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새로운 서사 형식 마루벌의 그림책 이론서
옌스 틸레 지음, 지광신 외 옮김 / 마루벌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이 커가는 십여 년간 꾸준히 그림책을 접하다 보니 그림책 작가들은 작품의 그림(삽화)을 그릴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작업에 임하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그림책을 감상하고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아직 그에 관한 공부를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어서 그림책 이론서를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관련 서적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사랑하면 알고 싶고, 알면 알수록 더 깊이 사랑하게 되지 않던가! "이 책, 그림 너무 근사하다~" 하는 차원을 넘어서 작품이 어떤 점에서 돋보이며, 이면에 어떤 주제를 내포하고 있는지, 작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작품 내에 어떤 방식으로 부여하고 있는지, 작품 속에 투영된 주제 의식이나 의도 등에 대해 파고들어 가보고 싶어진다.

"왜 그림책에는 질적으로 수준 높은 그림들이 실리면 안된단 말인가?"(p. 287)
 
 예전에는 주로 어린이들에게 교훈이 되는 내용을 담고 글과 묘사하는 장면을 삽화로 그려 넣는 수준이었으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그림책 분야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완성하거나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도 있으며, 풍부한 상상력과 독창성으로 사랑받는 작가들도 있다. 현대로 접어들어서는 에릭 로만이나 데이비드 위스너의 작품처럼 그림책의 삽화에 무게를 실어 본문 글은 최소한의 분량으로 줄이거나, 아예 글 없이 그림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들도 사랑을 받고 있다. 몇몇 그림책 작가의 작품은 경탄을 자아낼만큼 삽화의 예술성이 두드러져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을 표지 그림으로 사용한 이 책은 "현대의 대표적인 그림책 몇 권을 조형적, 언어적으로 심도 있게 분석한 논문들을 통해 그림책의 서술 구조를 분석하는 적절한 틀을 제시"하고 있는 이론서이다. 초반부에서는 그림책 분석이 시급한 이유와 함께 그림책이 학문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분석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것인지 자문하면서 새로운 경향의 그림책들을 체계적으로 논의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이 이론서에서는 9권의 그림책을 분석하고 있는데, "서술 구조의 다양성과 방법적 접근의 수월함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책을 분석한 논문들 중에서 눈길을 끈 부분을 꼽자면 역시 현대 그림책 작가들을 언급한 장들이다. 비네테 슈뢰더, 모리스 샌닥, 앤서니 브라운, 로베르토 인노센티, 크리스 반 알데버그. 이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은 개인적으로도 매우 애정을 가지고 있는 터라 더 관심이 갔다. 언급된 그림책이 집에 있는 경우에는 옆에 가져다 펼쳐 놓고 삽화들을 좀 더 유심히 들여다보며 읽었다. 이왕이면 아홉 권의 그림책을 다 구비해 놓고 이 책을 읽어 보면 더 좋겠다 싶은데-두 권은 얼마 전에 구입했고-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판이 출간되지 않은 작품도 있는 것이 아쉽게 다가온다. 




 5장 [동화 이야기꾼으로서의 삽화가]에서는 동화를 보는 잘못된 시선을 비롯하여 그림 형제 동화의 변형, 아이들의 심리적 발전을 위한 동화의 기능 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어서<플로리안과 트랙터 막스>, <보름달의 전설> 등의 작품을 통해 몽환적인 화풍을 선보이고 있는 비테네 슈뢰더의 <개구리 왕자>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까닭과 더불어 심리적 발전의 단계들을 자세하게 분석해 놓았다. 슈뢰더의 삽화 이외에도 다른 몇몇 작가의 그림을 언급하여 비교해 놓기도 하였다. 

 6장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은 <사랑하는 밀리>'로 유태인 대학살과 '모리스 센닥의 위협받는 어린 시절에 대한 환상'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센닥은 <꼬마 곰 (little bear)>시리즈의 삽화가이기도 하지만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괴물들이 사는 나라>, 만화적인 화풍을 선보인 <깊은 밤 부엌에서>처럼 다양한 화풍의 작품을 선보인 작가이다.

 초반에는 센닥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그의 출신과 유년기의 인상 깊은 체험, 그림책 작가로서의 센닥이 지닌 힘을 언급하고 있다. 성담의 특징과 성격에 대한 설명에 이어 본격적으로 <사랑하는 밀리>의 텍스트와 삽화를 꼼꼼하게 짚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조형 예술가로서의 센닥이 삽화 속에 어떤 조형적인 요소들을 도입하고 연출하고 있는지, 어떤 작가의 작품들의 그림 요소를 차용하였는지도 알려 준다. 

