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종을 13번 치면..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ㅣ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14
필리파 피어스 지음, 수잔 아인칙 그림,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8월

시계가 종을 13번을 울린다고? 분명히 현실 세계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아니 시계가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났다고 치부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밤중에 잠들지 못하는 톰에게는 또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공간이 열리는 또 하나의 시간이다. 그 시간이 아니면 결코 찾아갈 수 없는 정원에서 톰은 아름다운 꽃과 우뚝 솟은 나무와 숲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곳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는 톰은 존재하지 않는 유령일 뿐이다. 분명 자신은 그들을 보고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상대방은 내 모습을 보지도, 말을 듣지도 못한다면, 더구나 아무 것도 제대로 만져 볼 수 없다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 될지도 모를 노릇이다. 그러나 톰은 아이이다. 그렇기에 그것도 장난의 일부처럼 여기고 즐길 수 있다. 더구나 현실의 상황이 집 안에서만 갖혀 지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런데 해티라는 여자아이가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톰은 경악하면서도 그녀와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다. 문제는 톰에게는 하루라는 시간일 뿐인데 비해 해티는 갑자기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되었다가 점차 성숙한 여성의 모습을 갖추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톰과 해티의 시간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시간의 비밀을 깨닫지만 영원히 정원에서 지내고 싶다는 톰의 열망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접했던 판타지 문학에 익숙했던 나머지 톰이 시간의 틈새에 존재하는 정원에 들어서면 마법과 요정들이 등장하고 굉장한 모험을 할 것이라고 믿었지 뭔가! 그래서 톰과 해티의 우정 이야기로 끝나는 것을 알고 허탈한 감을 느끼긴 했다. 그러나 나 또한 어린 시절에 다른 세상, 다른 시간으로 가 볼 수 있길 바라며 몽상에 잠기곤 했던 터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13시라는, 톰만이 가졌던-나중에 동생이 잠깐 끼어들긴 했지만- 시간들에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어딘가에 다른 시간으로 통할 수 있는 문이 존재한다면 나는 어떤 곳을 찾아가 보고 싶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