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이 왜 '코끼리는 기억한다'인가에 관하여 궁금증이 일었는데, 책을 읽어보고서야 그 의미를 알겠다. 다른 짐승들과 비교할 때 코끼리의 기억력이 매우 좋다는 것인데, 문득 예전에 '붕어 아이큐는 3초'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낚시 바늘을 물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물고기가 돌아서면 그걸 까먹고 다시 미끼를 물려고 덤벼서 그런 말이 생겼다나.. 그에 비하면 -이 책에 나오는 바에 의하면- 코끼리가 자기를 바늘로 찌른 사람을 기억했다가 몇 개월 뒤에 물세례를 준다는 예를 볼 때 상당히 기억력이 좋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코끼리'에 관한 언급이 가끔씩 나오는 것은 예전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내 머리가 녹슨 탓인지 올리버 부인과 포와로 탐정이 만나서 수집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마구 뒤섞여서 누가 들려준 이야기였는지, 어디서 일어난 일이었는지 헷갈려서 다시 앞으로 가서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까지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기억조차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느꼈다. 기억은 주관적이고 자기가 믿고 싶은데로 믿기 때문이리라. 인간의 두뇌 속에 저장된 기억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끊임없이 조작되고 개편되고 잊혀져 간다. 특정한 상황이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억될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오! 수정"이던가?)도 있지 않던가. 중반 이후로 가면서 등장인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서 추측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두번 이상은 읽어보아야 이해가 되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