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뇌가 합리적이지 않은 건 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원시부족사회 때 유용했던 전략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 <열두 발자국 (리커버 에디션)>, 정재승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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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오늘날 자칫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기 딱 좋게 디자인돼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약 3만 년 전의 원시적인 상황에서 생존과 짝짓기에 필요한 선택을 하기 적절한 정도로 진화해왔습니다. 특히 전전두엽이라고 불리는 고등 뇌 영역은 인간의 진화 과정 중에 가장 최근에 등장해서 발달했지요. 이른바 창조적인 폭발(creative explosion)이 뇌 안에서 벌어진 겁니다. 3만 년 전의 사바나에서, 정글에서, 아마존에서 생활할 때 쓰던 그 뇌를 우리는 지금까지 쓰고 있는 건데, 현대사회는 너무 빠르고 복잡하게 바뀌었거든요. - <열두 발자국 (리커버 에디션)>, 정재승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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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두 후보의 공약과 정책을 보여주잖아요. 정동영 후보의 공약을 이명박 후보의 공약이라고 보여줘도 이명박 지지자들은 모두 ‘좋다’고 대답해요. (웃음) 뇌의 ‘쾌락의 중추’가 난리가 납니다. 정동영 후보의 공약인지 이명박 후보의 공약인지가 중요하지, 공약의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영논리’를 만드는 뇌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죠. - <열두 발자국 (리커버 에디션)>, 정재승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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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의 포로들 - 세계의 패권 싸움은 지정학의 문제다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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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강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인 도나우강(2,850킬로미터)은 중세까지는 지중해 세계의 북단 경계였다. 근대 이후에는 북유럽과 남유럽, 서유럽과 동유럽의 역사적 경계였다. 또한 그 유역은 지중해 세계에서 유럽이 갈라져 나오게 한 사회경제적 배경이 됐다.

독일의 삼림지대인 흑림에서 발원한 도나우강은 남동쪽으로 흘러 흑해로 들어간다. 도나우강 유역은 유럽의 18개 국가에 걸쳐 있고, 자연적 경계가 됐다. 2000년 전 로마제국의 북방 국경으로, 지중해 문명의 세계와 게르만족 야만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였다. 그렇지만 이 강은 문명의 세계인 동지중해와 야만의 세계인 유럽의 서쪽 내륙을 잇는 길이기도 했다. 로마 시대부터 이 강은 주요 교역로였다. 중세에 들어서 그 유역에 많은 세력과 국가를 배태하고 그 경계가 됐다. 유럽 중부에 빈, 브라티슬라바, 부다페스트, 베오그라드 등 도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 도시들은 지중해 세계에서 유럽이 갈라져 나오게 한 사회경제적 동력의 배경이 됐다.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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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의 포로들 - 세계의 패권 싸움은 지정학의 문제다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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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친스크 조약

청이 명을 멸망시키고 중원에 진출한 1644년, 현재 중국의 신장성 지역에서 몽골계인 오이라트 부족이 다시 흥기해, 중가르라는 새로운 세력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몽골 지역 유목세력의 제위인 칸으로 올라선 중가르 지도자 갈단은 동몽골고원, 남티베트고원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청은 포위되는 형국이 됐다.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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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중가르 정벌은 고대 이래 전통적인 유라시아 대륙세력인 초원 유목세력의 종말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던 초원 유목세력의 기마병력은 총포를 동원한 청의 우세한 화력 앞에서 종언을 고했다.

여기에는 더 큰 요인이 있다. 청이 중가르를 정벌할 때 서쪽에서는 새로운 대륙세력이 동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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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베이징으로 입성하기 전인 1639년부터 현재의 중-러 국경지대인 아무르강 유역에서 러시아와 충돌을 시작했다. 청은 조선의 병력까지 동원해, 동진하는 러시아를 막으려는 나선정벌도 벌였다. 양국은 강희제가 중가르 정벌을 하던 1689년 동시베리아의 네르친스크에서 서로의 영역을 정하는 국경조약을 맺었다. 아무르강과 와이싱안링(스타노보이)산맥을 경계로 두 제국의 국경은 정해졌다. 이는 초원 유목세력의 배후지가 중국과 러시아에 점령됐음을 의미했다.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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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의 포로들 - 세계의 패권 싸움은 지정학의 문제다
정의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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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원정과 토목의 변

홍무제와 3대 황제 영락제는 서북 방면의 초원 유목세력을 제어하는 데는 공을 들였다. 특히 영락제는 수도를 양쯔강 유역에 있는 난징에서 자신의 근거지였던 북방의 베이징으로 옮기고, 서북 방면의 안보를 적극적으로 관리했다. 영락제는 북방 초원지대로 축출된 원의 잔여세력인 북원 등 초원 유목세력들을 몇 차례 원정을 통해 약화시키고 명의 통제하에 넣었다.

