 웃었던 일이 있다. 도형이나 무늬 같은 것을 제공하고 이를 포함하여 다양한 그림을 그려보는 것으로 창의력을 키워주는 책을 가끔 접한다. 이 책은 생각의 힘을 발휘하여 다양한 그림 그리기와 더불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참신한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