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 타로의 사계절 그림책 - 전4권 - 봄, 여름, 가을, 겨울
고미 타로 지음, 길지연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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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년 내내 똑같은 날씨에, 주변 풍경도 늘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인 것보다 사계절의 차이가 뚜렷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근 국가들은 자연이 부여한 또 하나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셈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 짙푸른 녹음과 시원한 바다가 그리운 여름, 결실의 계절답게 풍성함이 느껴지는 가을,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겨울...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 봄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따뜻한 봄날은 옛 말이 되어 버린 듯 삼월로 접어들어도 한동안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따가운 햇살에 땀이 나서 서둘러 여름옷을 꺼내 입게 만든다. 봄과 마찬가지로 가을도 조금씩 그 길이가 짧아지고 있는 듯하니 각 계절이 안겨 주는 선명한 느낌이 퇴색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간결과 문장과 그림으로 유아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고미 타로의 사계절 그림책 시리즈를 하나하나 보고 있자니 그 아쉬운 마음이 달래지는 것 같다. <봄>의 표지에서 이제 갓 새싹을 틔우고 있는 나무와 꽃 화분 하나, 그리고 한 아이가 창문가에 서 있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은 창밖의 다양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다. 봄을 알리는 나비를 비롯하여 아이들의 모습과 예쁜 꽃들을 뒤편에 잔뜩 싣고 가는 꽃집 차, 비행기... 그리고 놀랍게도 배도 지나간다. 이처럼 다양한 풍경을 바라만 보고 있기에는 봄날의 따스함은 커다란 유혹이다. 어느 사이에 방안에는 아무도 없고 아이가 바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봄. 이제 벙어리장갑은 필요 없는 계절인 것이다!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에 길을 나선 아이에게 다양한 소리가 들려온다. 종소리인 듯, 공이 튀는 소리인 듯, 물 끓는 소리인 듯, 그리고 와와와~ 신나는 소리, 함께 놀자며 나를 부르는 것만 같은 소리... <여름>편을 보고 있자니 여름을 이렇게 여러 가지 소리로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얀 옷, 하얀 모자를 쓰고 어딘가로 열심히 가던 아이가 도착한 곳은 신나는 수영장이다! 아, 얼마나 부러운지... 벌써부터 물놀이(볼풀에 물을 채워서 하는 것이라도)를 하고 싶다고 졸라대던 아이는 이 장면을 보더니 "좋겠다!"라는 소리를 연발한다.

 가을하면 생각나는 것은 맑고 드높은 파란 하늘! 동요에 나오는 날아다니던 잠자리가 잠시 쉬기 위해 장다리 꽃 위에 살포시 앉듯이 <가을>편에서는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과 가을을 연상시키는 여러가지 것들이 장대 위에 앉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버스와 김밥-길쭉한 김밥이 아니라 일본풍의 삼각 김밥-을 보니 어디에 견학이나 소풍을 다녀오는 모습이 연상되는데 어쩌면 축제를 구경하고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을의 끝을 알리듯 눈송이(결정)가 장대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인 그림책.

 겨울바람은 때로는 날카로운 칼날이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매섭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겨울>편 속의 바람은 차갑기는 하나 이제 갓 태어난 아기처럼 연약해 보인다. 얼음 나라 깊은 계곡에서 태어난 바람이 설원을 지나 바다를 통과하고 뭍을 지나면서 쑥쑥 자라나 앞으로 앞으로 내달린다. 어른들은 몸을 움츠리고 옷깃을 부여잡으며 따뜻한 곳을 찾아 가려 애쓰는 반면 우리 아이들은 추운 겨울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깥에 나가서 놀려고 한다. 차가운 바람이 앙상한 가지에 남아 있는 갈색 마른 이파리들을 흩날리는 겨울, 공터나 골목에 뛰노는 아이들마저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그래서 먼 길을 달려온 바람은 자신을 기다려 준 아이가 고마워 파닥파닥 날갯짓하며 날아오르는 아이의 연에 온몸을 던져 연을 하늘 높이 날려주려 애쓰는가 보다. 초등학생인 큰 아이도 이 시리즈가 마음에 쏙 드는지 곧 동생을 볼 지인의 아이에게 이 책을 선물하자고 하니 싫다고 도리질을 친다. 고미 타로의 작품답게 한 줄 한 줄 시적인 문장에 간결하면서도 계절의 특징을 그림으로 잘 표현해 놓아 유아들에게 계절의 차이를 인식시켜 줄 수 있는 그림책으로 추천할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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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3-0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뜸하던 아영엄마를 뵐 수 있어 기쁩니다. 제가 서재 멈추는 동안, 먼 길 돌아 바람의 무늬를 새기셨는지요?

아영엄마 2010-03-10 13:45   좋아요 0 | URL
이런 시적인 문구로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그사이 닉네임이 바뀌었네요.) 바람의 무늬라면 좋겠지만 나이테 같은 세월의 무늬를 온몸에 새기며 사그라들어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