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방 그림책 보물창고 31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이유진 옮김, 한스 아놀드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말괄량이 소녀 "삐삐" 시리즈로 널리 알려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그림책으로, 동생이 생겨 부모의 사랑을 나눠 가지게 된 현실의 심리적인 압박을 상상의 세계를 통해 극복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을 그린 한스 아놀드는 작은 곤충이나 동물, 나무 등 모든 생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묘사하여 상상의 세계를 더욱 생동감있게 그려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이로서는 동생으로 인해 생긴 변화에 금방 적응하기가 어렵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 즉 동생에게로 향하고 행동 면에서도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나도 예전에 작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큰 아이에게 집안 일 뛰어다니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평소에 하던 행동들을 아기에게 위험하거나 시끄럽다는 이유로 하지 못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주인공인 베라에게는 '엄아 아빠도 모르는' 쌍둥이 동생 윌바리가 있다. 자신만 좋아해 주는 존재. 자기만의 공간. 상상 속에서 윌바리는 베라를 '사랑하는 언니'라고 부르며, 장미 덤불 아래에 존재하는 비밀의 방에 늘 함께 놀아준다. 아이가 구축한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다. 강아지를 기르고 싶지만 이를 가로막는 여건들이 존재하는 현실과는 다른 세상이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벽, 맑은 물이 샘솟는 분수, 난쟁이, 강아지, 토끼, 말, 새 등이 노니는 세상...

-  아이들이 만들어 낸 세상 속에 아름다운 것, 좋은 것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괴상한 모습의 무서운 괴물들이 등장하는데, 대신 괴물들이 자신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는 마련해 둔다.  

 윌바리는 살리콘의 장미가 시들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아이(베라) 자신이 현실로 돌아와 동생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영원히 상상의 세상에서만 살 수는 없는 법. 엄마의 사랑을 남동생에게 빼앗긴 현실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는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자신만의 왕국에서 자신을 사랑받는 존재로 설정하여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달려와 안아 주는 것으로 베라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고 갖고 싶던 강아지를 선물로 받는 기쁨을 누린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현실이 힘들고 외롭게 느껴질 때면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는 상상의 세계일 뿐이지만 그 안에서 나는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되기도 하고, 행복에 겨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내 가족들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의 내가 사랑 받는 사람, 행복한 사람이란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상상의 세계 속에서 어떤 모습이 되고, 어떤 행복을 누리는지 궁금해지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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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5-1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린드그렌이네요. 어린 시절 꽃이 시들면 나도 죽을 거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는데...

비로그인 2007-05-1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라잉룸, 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있대요. 슬플 때마다 들어가서 울고 나오는 가상의 방, 이라고 영어사전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단어에요. 갑자기 상상의 공간, 이라고 생각하니 생각났습니다. `상상'이라는 형이상학과 `공간'이라는 형이하학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문구였어요.

아영엄마 2007-05-19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저는 어른되서도 가끔 죽는 상상하면서 혼자 슬퍼서 울고는 나중에 그런 나 자신이 우스워서 웃고 그래요..^^
쥬드님/누구나 자기 안에 그런 가상의 공간을 하나쯤은 가지고 살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