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인알렉산더 대왕은 생전에 따로 2인자를 키우지 않고 부하들에게 골고루 힘을 실어 줬기 때문에 결국 권력암투가 벌어지게 되고 나라가 여러 개로 쪼개집니다.그중 제일 큰 세력은 안티고노스였고, 지도에 보이는 것처럼 여러 세력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부하들 중 하나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이집트에 왕국을 세운다는 것입니다.그 왕조의 이름 또한 프톨레마이오스인데, 그곳의 마지막 왕녀가 바로 클레오파트라입니다. 한마디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집트는 이미 식민지 상태였으니 클레오파트라는 바로 지배국인 그리스 사람인거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1>,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uJuzfAqubMdAP2XaA
스파르타스파르타 시민들은 평생을 전쟁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재밌는 건 그 전쟁의 대부분이 외부세력과의 전쟁이 아니라 내부 반란을 진압하는 전쟁이라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내부와의 싸움이 더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그 이유는 스파르타의 계급구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인구 구성비를 보면 스파르타인 1명에 상공업자 7명 노예 16명 구조로, 1:7:16의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 구성원인 도리아인은 이주민이었기 때문에 숫자가 적었죠. 그런데 오히려 수적 열세에 있는 이들이 다수를 지배했습니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1>,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wVxqigv2pGZwupmr6
철기와 전쟁철기에 접어들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철기는 값이 싸기 때문에 귀족이 아닌 사람들도 무장을 할 수 있게 됩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1>,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vQhRmSnRBeHeQ1Rr9바로 보병 중심으로 변합니다. 또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전쟁에 나갈 수 있게 된다면 귀족만 군인이 될까요? 아니죠, 이제 데모스도 군인이 될 수 있습니다. 전쟁에 참여할 수 있으니 잘 싸워 승리의 주역이 된다면 당연히 목소리도 커지겠죠. 때문에 데모스의 발언과 권리도 점차 커지게 됩니다. 그리스는 이제 귀족이 아닌 대다수 시민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겁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1>,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AuNLPkAqejXDqFpd9
청동기 전쟁당시에 금속은 값이 비쌌습니다. 더구나 청동은 흔하지 않으니 더 비쌌겠죠. 따라서 청동으로 만든 무기를 가질 수 있었던 건 소수의 귀족뿐이었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보면, 자기 돈으로 자신의 몸을 무장해야 했던 군인들 역시 귀족이라는 말이 됩니다. 실제로 군인이 되려면 돈이 많아야 했을 겁니다. 무기 외에 말과 같은 탈 것도 준비해야 했으니까요. 물론 군인들은 귀족 출신이었으니 직접 말을 몰지는 않았습니다. 말을 대신 몰 사람과 마차가 세트로 필요했죠. 이 마차가 전쟁터에 나가니 그것이 곧 전차였습니다. 당시 전투를 보면 대부분 전차 전쟁이죠.관련지어 생각해 보면 중국의 춘추시대도 전차 전쟁 시대입니다. 전차전이라는 건 다르게 이야기하면 군인의 수가 적다는 말입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1>,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jd3iV1ZqCF8qL2pcA전차의 승차감을 생각한 아주 평편한 평지여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전쟁을 하기로 한 두 나라가 어느 평지에서 전쟁을 할지 미리 약속을 합니다. 심지어 약속 후에 두 나라의 사람들이 먼저 와서 전차가 잘 다닐 수 있게 평지를 잘 다져 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1>,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bh8hRfN2jZUMXLmZ6이 시대에 있었던 전쟁의 또 다른 특징은 대량학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춘추시대에는 전쟁이 나서 싸우더라도 알고 보면 거의 모든 귀족이 서로 가까운 친척 사이였다고 합니다. 당시 춘추시대란 결국 주나라의 황제가 자신의 친척들을 제후국으로 만든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규칙을 정해 놓고 싸움을 했다고 하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1>,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p2TW3UnF5erZQD37A
석궁과 기사무기의 위력이 더 센 쪽은 단연 석궁입니다. 석궁은 갑옷을 뚫어 버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석궁은 한때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1139년에 있었던 일인데요. 제2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립니다. “석궁은 기독교 인간끼리 사용하기에는 너무 무서운 무기임으로 사용을 금한다.”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위력이 너무 대단해서 갑옷도 소용없기 때문이었죠.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석궁은 대활약을 합니다. 이후 유럽에서도 석궁 사용이 본격화되자 가장 곤란해진 것은 갑옷을 입고 활약하던 기사들이었습니다. 일생 동안 전투기술을 연마한 기사를 일개 석궁수가 잡아 버릴 수가 있게 되었거든요. 아시다시피 중세 봉건제는 영주-기사-농노의 축을 중심으로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석궁이 나타나면서 잘못하면 그 축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한 겁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술의 발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법입니다. 석궁은 더 강력해졌고 점점 더 그 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훗날 본격적으로 화약무기가 사용되면서 석궁 또한 사라지게 돼죠. -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1>, 최진기 지음 - 밀리의 서재https://millie.page.link/Yj1TykQawXF5wHNr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