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러져 잠들리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리라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그름처럼 부풀어 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찔끔거리고

구슬픈 밤공기가 이별의 닐니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뚱거리고 있다


<최승자>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어설프게 헛손질만 되풀이될 뿐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중언부언 찌질한 소리는 더 이상 내뱉고 싶지 않다.

아니면 나는 한번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건지도..

최승자의 시에선 기둥서방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그녀는 외로운가 문득 멍청한 생각이 든다. 

기둥서방 한 놈 있으면 가을을 지내기

훨씬 따스할까 더 지랄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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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5 0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5 0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5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5 0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5 0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6-10-1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동을 걸고 돌진해 갈 대상은 바로바로 <나의 게으름>이랍니다^^

치니 2006-10-1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나도 간만 알라딘에서 책5권을 구매!
하린군의 래브라도 식구 들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말리와 나>를 구입하려다가 이렇게 되었지.
그중에 최승자 시인의 <어떤 나무들은>이 품절이 아닌 걸 확인, 잽싸 넣었어.
이 시를 읽고보니, 더욱 더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히.

2006-10-1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6-10-1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래브라도의 나날들이구나. 책사고나면 부자된 것 같지^^
나는 어제 서점에서 실컷 위시리스트만 작성해 왔는데
이젠 적기도 귀찮아 디카로 막 찍어왔어.
사람이 갈수록 이상한 요령만 ㅋㅋ

속삭인 님.
살아있는 것들, 살아서 옆에서 부대끼는 것들은 정말 그래요^^
그것들에게 일관성을 가지는 것은 ,
아이에게조차 쉽지 않을 걸 보면 애시당초 가능치가 않은 문제인가봐요..

로드무비 2006-10-1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아처럼 바라보는 남의 집 불 켜진 창가.
그런 심정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은 것 같아요.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이라는
구절이 참 좋습니다. 읽을 때마다.^^

rainy 2006-10-1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
아, 가을.. 가을인가봐요.
배고프고, 발시리고, 최승자를 찾게 돼요^^

프레이야 2006-10-17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가고 싶어요. 괜찮죠? ^^

rainy 2006-10-17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아이고 챙피시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