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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법 ㅣ 그림책은 내 친구 22
콜린 톰슨 글.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10년 4월
평점 :
세계 곳곳에서 컬트가 된 작가, 콜린 톰슨. 그의 작품들을 보면 열정적인 찬사를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나 역시 그의 작품들을 전작하고 싶은 욕망에 불타오르기 시작했으니까. 지인이 쓴, 콜린 톰슨의 <Castles>의 리뷰에 올린 그림들을 보고 반해서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책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한글판으로 나온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뒤로 어느 블로그에서 이 책의 원서(How to live forever) 이미지 사진을 올린 글을 보면서 한글판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터라 더 없이 반가운 작품이다.

책과 다양한 소품으로 가득한 표지 그림에서부터 매력을 폴폴~ 풍기는 이 작품은,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은 꼼꼼한 세부 묘사와 더불어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매혹적이다. 작품의 배경은 도서관. 책 좋아하는 사람치고 도서관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랴~. 더구나 지금까지 출판된 모든 책이 꽂혀 있는, 방이 천 개나 되는 이 도서관은 곳곳에 비밀의 공간을 숨겨 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도서관 책상 위와 서랍 속에 작은 집들이 들어서 있고, 책상 밑에는 골동품 서점이 불을 밝히고 있다. 상자나 책에 노란 불빛이 비치는 작은 창이 나 있고 서류함을 비롯하여 곳곳에 작은 계단들이 나 있어 마치 소인국 세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바닥에 놓인 도서관 열쇠가 판타지 세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처럼 보인다. 모든 책이 있다는 이 도서관에 없는 한 권의 책, <영원히 사는 법>. 누군가가 그 책의 기록 카드를 숨기고 책은 조용히 사라진 상태.
- 그림 오른쪽에 있는 서랍함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손잡이 상자 종이로 가득 차 있음"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상자 옆에 "왼손잡이 상자 종이로 가득 차 있음"이라는 글자가 뒤집힌 글씨로 적혀 있는 딱지가 붙은 상자가 나란히 꽂혀 있다. 작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이 왼손잡이라고~.

보는 순간 홀딱~ 반할 만큼 매혹적인 한 장면만으로도 소유하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책들이 종종 있다. 이 작품에서는 책장 가득 책들-뿐만 아니라 나무를 비롯한 온갖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이 꽂혀 있는 그림이 이에 속한다. 도서관 문이 닫히고 경비 아저씨가 잠들고 난 후 살아난 책장에는 새로운 세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선명하면서도 다채로운 색감의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이 장면이 얼마나 근사했으면 -일부러 보여준 것도 아닌데- 등에 업고 있던 막내까지도 그림에 반해서 펼쳐 보고 있던 책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버릴까. 색감도 너무 근사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보물창고처럼 볼거리들을 가득 담고 있는 그림이라 개인적으로 사랑해 마지않는 장면이다.
- 그런데 이토록 멋진 그림으로 가득한 작품을 선보인 그가 색맹(!!!)이라니,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장면이 오래도록 눈길을 사로잡아 두는 요인은 여러 문학작품과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재치 있는 책 제목들이다. 달과 육면체, 베니스의 화성인, 88분간의 세계일주, 리치왕, 두 접시 이야기 등등... 많이 들어본 작품 제목과 어딘가 비슷~하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책장에 꽂힌 책들의 실제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책의 마지막 장에 실제 작품의 제목과 저자를 죽~ 적은 목록을 실어 놓아 일일이 검색해서 찾아보는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
책들은 구역별로 배치되어 있는데 "채털리 부인의 오버"는 "타이 대왕", "나바론의 장갑"과 같은 칸에, "채털리 부인의 골프채"는 "당구대 위로 날아간 새", "큐대 길들이기", "테니스의 상인"과 같은 칸에 꽂혀 있다. 모르고 보아도 큰 상관이 없지만 알고 보면 더 위트가 넘치는 요소라 하겠다. 번역을 거친 제목들인지라 원서에는 어떤 제목으로 표기되어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요리책 책장 'ㅁ'부분의 한 책 속에 가족과 살고 있는 피터라는 남자 아이이다. 피터는 자기 고양이를 따라 갔다가 <영원히 사는 법>의 기록 카드를 발견하고는 없어진 이 책을 찾기로 결심한다. 피터가 이 책을 찾으려는 목적은 영원히 늙지 않고 살기 위해서이다. 피터는 책을 찾아 여러 곳을 헤매 다니다 오래된 중국 책들 앞에서 네 명의 노인을 만나게 된다. 노인들이 피터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을 보면 '시간'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들이 눈에 띈다.

피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책을 받는 장면도 볼거리가 많은데 중국과 관련된 소품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림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작은 판다도 찾아보시길~. <영원히 사는 법>이라는 책에는 "초보자를 위한 영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영생"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한 명 있지 않는가.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을 꿈꾸며 불로초를 구하고자 한 진시황. 소파에 앉아 있는 중국 황제로 보이는 인물 옆에는 기계로 작동하는 새와 진짜 새가 함께 있는 것이, 안데르센의 동화를 모티브로 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피터는 노인들이 책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늙은 것을 의아해 하자 노인은 보여줄 것이 있다며 그를 이끈다. 단순화된 평면적인 그림과 빈 여백, 푸른색 계열의 색채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화풍과 확연히 구분되는 이 장면은 중국식 정원을 묘사한 그림이다. (어울리지 않게도 중국식 건물에 "맥스 카페"라는 작은 간판-두어 장면에서도 등장하는-이 걸려 있는데, "맥스"는 작가의 개의 이름이라고. 노란 불빛을 배경으로 작은 그림자로 그려진 개의 모습도 여러 그림에서 찾아 볼 수 있음.)
노인을 따라간 곳에서 영원한 아이를 만난 피터는 그 책을 숨긴 이유를 듣게 된다. 피터가 책을 읽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과정은 짧고 함축적인 글로 마무리된다. 그런 탓에 아이들에게는 이 책에 담긴 철학적인 메시지가 난해하게 다가오거나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다 보면 더 이상 늙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아주 가끔은 젊은 날의 모습으로 영원히 살았으면 좋겠다 싶은 순간도 있지만 영원한 아이가 들려준 말처럼 "끝없는 내일들 뿐"인 삶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게, 열심히 사는 것이 생에 대한 최선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