서북 방면의 안보위협이 관리되자, 영락제는 해금령 해제를 단행했다. 그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정화의 대원정이었다. 대원정의 주목적은 동남 연안지대를 관리할 해상력 정비와 확장이었다.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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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함대는 동아시아 교역의 사활적인 병목 지역인 말라카해협을 위협하던 한족 해적세력 소탕에 먼저 주력했다. 인도양에서 남중국해까지 주요 해로들의 안전과 정비가 주 목적이었다. 이를 통해 명의 제해권이 인도양 전역까지 확립됐다.

명대 정화의 대원정은 송 이후 중국의 새로운 중심이 된 강남과 그 경제력, 이와 연관된 해상력을 보여줬다.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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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원정이 완전히 중단되던 즈음, 북방의 새로운 강자 몽골의 오이라트가 흥기했다. 정화의 대원정이 중단된 다음해인 1434년 오이라트의 지도자 토곤이 몽골 부족들을 통일했다. 몽골 초원을 제패하는 세력으로 성장해, 다시 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토곤을 이은 아들 에센이 1449년 조공무역을 놓고 벌인 분쟁으로 명을 침공해, 토목보(하북성 회래현) 전투에서 명의 황제 정통제를 포로로 생포했다.

명으로서는 전통적인 안보위협 지역인 내륙의 서북 방면을 내버려두고 한가롭게 동남 해안을 통해 바깥 세계로 진출할 현실적 여건이 아니었다. 서북 방면 초원 유목세력의 위협이 황제를 생포할 정도로 거세지는데, 먼 나라의 진기한 문물이나 가져오는 데 국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보인 정화의 대원정을 지속하기는 힘들었다.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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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함대가 철수하자, 유럽이 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하다

정화 함대 대원정의 폐기로 명이 바다에 등을 돌린 지 60여 년 만에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가 희망봉을 돌아서 아시아로 진출하는 문을 열었다. 그 후 유럽 해양세력들은 인도양과 동·남중국해까지 교역로와 해상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은 말라카해협을 점령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스페인은 태평양을 건너서 필리핀을 점령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가 차례로 동아시아까지 진출했다. - <지정학의 포로들>, 정의길 지음 -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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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문명 붕괴를 기뻐하라



왜 ‘붕괴‘를 개탄해야 하는가? 붕괴가 그려내는 상황이 보통 억압적이고 연약한 복합체인 국가가 더 작고 탈중심화된 파편들로 분해되는 것이라면, 국가의 붕괴를 한탄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국가의 붕괴를개탄하는 단순하면서도 전적으로 피상적인 이유 하나는, 고대 문명들에 관한 자료를 모아 정리해야 하는 사명을 띤 모든 학자와 전문가가필요로 하는 가공되지 않은 1차 자료들이 국가의 붕괴 탓에 사라지기때문이다. 국가의 붕괴로 고고학자들에게 중요한 발굴 장소도 줄어들고, 역사학자들에게 중요한 기록과 문헌도 줄어들며, 박물관 전시실을채울 크고 작은 장신구들도 줄어드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고왕국, 기원전 제3천년기 중반의 우루크에 대한 멋지고 유익한 자료들은 많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그리스 ‘암흑기‘, 이집트 ‘제1중간기‘, 아카드제국 아래에서 진행된 우루크 쇠락기 자료들은 찾아봐야 헛수고다. 

그러나 이 ‘텅 빈 시기들이 짧으나마 수많은 국민이 자유를 만끽한시기이며 인류 복지가 개선된 시기였다는 강력한 주장이 있다. - P266

인구 집단의 안녕을 궁정이나 국가 중심의 권력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초기 국가의 국민이 세금, 징병, 전염병, 압제를 피하기 위해 농경과 도시 중심을 모두 버리고 떠난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한 가지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채집이나 목축과 같이 더 기초적인 형태의 생계 방식으로 퇴보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더 폭넓다고 생각하는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부역과 세금을 면했고, 전염병을 피했고, 억압적 구속에서 벗어나 더 큰 자유와 물리적 이동성을 확보했고, 어쩌면 전쟁터에서의 죽음을 모면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경우에 국가를 버리고 떠난 일은 해방으로 경험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관점이 국가 밖에서의 삶이 다른 종류의 위험과 폭력으로 특징지어지는 경우도 많음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도시 중심을 포기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과 만행으로 몰락하는 일이라고 상정할 확실한 근거는 전혀 없음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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