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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든지 할 수 있어 ㅣ 창비아동문고 174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강일우 옮김, 일론 비클란트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어릴 적에 TV에서 본, 옆으로 쭉~ 뻗은 빨간 머리의 말광량이 소녀 삐삐는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야기이다. 아이에게 책으로 먼저 접해 주려고 검색해 보면서 작가의 이름을 통해 다른 작품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린드그렌의 글은 정말 아이들의 마음 그대로를 잘 나타내어 주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특히 첫번째 이야기인 '메리트 공주님'은 아이들이 어떤 시각으로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였는지를 잘 나타내어 주는 작품이다. 자신에게 사탕과 반지가 든 작은 상자를 선물해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자아이를 따라 다니던 메리트가 산길에서 굴어 떨어지는 바위를 막은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메리트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고 일일이 글로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은 메리트가 늘 그렇듯 웃으면서 바위를 향해 달려 갔다고 할 뿐이다.
사고를 당할 뻔 했던 당사자인 남자아이-자기를 따라 다니며 히죽히죽 웃는 메리트에게 화를 내기도 했던-마저 언짢은 투로 "'그래, 그 애는 늘 웃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장례식이 끝나자 새둥지를 보느라 친구의 죽음은 곧 잊혀져 버린다. 만약 글에서 메리트가 요한을 구하기 위해 죽었다고 아이들이 말해졌다면, 장례식이 끝나도 친구들이 메리트를 생각하며 내내 울었다고 한다면 이것은 다분히 어른의 시각이 개입된 것이며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죽음의 의미는 어른들만큼 거창하고 슬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라는 작품에서도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
'벚나무 아래에서'에서는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거짓 이야기를 꾸며내는 안네가 등장한다. 우연히 만난 아줌마에게 자신의 엄마가 어릴 때 집시에게 납치된 적이 있으며, 어릴 때 벚나무에서 떨어져서 죽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거짓말하는 나쁜 아이의 모습을 찾아 보긴 힘들다. 안네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엄마가 어릴 때 죽었으면 안나는? 어른인 나도 가끔 비극적인 이야기를 상상하곤 하는데 이를 나쁜 거짓말이라고 생각지 않고 이야기를 꾸며 내는 안네의 천진함이 오히려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 이외에도 자신의 아이만 이뻐하고 조카를 하녀 부리듯이 하는'귀염둥이'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이렇게 방치하고 부려먹는 이모들이 너무 미웠고 오히려 무작정 당하지만은 않는 에바의 당당함이 정당하게 느껴졌다. 부당한 대접에 맞설 줄 아는 당당함을 우리 아이가 가졌으면 한다.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처럼 무작정 착하고 순종적인 여성이 돋보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여자가 더 아름답게 여겨져야 한다! 글 하나 하나가 무척 재미있으며, 어른인 내가 읽었을 때는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아이들의 시각에서 쓴 작가의 역량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