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것들의 영원
이균영 지음 / 문학사상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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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영 교수의 <떠도는 것들의 영혼>은 여덟 명의 사람들이 중국 연변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여행 중에 나누는 이야기들과 겪는 일들을 다룬 소설이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역사 이야기들,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이균영 교수는 해박한 지식을 세 명의 운동권 학생과 은퇴한 초로의 성 교수를 통해 풀어 놓는다. 말하고자는 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20세기에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을 균형 있게 다루려면 한 2백년 쯤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한 이백년 지나도 그게 가능할까. 읽고나서 마음이 좀 답답해진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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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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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 감독,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만든 감독이라는 사실만으로 이 사람이 찍은 사진은 또 어떤 모습일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책을 샀다.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자신이 지내온 날들 동안 만난 사람들, 경치들, 순간들을 잔잔하게 적어놓은 책이다. 왼쪽에는 그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그리고 오른쪽에는 감독이 찍은 사진이 있다. 그냥 훑어 볼 때는 큰 감흠이 오지 않은 책이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뷰파인더를 보며 사진을 찍던 감독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저 지나치기 쉬운 순간들을 말이다.  

이 책의 서문에 빔 벤더스 감독이 한 말이 인상적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순간을 담는다는 것도 있지만 그 사진에는 보이는 피사체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진사가 있다는 말, 그리고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치 사냥꾼이 총을 쏜 후에 느끼는 반동처럼 똑같은 것을 느낀다는 말. 그리고 그 Einstellung이라는 독일어.  

한번은 이라는 말, 독일어로는 Es war einmal 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지..." 감독이 지나온 날들의 일기 쯤으로 받아 드려도 될 듯 싶은 말이다, 한번은 이라는 말.  찍은 사진 속에 화려함은 없지만 일상 중에 지나치기 쉬운 것들을 담은 사진들.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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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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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사용설명서, 한 루저의 이야기. 이런 류의 소설을 루저문학이라고 부른단다. 루저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읽으면서 짜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어쩌면 그게 이 젊은 작가 손석순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철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과거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루저라고나 할까. 결국, 원래는 철수에게 문제가 없었지만 가족, 학교, 친구 등등으로 부터 덜 떨어진 구석이 있는 사람으로 프레임 지어진 사람이 철수라고 해야 할까. 더 추적해 보면 날 때 부터 루저였던 게 철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이 손석순 작가가 말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불쾌함을 참고 끝까지 읽다 보면 결국 215페이지 이 후에 철수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철수는 루저가 아니라 완제품으로 준비되어 가고 있는 29세 청년이라는 것.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면 열도 안 나고 손 등에 오선지도 안 나타나고 정상 작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것. 결국 세상의 루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실은 루저가 아니라 여전히 준비 중에 있다는 것. 하긴 세상에 잉여인간이라는 건 애초부터 없을 테니까. 태어난 사람 중 의미 없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무튼 철수를 가전제품 중 하나 쯤으로 기술하면서 철수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참신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계속 되는 모티브 (손 위에 나타나는 오선지, 발열 반응)들에서 좀 진부하다는 생각도 같이 든다. 그래도 그 구성이 참신하다는 것, 그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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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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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가 신문에 올린 글들은 많이 읽어 봤지만 책은 가장 최근에 나온 이 <강남좌파>가 처음이다. 강준만 교수는 일단 한국 정치에 늘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학문적 성실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게 큰 호감을 준다. 이 책에서 강남 좌파를 정의하고 그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동안의 신문 기사와 관련 글들을 꼼꼼이 살핀 다음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는 점에서 근거 없이 자신의 생각을 늘어 놓는 그런 책은 아니라는 점이, 그리고 그의 글에서 나타나는 학자로서 꼿꼿한 일관성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기 전에 먼저 그 저자를 한번 살펴보는 게 순서일 터, 한국 위키피디아를 보면 강준만 교수는 정치평론가, 사회학자, 언론인이로 소개한다. 1998년부터 발간 중인 <인물과 사상>의 주필이라고도 소개되어 있다. 실명을 거론하며 한국에서는 아마 최초로 인물 비평을 시작한 학자가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먼저 "강남좌파"가 무엇인지를 1장에서 정의한다. 세 가지 카테고리 밑에 다시 세 종류로, 총 아홉 가지 다른 류의 강남좌파를 분류해 놓는다. 그 중에서 공적 강남 좌파가 기회주의적 강남 좌파 노릇을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이 강남좌파가 어떻게 해서 커밍아웃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지 그 배경을 2, 3장에서 설명한다. 정리하면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부정적인 의미로 강남좌파가 떠오르게 되었다는 말.   

