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러져 잠들리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리라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그름처럼 부풀어 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찔끔거리고
구슬픈 밤공기가 이별의 닐니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뚱거리고 있다
<최승자>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어설프게 헛손질만 되풀이될 뿐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중언부언 찌질한 소리는 더 이상 내뱉고 싶지 않다.
아니면 나는 한번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건지도..
최승자의 시에선 기둥서방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그녀는 외로운가 문득 멍청한 생각이 든다.
기둥서방 한 놈 있으면 가을을 지내기
훨씬 따스할까 더 지랄스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