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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을 찾아서
최향랑 글.그림 / 창비 / 2007년 2월
평점 :
윤이 나는 까만 바탕에 은빛인 듯 하면서도 오묘한 색감을 내는 조개껍데기로 문양을 넣은, 한 쪽 벽면을 꽉 채운 커다란 자개장롱. 언제부터 있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친정을 떠올리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방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자개장롱이 생각난다. 어릴 때부터 늘 보아오던, 사슴, 학, 소나무, 거북이, 꽃, 연못(?) 등을 곁들인 산수화 같은 장롱의 문양이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인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십장생을 찾아서>는 병환으로 누운 할아버지의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꿈 속에서) 십장생을 모으는 손녀의 이야기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 <요리조리 맛있는 세계 여행 >의 작가 최향랑씨가 글을 쓰고, 그림 속의 소품들도 공을 들여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본문 뒤에 "작가의 말"에서 십장생의 유래와 그 속에 깃든 기원(장수)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작자가 이 작품을 구상한 계기와 소품들을 만들기 위해 이 년여에 걸쳐 애쓴 일을 들려주고 있다.
함께 빙과를 먹고, 낮잠을 자고 놀이를 하고... '나'와 둘도 없는 단짝인 할아버지가 언젠가부터 잘 놀아 주지 않으신다. 얼마 후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떠나시고, 할아버지 방에 들어간 '나'는 쓸쓸함에 할머니의 반짇고리 속을 뒤적여 비단 주머니를 꺼낸다. 갑자기 거기에 수 놓여 있던 학이 빠져 나와 자신을 소개하며 십장생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주인공은 할아버지를 위해 십장생을 모으기로 하고 학의 등에 타고 해를 향해 떠나는데...
십장생을 다룬 내용도 이색적이지만 이 그림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품들이다. 학, 해, 불로초 등을 자수와 다양한 색감의 천으로 표현하였으며, 거북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바다색을 닮은 푸른 천에 물결무늬로 누빔 처리를 하고 물고기 모양의 천과 원형 스팽글을 달아 물 속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사슴이 들어 있는 자개 문양이나 도자기 판에 그려 구워서 표현한 산 등도 이채롭다. 할아버지의 방을 유심히 살펴보면 주인공이 모은 십장생이 그곳에 있는 물건들-베개 문양, 방석 액자, 자개장롱, 비단 주머니, 청자 등-의 일부인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할아버지께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신다. 이 작품은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손가락을 베이고 무릎이 까졌을 때처럼 마음도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아이답게 할아버지를 슬픔에 잠긴 모습이 아니라 그리워하는 모습으로 끝을 맺고 있다.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가끔이지만 꿈 속에서 그 그리운 모습을 뵐 때가 있다. 주인공이 꿈 속에서 할아버지와 구름을 타고 동네를 돈 것처럼 언젠가 또 꿈 속에서 활짝 웃는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