이 책을 읽는 동안 날 불편하게 했던 건 오마이뉴스의 대표로 있는 오연호라는 존재다. 이명박의 대항마로 문국현 띄우기에 나섰다가 어떻게 실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이번에는 조국 교수를 통해 다시 한번 같은 전술을 쓰고 있다는 오연호 대표. 신문이나 일상 잡지 글에서는 그 글의 공간적 제한 때문에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내용들을 이 <강남 좌파>라는 책을 통해 강준만 교수는 세밀하게 추적한다. 뭐, 데자뷰 같은 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뒤 이어 박근혜,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 모두 차기 대권에 관심 있는 정치인들의 행보와 그 말에 현미경을 갖다 된다. 그리고 최종장에서는 결국 강남좌파는 학벌좌파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이 땅에 존재하는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학벌이라는 것. 이 주장은 강준만 교수가 신문에 기고한 글들에서 여러번 접했던 것이지만 이 책에서는 훨씬 더 강한 어조로 이 점을 비판한다. 음... 11장을 읽은 다음 느낀 점. 결국 강준만 교수의 <입시전쟁잔혹사>를 사봐야 하는 건가...... 

결론은 현재 정치 상황을 기술한 책은 한번씩 사봐야 한다는 것. 바쁘게 사는 사람들을 대신해 부지런히 살피고 있는 파숫꾼들이 전해 주는 이야기가 무언지 한번씩은 귀를 기울여 봐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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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난제 :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 - 필즈상을 거부하고 은둔한 기이한 천재 수학자 이야기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18
가스가 마사히토 지음, 이수경 옮김, 조도상 감수 / 살림Math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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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 '푸앵카레 추측'이 들어있길래 망설이지 않고 이 책을 샀다. 책을 들자마자 끝까지 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여 페이지 남짓한 비교적 얇은 책에 저자의 직업이 방송국 피디라 글을 쉽게 썼고 번역도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잘 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책은 정작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난제를 푼 역사적인 수학자 페렐만이 왜 필드메달을 거부했나, 하는 질문을 심층적으로 파고 들진 못했다. 그러니까 푸앵카레 추측이 어떻게 해서 페렐만이라는 수학자의 손으로 풀리게 되었는지 리뷰는 잘 한 책이지만 문제가 되었던 페렐만의 필드메달 거부, 클레이 연구소에서 건 백만불 상금 거부에 대한 취재는 거의 부재한 책이다. 페렐만이라는 사람은 이미 은둔해 버린 기인이라 취재에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그래도 저널리스트 답게 좀 더 깊게 파고들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페렐만에 대해서는 이 책보다는 오히려 Wikipedia가 더 자세하다.  

http://en.wikipedia.org/wiki/Grigori_Perelman 

페렐만이 필드 메달을 거부한 그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 잡지 New Yorker에 자세히 실린 바 있다.  더 알고 싶은 분은 아래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읽어 보라.

http://www.newyorker.com/archive/2006/08/28/060828fa_fact2  

필드 메달 거부라는 전무후무한 사건 뒤에는 필드메달 수상자이자 미분기하학 분야에서 Calabi-Yau Manifold로 그 명성이 자자한 수학자이자 하바드대 수학과 교수인 S.-T. Yau를 빼놓을 수 없다. 비록 Yau는 위의 기사가 신빙성이 없고 자신의 명예를 실추했다고 고소까지 한 상태이지만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 실제로 Yau는 자신의 두 제자인 H.-D. Cao교수와 X.-P. Zhu에게 Perelman의 증명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 논문을 쓰게 하고 그 논문은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Asian Journal of Mathematics에 출판하게 했다.  

 http://www.intlpress.com/AJM/AJM-v10.php#AJM-10-2   

하지만 재미 있는 점은 논문이 출판된 다음 수정본이 인터넷 예비 논문집에 해당하는 로스알라모스 Preprint server에 실렸는데 그 논문 앞 부분에 보면 Perelman과 Hamilton에게 정확하게 크레딧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사과한다. 

http://arxiv.org/abs/math.DG/0612069  

이 사실은 New Yorker지에 실린 사실과 어느 정도 부합하는 이야기인지라 그냥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엔 사안이 좀 중대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Perelman이 이미 잠적해 버린지라 필드 메달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부분은 학문의 윤리와도 깊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나서서 밝히는 게 학문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실제로 수학과 과학 역사에서 공평하지 못했던 경우가 제법 많다. 이 푸앵카레 추측과 얽힌 어두운 뒷 이야기가 오해나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New Yorker지에서 말하는 게 사실이라면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단지 유명한 대가라는 이유로 덮어 두는 것이라면 학문하는 이유가 없지 않을까. 어느 학문이든 그 학문을 하는 모든 사람은 서로 동지일 뿐이지 위 아래가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이 책은 결국 푸앵카레 추측에 관해서 반쪽만 다루는 데 그쳤다. 그래서 별 세개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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