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섣불리 책을 충동적으로 사들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도서관을 학교 다닐 적보다 조금 더 자주 가기 때문에 서가를 돌며 ‘간보기’에 맛이 들려서 새롭게 얻은 ‘병’인 듯하다. 스윽 책등을 훑으면서 간을 보고는 느낌이 괜찮은 책은 집어서 속을 훑는다.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흩어져있는 내 생각과 ‘통함’을 어렴풋이 느낀 책을 선택해서 탐하는 증상을 보이는 병이다. 그렇게 책을 끝까지 ‘만나보고’ 입맛에 맞다싶을 때, 책을 사들인다.『책, 세상을 탐하다』는 이런 ‘선보고(?) 후조치(?)’를 통한 책 중 하나다.

배부른 얘기(?)가 가득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은 ‘책’이고 여러 ‘책벌레(?)’들이 어떻게 탐닉하는지(했는지)를 담고 있다. 또 책이 가진 다양한 모습과 의미들을 만질 수 있으며 사진만 봐도 배가 부를법하다. 아무리 탐해도 배부르지 않다(?)는 아이러니도 함께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책벌레를 닮고 싶은 깊숙이 자리한 내 욕망의 달음질 때문에 여전히 배가 고픈 건지도 모를 일이다.

문득 생각해본다. 나에게 책이란 혹은 책읽기란 어떤 의미일까. 책벌레까지는 못되지만 그래도 가급적 책읽기가 일상이 되기를, 아주 일상적인 행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늘 한자리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혹은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릴 때, 길을 걷다 횡단보도에 잠시 멈춰 섰을 때 내 손에 들린 한 권의 책을 펼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 이런 것이야말로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책읽기이면서 지극히 특별한 일상 속 ‘만남의 장’이 아닐까 싶다.

책은 그런 것 같다. 늘 모든 걸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지식이건 경험이건 지혜건 간에 온전히 퍼주지 않음을 느낀다. 늘 화두를 던지듯이 ‘툭!’ 뇌리를 때리는 단출한 충격을 통해 스스로 모자란 부분에 대해 인식하고 그것을 나만의 색으로 채워가기를 바란다고 할까. 책은 비슷한 듯하지만, 또 전혀 다름을 느낀다. 같은 작가라도 그 형태와 표현이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각기 다른 시공간 속에서 빚어지는 그 오묘한 차이 때문에 책을 쉽사리 ‘끊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늘 현재를 살아가며 지금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속에는 과거가 현재를 거쳐 미래를 계획하고 실현한다는 뜻도 담겨져 있지만, 책 속 혹은 삶 속에 산재한 무수히 많은 과거와 미래 속으로 현재의 나를 포함시킴으로써 현실 속의 지금을 창조하고 재창조한다는 의미가 조금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얼마나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느냐 혹은 어떤 좋은 책과 만나고 있느냐를 통해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복합체인 ‘지금’을 빚고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주워 담기¨¨‡‡‡‡‡‡‡‡‡‡‡‡‡‡‡‡‡‡‡‡‡‡‡‡‡‡‡‡‡‡

∥심승현(만화가); 파페포포, 탈레스를 읽다∥
책이 모든 해답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가야할 올바른 길에 대한 여러 가지 길을 제시해주었던 것 같다. 어떤 것을 받아들여야 할지는 오직 나 자신의 몫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인생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독서는 내 인생에서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p011)

그는 헌책방 입구에서 어색한 몸짓으로 몇 권의 책을
빠르게 고르고 총총히 사라집니다.
호기심에 따라가 보니 공원 구석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고 나서 세상에 그와 책만이 존재하는 듯
해가 뉘엿뉘엿 지도록 미동도 없습니다.
∥사진_ 전미숙; 서울 천연동 독립문공원, 2001년 11월∥

∥정은숙(시인); 좀 즐기면 안 되겠니?∥
그렇다, 책 읽기는 즐겁다. 그런데 이 즐거움은 영상매체가 주는 즐거움과는 좀 다른 형태다. 만약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재미없다고? 그럼 치우고 다른 책을 읽기로 하자. 지금 재미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다고? 그렇다면 책을 펴라. 바로 그 책이 그대를 지겨움과 귀차니즘의 세계에서 재미와 건강한 노동에 대한 환기를 불러올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잡스런 상념들이 엄습해 온다고? 그렇다면 그 상념을 따라가도 좋다. 상념들 가운데도 건설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또 책 읽기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그 상념 끝에 우리는 우리 현실의 다른 모습을 새로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직간접적으로 자신이 보지 않은 것은 잘 상상할 수 없다.(p051)