 


 7장 [그들은 전혀 닮지 않았다]에서는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많은 그림책을 선보이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의 <터널>을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그의 그림책을 메우고 있는 상징, 암시, 인용들을 해독하고 상징이 시사 하는 바를 분석하여 본래 의미를 찾을 수 잇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로즈가 펼쳐 놓은 책과 침대 옆에 걸린 <빨간 모자와 늑대> 그림 액자가 로즈의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빨간 망토를 끌어들인 의도는 무엇일까? 

 '토마스 클라인스펜'은 <터널>의 숨은 단서를 추적하고, 정확한 추론을 하기 위해서 꿈과 동화에 대한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비나 공포를 다룬 몇몇 동화와의 유사점과 심리적인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전문적인 논문이다 보니 일반인들이 어렵게 여기는 학술 용어들이 종종 등장하여 (내 이해력이 딸리는 탓이겠지만) 어렵게 여겨지는 부분이 좀 있었다.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콜로디의 동화 <피노키오>의 삽화를 다룬 8장 [잃어버린 토스카나를 찾아]에서는 로베르토 인노센티가 그린 삽화의 특징과 그림의 연출 기법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2008년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는 등 많은 조명을 받고 있는 로베르토 인노센티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그림책계의 거장이라 일컬을 만큼 뛰어난 그림책 작가이다. 올 초에 볼로냐 전시회에 가서 그의 그림들을 직접 보면서 다시 한 번 감탄한 바이지만,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고 세세하게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된다.

 '잉에 자우어'는 논문에서 인노센티가 재해석하여 탄생시킨 피노키오의 삽화들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작은 삽화들에서도 정교한 그림 연출이 눈에 띄는 그의 작품에서 긴장감을 불어 넣는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마지막 형상화 요소인 인쇄술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뒤이어 조명, 영화기술적인 연출, 관점의 변화, 환상적 리얼리즘 등 책 속에 실린 그림을 예로 들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 <압둘 가사지의 정원> 등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작품 세계를 선보이는 그림책 작가 크리스 반 알데버그는 내가 전작을 목표로 하고 있는, 편애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이다. 비평가들도 그를 위대한 화가들과 비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9장 [비행선 조종사의 꿈]에서는 <하늘을 나는 배, 제퍼>의 삽화와 이야기가 지닌 대담함과 문학적인 힘, 이전과 달리 흑백 그림이 아닌 독특한 색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린 이유 등을 언급하고 있다. 알스버그가 작품상에서 독특한 초현주의적인 기법을 어떻게 구현하는지, 꿈과 일상적인 현실을 어떻게 아우르고 있는지도 살피고 있다. 



 1장 [그림책 이해하기]에서 지적하였듯이 현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경향(삽화의 예술성, 서술구조, 참여적인 주제)"의 그림책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이런 그림책의 분석을 통해 그림책의 예술 가치를 올바로 평가하고, 그림 뒤에 숨어 있는 그림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반 독자가 작품 자체를 즐기고 이해하는데 이런 전문성이 요구되지는 않겠지만 학문적인 논의가 필요한, 그림책의 이론을 공부하는 이들이나 그림책(동화)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도 눈여겨 읽어볼만한 이론서라 여겨진다.

 그림책을 어린이 책으로만 보는 단순한 시선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받고 있으며, 아이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도 보는 책이라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1장에 "예술적인 그림책이 어른 독자들에게 이중적인 감정을 훨씬 더 많이 불러일으킨다. (중략) 반면 어른들 스스로는 예술적인 그림책들을 즐기며 그것을 수집품으로 격상시킨다." 라는 글이 있다. 나도 그런 경우지만 아이들에게 접해 줄 그림책 고르다 본인이 더 그림책에 매료된 어른들도 있고, 자녀가 없음에도 그림책의 매력에 반해서 작품을 구입하여 소장하는 어른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 

 논문에서 시도한 분석들이 그림책의 삽화를 그린 작가들의 실제 의도나 추구하고 있는 작품 세계와 일치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각 논문에서 살피고, 짚어서 준 부분들 덕분에 그림책에 대한 인식이 조금 더 깊어진 것 같다. 새로운 경향을 지닌 그림책의 출판 시장은 현재 진행형이며 그 물살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실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근사한 그림책들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지! 여력이 되질 않아 다 사모으지 못하는 것이 통탄스러울 지경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큰 것이 안타까워서라도 앞으로도 계속 그림책에 애정을 가지고 탐닉할 생각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집 2010-06-07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 있는 작가들이 많아서 이 책에 구미가 댕깁니다. 특히나 센닥과 알스버그의 작품 분석 시도에 흥미가 생기고요. 이 책이 신간으로 나왔을 때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영엄마님의 리뷰 읽으니 대략 구도가 잡히네요.
조만간 땡스투 갈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