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자기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전자기기를 구매하면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그게 바로 나다. (아니 나였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모든 걸 나이 탓하고 싶지 않지만 글씨도 잘 안 보이고 신경을 쓰면 골치 아파서 그냥 아는 기능만 쓰거나 아이들을 불러 해결한다.) 그런 나에게 태블릿 또는 전자책 단말기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고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사용해 보게 되었다.
요즘 서재에서 전자책 이야기가 종종 눈에 띄길래 내가 가지고 있는 태블릿/전자책 단말기를 한번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단종된 것이 많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쯤 해서 한번 돌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킨들 파이어 (Kindle Fire)
2010년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는 별로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일단 애플 제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가격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2011년 11월 아마존에서 킨들 파이어라는 태블릿을 출시한다는 뉴스를 듣고는 바로 이거다 싶었다. 일단 가격이 아주 훌륭했고 아마존 전자책인 킨들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킨들 파이어 출시 전에 예약 주문을 걸어 놓을 정도로 기대가 컸다.
구입 후 써보니 아마존 자체 콘텐츠를 사용하기는 편하지만 그 외의 것을 사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당시만 해도 반짝반짝 의욕이 넘쳤던 나는 킨들 파이어 루팅하는 법을 알아내 컴에 대해 1도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훌륭히 성공해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아마존은 계속되는 업데이트로 루팅을 다 망가뜨리는 방법을 썼고 결국 몇 번의 벽돌화와 공장 초기화를 거친 이후 순정으로 돌려 아마존 프라임 영화를 보는 용도로 사용했다.
* 누크 칼라 (Nook Color)
2012년에 남편은 킨들 파이어를 가지고 낑낑대는 나에게 누크 칼라를 선물해주었다. 누크(nook)는 반스 앤 노블스에서 나오는 것으로 당시 나는 아마존의 폭주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 아래 반스 앤 노블스를 종종 이용해 왔기 때문에 전자기기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적격인 선물이었다.
누크 칼라는 킨들 파이어에 비해 루팅이 훨씬 쉽고 안정적이라 루팅을 성공한 뒤 킨들앱, 누크앱, 알라딘 앱 뿐 아니라 다른 서점 앱도 깔고 만화책 보는 앱도 깔아 유용하게 썼다. e-ink 는 아니지만 책을 오래 읽어도 눈이 피로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었고 책 읽는 용도로만 쓰는 것이기 때문에 속도가 느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좀 무거운 감이 있지만 가격 대비 활용도가 높고 (루팅했을 경우)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2년 전 순정으로 돌리면서 공장초기화를 했는데 wifi를 인지 못하는 오류가 나왔고 구글신께 열나게 물어본 결과 나와 비슷한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저기서 헤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반스 앤 노블스에서는 더 이상 누크 칼라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해결 방법이 없다. 그동안 잘 쓴 것에 만족하고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 크레마 터치 (Crema Touch)
2012년 예스24, 알라딘, 반디앤루니스, 리브로, 영풍문고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크레마 터치가 나왔다. 내가 전자책을 사는 데 사용하는 서점은 알라딘, 예스 24, 리디북스였는데 사실 루팅한 누크 칼라로 다 읽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루팅한 건 언제든 벽돌이 될 위험성이 있다는 걸 주장하며 2013년 크레마 터치를 질러버렸다. 그리고는 얼마나 후회를 했던지... 원래는 여기에 리디북스 앱도 깔아서 한글책은 모두 크레마로 읽으려고 했던 것인데 리디북스 앱을 깔기는 커녕 자체에 깔려있는 서점 앱을 사용하는 데도 어찌나 오류가 많던지... 단행본 전자책 뿐 아니라 이런 저런 전집들도 꽤 구입했는데 꺼떡하면 SD카드를 인지하지 못해 맨날 오류 메시지 나오고 여차하면 뭐가 안되고. 사리만 백만 개 만들고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다시는 크레마 시리즈를 사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만들었던, 주변 사람들에게도 절대절대 사지 말라고 말리고 싶었던 단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