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
정승각 글.그림 / 초방책방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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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느 외국 동화책에서는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화려한 그림 기법과 설화가 간직한 동양적인 정서가 흠뻑 녹아 있는 참 독특한 그림책이다. 불개(삽사리)와 함께 현무 주작, 청룡, 백호 등의 상상의 동물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특히 눈 여겨 볼 것은 각 페이지의 전면을 장식한 그림들로, 까막나라가 나올 때는 검은 색과 황금색이 이 주를 이루는데 마치 고분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불개가 해를 찾으러 가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주황과 붉은색이 지면을 가득 메우고 있으니... 이어 달을 찾아 서쪽으로 향하자 푸른색과 흰색이 어우러져 차가운 달의 느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대조적인 색채들로 이루어진 그림들은 아이들의 시각을 매우 즐겁게 해 준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는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할 것이다. 불개의 희생이 무위로 돌아갈 뻔했다가 주작과 학들에 의해 구조되는 부분에서는 온갖 색이 세상을 수 놓아 마침내 그의 희생으로 이루어낸 밝은 새상을 드러내 준다.  과연 불개가 어떻게 해서 세상에 빛을 가져 다 주었는지 아이와 함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주 먼 옛날로 시작하는 옛이야기나 신화들처럼 이 이야기 역시 옛날로 거슬러 올라 간다. 하늘이 깜깜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없어 답답해 하는 왕의 하소연에 어느 누구도 불을 가져오겠다고 나서질 못한다. 그런데 임금님 앞에 불을 구해 오겠노라고 나서는 용감한 개 한 마리가 있었으니, 불을 가져오면 큰 상을 내리겠다는 임금님으로부터 '불개'라는 이름을 하사 받은 불개는 북쪽으로 간다.  “불아, 불아, 어디 있니? 우리 나라 까막나라 환하게 밝혀다오.”라는 불개의 노래 소리를 절실하게 불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전해지도록 충분히 감정을 잡고 읽어주자~. 우리 아이들도 마음을 울리는 노래를 듣고 나타난 현무처럼 감동할 만큼말이다!

 현무는 3가지 빛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데, 환한 빛을 내는 '해와 달'과 함께 '참다운 빛은 마음 속에 있는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들려준다. 아이들도 이 말의 뜻을 금방 이해하지 못하리라. 마음 속의 빛이라...  왠지 선문답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불개는 동쪽으로 향하는데, 고난에 찬 불개의 여정이 정말 눈물겹기만 하다. 해를 지키고 있는 청룡이 내뿜는 뜨거운 불 공격을 이겨내지만 해를 물었다가 손발이 오그라들고 뱃속이 타 들어가는 고통을 당한다. 서쪽에서는 백호가 지키고 있는 차가운 달을 물었다가 온몸이 빳빳하게 얼어붙는 고통을 당한다.  결국 해와 달도 없이 까막나라에 돌아오게 된 불개... 과연 그는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에 실패한 것일까? 아니다! 그가 겪은 고통은 헛된 노력이 아니었으니, 해와 달을 물 때 이미 불개의 몸에는 그 빛이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현무가 말한 참다운 빛이 이것이었던가...

  그런데 처음으로 ‘빛’을 대하게 된 신하들과 임금님은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도 처음 보는 물건이나 환경을 접하게 되면 몸을 사리게 되고 겁을 먹지 않는가... 임금님과 신하들이 느낀 감정을 아이가 느껴볼 수 있도록 이렇게 해 보시는건 어떨까? 어두운 밤에 창으로 스며드는 달빛마저 커튼으로 가려서 방 안을 완전히 깜깜하게 만든다. 그런 상태에서 빛이 없는 세상의 어려움에 대해 몇 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전등 스위치를 켜는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눈이 부셔서 한동안은 오히려 눈을 감고 싶을 정도라는 걸 아이들도 금방 느낄 수 있을 터이다.

 임금님은 자신의 약속도 잊어버리고 불개를 낭떠러지로 던져 버리자 불빛 역시 사그라 들어버리고, 그제서야 임금님은 자신의 실수를 한탄하고 불개를 불러보지만 때늦은 후회일 뿐...  선지자는 결코 그 시대에 환영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불개가 떨어지는 장면은 길다랗게 펼쳐진 한 폭의 비단에 수 놓아진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 혼자 얼마나 감탄을 했던지... 마치 아름다운 자수 작품을 보는 듯 하였다. 구름 사이로 목을 빼고 불개를 바라보는 학들의 모습도 이채롭고, 처음에는 무심히 넘겼던 테두리에 둘러진 각각의 문양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작'과 학들이 그를 구원하고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자 “아, 해다, 밝은 나라야!”라며 불개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나 역시 감동해서 코끝이 찡해졌다. 

'강아지 똥'이란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정승각 씨가 오방색(흑, 적, 백, 청, 황)이나 금니(금박가루를 아교풀에 갠 것)을 이용해 만든 그림들은 전설을 간직한 삽사리에 관한 옛이야기를 한껏 즐겨볼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동양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은 외국동화책에 등장하는 용, 인어, 유니콘 같은 것만 알고 있는 아이들의 시야를 한층 더 넓혀 주고 상상력도 키워주게 될 것이다. 정승각님 독특한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고, 동양의 정서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책으로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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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6-0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소홀히 작성하여 올리던 때가 있었는데 알라딘 서재를 통해 그런 글들까지 공개되는 것이 못내 부끄러워지는군요..이 글도 전에 올렸던 리뷰 삭제하고 좀 더 보완하여 다시 올린 것입니다.

반딧불,, 2004-06-0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엄청 찔리는 멘틉니다.
그게 참 안되는 듯 해요.
오천원에 눈 멀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