∥송경아(소설가);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고?∥
처음 만나도 최근 개봉한 영화 한 편을 보고 같이 이야기할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맞춰 보다가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까지 공유하게 되는 경우는 언감생심이다. 한때는 책 안 읽는 것이 창피스러운 일인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순간은 여전히 풍요롭지만, 그 감격 그 느낌을 같이 나눌 친구를 찾다 보면 어느새 가난해진다.(p057)

∥허병두(숭문고 교사); 책을 꿈꾸는 도서관∥
도서관은 단지 책이 모아져 있는 곳이 아니다. 도서관은 인간과 우주와 책을 부화하는 거대한 자궁이다.(p067)

∥홍세화(한겨레신문사 기획위원); 세상을 보는 눈∥
독서는 ‘세계를 향한 창을 여는 것’이다. 창은 열려졌을 때 그 참된 의미를 지닌다. 닫혀 있는 창은 단지 가능성으로만 남을 뿐이다.(p090)

∥도정일(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대표)
; 고독한 성찰과 불안한 의심의 극장∥
책의 세계는 정신의 자기회귀를 강화하는 고독한 성찰과 불안한 의심의 극장, 의식이 의식을 만나 협상하고 교섭하는 대화의 극장, 인간이 유한성의 조건 속에서 그 유한성에 보복할 모든 가능한 책략들을 꾸미는 음모의 극장이다. 그 극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비용은 싸구려가 아니다. 지금 문명과 사회는 일종의 갈림길에 서 있다.(p110~p111)

∥이병률(시인); 가슴에 품은 책∥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읽은 책을 또 읽는 사람의 옆모습이다. 두 번도, 세 번도 읽을 수 있는 만큼 읽는 것. 그리고 그 책을 다 읽었으니 더는 읽지 않겠다며 멈추거나, 그치지 않는 사람. 책을 마치 소중한 사람처럼 아낄 줄 알며 다룰 줄 아는 사람. 자신은 비록 귀퉁이가 낡고 헐은 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위해 수도 없이 그 책을 사서 건네주기도 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무엇이 와두 두렵지 않을 사람이다. 그 뭔가로 뭉쳐져 이미 강해진 사람이다.(p117)

∥공선옥(소설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
나는 바란다. 시장 보고 오는 아줌마들의 손에 언제나 책 한 권이 들려 있기를. 자전거 짐바리에 짐을 싣고 가는 아저씨의 짐들 틈에 책 한 권이 끼어 있기를. 젊은 처녀 총각들이 데이트를 하면서도 그 시간만큼 책 읽을 생각에 가슴 떨리기를. 공원을 산책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손에도 책이 들려 있기를.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나온 손자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책을 읽어주기를.
나는 다시 바란다. 아줌마들이 찜질방에서도 책 이야기를 하기를. 아저씨들이 술을 마시면서도 책 이야기를 하기를. 처녀 총각들이 데이트를 하면서도 책 이야기를 하기를.
그리고 나는 정말로 바란다. 나야말로 이제부터 시간 타령 하지 말고 정말 책을 읽자고.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법. 책을 읽지 않고 불행해하지 말고 책을 읽어서 행복해지자. 지금 바로 당장!(p123~p124)

사춘기 시절 친구와 함께 하는 것은 모두 신이 납니다.
방과후 친구들은 집과 학원으로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시간에
두 친구는 책과 함께 그들만의 시간 속으로 빠져듭니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만이 상쾌하게 공기를 가릅니다.
∥사진_ 전미숙; 서울 정동 이화여자고등학교, 2001년 9월∥

∥최재봉(한겨레신문사 기자); 왜 침대를 그림이라고 하면 안 되지?∥
책을 읽는 일은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한 지식과 가치를 다시금 냉정하게 돌아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는 다소간의 불편과 거부감이 따르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초의 불편과 거부감을 통과하고 나면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발견, 그리고 넓고 깊어진 자기 자신이다.(p163)

∥함성호(시인); 보이지 않는 손∥
······좋은 인연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나는 항상 책과 나 사이에도, 사물과 사람 사이에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경제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도대체 왜, 나를, 이렇게 어딘가로 이끄는 것인가? 알 수 없다.(p2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